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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대선 재수’ 힐러리의 필승 전략

백인 여성 유권자를 잡아라…2008년 패배 의식한 몸 낮춘 행보 ‘도발은 없다’

‘대선 재수’ 힐러리의 필승 전략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이 드디어 2016년 대통령선거(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재수’에 나섰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 주자 중 1위를 달리는 클린턴 전 장관이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면서 워싱턴 정가는 급속히 대선 정국으로 재편되고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은 4월 12일(현지시간) ‘시작합니다(Getting started)’라는 제목의 2분 19초 분량의 동영상을 통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2008년 대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과 선거 전략을 선보인 그의 추후 행보에 벌써부터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정치귀족에서 중산층 지킴이로

클린턴 전 장관이 공개한 대선 출마 영상에는 한동안 자신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2009년 금융위기 이후 각 분야에서 힘겹게 삶을 이어가는 중산층과 서민의 다양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딸을 혼자 키우는 젊은 엄마, 창업을 고민하는 청년, 2세를 기다리는 부부, 은퇴한 노인, 일하는 장애인, 결혼을 앞둔 동성애자 등이 잇따라 나와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백인은 물론 흑인, 아시아인,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을 등장케 해 ‘표의 확장성’을 노린 것도 눈에 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동영상 시작 1분 30초 후 비로소 등장한다. 빨간색 블라우스에 감색 정장 재킷을 차려입은 그는 “미국인들이 그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왔지만, 아직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위쪽(가진 자들)에만 유리한 실정”이라며 “평범한 미국인은 챔피언을 필요로 하고 있고 내가 그 챔피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러분이 현재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고, 또 (각자의 영역에서) 앞서나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모든 가족이 강할 때 미국도 강해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날의 출마 영상은 2008년 대선 때와는 확연히 대조적이다. 클린턴 전 장관은 2007년 1월에 공개한 출마 영상에서 워싱턴 인근 자신의 대저택 소파에 앉아 1분 44초 내내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는 다소 거만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이날 영상에선 다소곳하게 느껴질 정도로 ‘로 키(low key)’를 유지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2008년 경선에서 패한 뒤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민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살생부’까지 작성해가며 분루를 삼켰다. 그러다 국무부 장관이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깜짝 제안을 받아들여 2009년부터 4년간 대통령직 수행에 필수적인 외교안보 현안과 행정 경험을 쌓으면서 이번 대선을 준비해왔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클린턴 전 장관이 국무부 장관을 지내면서 했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대선에선 전혀 다른 선거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며 ‘클린턴 전 장관 측은 이를 ‘힐러리 2.0’이라고 부른다‘고 전했다.

새로운 선거 전략의 핵심은 정치귀족 이미지를 벗고 중산층 경제를 보듬으며 밑바닥 표심을 잡는 것. 미국 최고 명문 가운데 하나인 예일대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변호사, 40대 대통령 부인, 뉴욕 주 상원의원 등 화려한 길을 걸어온 클린턴 전 장관은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이기기 위해 대선판에 왔다(I’m in it to win it)’는 도발적인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을 꿈꿨다. 당시 ‘힐러리 대세론’을 강조한 캠페인이었지만,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문구와 이를 반영한 공격적인 선거 전략은 중산층과 흑인 위주의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 반감을 형성했다는 게 중론. 흑인인 오바마 대통령은 바로 이 점을 파고들어 힐러리 대세론을 꺾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출마 선언 후 2008년 대선에서 패배가 확정됐던 아이오와 주를 첫 행선지로 골랐다. 전용기 대신 미니밴을 타고 1600km 대장정에 나서는 등 유세 전략도 이전과는 달라졌다. ‘워싱턴포스트’는 ‘클린턴 전 장관은 선거 유세도 대규모 행사를 자제하고 당분간 서민들과의 타운홀 미팅을 중심으로 꾸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

2008년과 달리 민주당 내 별다른 경쟁자가 없는 만큼 경선 통과 가능성은 높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미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가 3월 26일부터 29일까지 민주당 지지층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 대선주자 중 클린턴 전 장관의 지지율은 69%. 공동 2위인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상 12%)을 큰 폭으로 제쳤다. 선거자금 모금도 지금까진 파란불이다. 폴리티코는 최대 20억 달러대의 자금 마련이 무난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번 대세론에도 복병은 숨어 있다. 국무부 장관 시절 가장 큰 실패 사례로 꼽히는 리비아 벵가지 사태를 놓고 공화당은 ‘힐러리 때리기’를 본격화할 태세다. 최근 국무부 장관 시절 개인 e메일을 공무에 사용해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논란이 인 것이나, 클린턴 전 장관으로선 지긋지긋한 ‘르윈스키 스캔들’도 선거 국면에서 언제든 부상할 수 있다. 대통령 부인 시절부터 워낙 대중에게 오래 노출돼 새롭게 보여줄 게 별로 없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 ‘개혁 아이콘’인 워런 의원 띄우기가 계속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처럼 여성 유권자들이 정작 여성 후보를 잘 지지하지 않는 성향도 클린턴 전 장관이 넘어야 할 과제 중 하나. 실제로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기대한 만큼의 여성 표를 얻지 못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의 당시 조사 결과를 보면 클린턴 전 장관은 여성 선거인단 표의 49%를 얻어 오바마 대통령(45%)보다 5%p 앞서는 데 그쳤다. 반면 남성 선거인단에선 20%p(37% 대 57%)나 뒤졌다.

미국 ‘파이낸셜타임스’는 ‘2008년 당시 많은 여성이 클린턴 전 장관을 ‘남편(빌 클린턴 전 대통령) 덕에 높은 자리까지 올라온 수완 좋은 여자’ 정도로 깎아내렸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18~29세 젊은 백인 여성층에선 오바마 대통령에게 12%p(42% 대 54%)나 뒤졌다.

이를 의식해서일까. 클린턴 전 장관은 4월 13일 자원봉사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내 손녀를 포함해 모든 여자아이가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싸우겠다”며 ‘딸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머니’ 이미지를 내세우기도 했다.



주간동아 2015.04.20 984호 (p60~61)

  • 이승헌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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