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3

2015.04.13

비장의 한 수는 최후의 순간에 꺼내라

의견 충돌을 돌파하는 ‘절약의 원칙’

  • 남보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lyzcamp@naver.com

    입력2015-04-13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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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장의 한 수는 최후의 순간에 꺼내라

    미군 야전교범의 기준교리 ‘OPERATIONS(작전)’.

    패스트푸드에 익숙한 신입사원이 청국장으로 결정된 팀의 점심회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고객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직업관을 가진 사람이 싼 제품을 비싸게 되팔아 이익을 남기자는 동료와 말다툼을 벌인다. 이처럼 식사 메뉴 선정부터 추진하는 사업에서의 가치관까지 사회생활은 갈등과 충돌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견 충돌은 그 자체가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것이 감정적 대립으로 번지는 경우다. 개인의 스트레스는 더 커지고 조직의 목표 달성은 요원해진다. 따라서 조직에서 취향이나 가치관이 충돌하는 경우 이를 단기간에 직접 해결하려고 애쓰거나 참아 넘기다 곪게 만드는 것보다, 장기적 변화를 지향하는 한편 문제 해법을 세심히 설계해보는 게 현명하다. 이번 호에 제시하는 ‘절약의 원칙(principle of economy)’은 그러한 설계도의 좋은 밑그림이 돼줄 것이다.

    절약의 원칙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껴야 잘산다, 검소하게 생활하라 같은 경구는 누구나 흔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사작전에서 말하는 ‘절약’은 뉘앙스가 좀 다르다. 한마디로 아끼는 게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낭비 없이 잘 쓰는’ 데 방점을 찍는다.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예산이 많이 소요되더라도, 낭비 없이 사용했고 효과가 크다면 절약의 원칙에 부합했다고 본다.

    ‘나를 아는 것’이 싸움의 시작

    사실 절약의 원칙은 나폴레옹 전술의 핵심 가운데 하나였다. 나폴레옹 이전의 전투는 대부분 상대와 아군의 전력(全力) 및 전력이 맞부딪히는 산술적 게임, 결투(duel)의 확장판이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부대를 주력(main effort)과 조력(secondary effort)으로 나눠 결정적 국면에서만 주력부대를 사용했다. 이러한 전술은 이후 전쟁과 군사작전 모델로 자리 잡는다.



    미군 야전교범의 기준교리 ‘OPERATIONS (작전)’는 이 원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먼저 목표를 중심으로 부대를 운용해야 한다. 군사적 관점에서 절약이란 목표 중심의 부대 운용과 전투력 분배가 합쳐진 행위다. 부대를 운용하는 목적과 방법이 모두 작전 목표에 부합해야 하고, 한정된 자원을 효과 위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목표 달성에 직접적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상황과 위협의 변화에도 끊임없이 최초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려 성급한 조치, 감정적 오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다음으로는 목적 없이 부대를 방치하지 말라는 원칙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자원과 그 속성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기존 부대는 물론 지원받은 전투력까지 시간대별 예상되는 위치, 그 지점에서의 전투력 수준을 모두 머릿속에 넣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손자병법’ 제3편 모공(謀攻)을 보면 저 유명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 등장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뒤 문장이다. 그것은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즉 ‘적을 몰라도 나를 알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진다(비긴다)’는 것이다. ‘나를 아는 것’이 곧 싸움의 시작이다.

    마지막으로 효과 중심의 분배다. 이는 단순히 보유한 자원을 고르게 나누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지고 있는 힘을 언제 어디에 주로 사용할지 효과를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 보통 군사작전에서는 가장 우수한 전투력을 ‘예비(reserve)’로 남겨둔다. 총력전 개념의 현대전에서는 개전 초기 기습이나 충격이 갖는 의미가 상당히 희석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군사작전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건 처음의 기막힌 한 수가 아니라 마지막 외통수다.

    비장의 한 수는 최후의 순간에 꺼내라
    나설 때와 물러설 때

    비장의 한 수는 최후의 순간에 꺼내라

    ‘손자병법’ 저자인 중국 오나라 손자(孫子)의 초상화.

    비즈니스 현장에서 절약의 원칙을 적용할 때 가장 먼저 염두에 둘 명제는 ‘항상 충돌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목표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여러 목표가 상충한다면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뇌며 스스로 학습하라는 것이다. 의견 충돌이 벌어졌을 때는 무턱대고 부딪힐 게 아니라 지금이 과연 승부를 걸어야 할 결정적 시점인지, 물러서면 안 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인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예컨대 팀 단합이 목표라고 해보자. 오래전 사회초년생 시절을 생각하면서 호쾌하게 “자, 오늘은 삼겹살, 소주 회식이니까 집에 늦는다고 다들 말해놔!”라고 통보해서는 소통이 어려워질 뿐이다. 팀원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고려하는 세심한 리더는 많지 않고, 개인 취향과 상치되는 결정은 언제든 있을 수 있다. 팀 결정이 개인 취향이나 욕구보다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판단되면 그 결정에 따라야 할 것이다.

    만약 물러설 수 없다고 판단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는 사람이 이익 창출을 위해 유해물질이 포함된 싼 제품을 수입하자는 동료와 타협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러설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엔 필승 전술을 꺼내 들어야 한다.

    모든 자산을 철저히 파악해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기준은 바로 즉응성(readiness)이다. ‘OPERATIONS’는 이를 두고 ‘행동할 시점이 다가올 때 모든 부대는 행동해야만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보유한 자산을 다 파악했다 해도 필요한 시점에 즉각 움직일 수 없다면 방치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대 견해를 꺾기 위해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자산을 모두 점검하고 즉각 꺼내 들 수 있도록 준비해둬야 한다는 뜻이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마지막 비장의 한 수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아침회의 시작부터 오후 협력업체 미팅까지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의견 충돌은 빚어진다. 그럴 때마다 부딪히는 사람은 분명 하수다. 목표 달성에 큰 영향이 없는 이슈에서는 힘을 아껴뒀다 결정적 시점에 비장의 한 수를 꺼내는 이가 고수다.

    이 한 수는 가능한 한 마지막에 꺼내는 게 좋다. 협상의 대가 허브 코헨은 절대로 이를 처음에 꺼내 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협상전략에선 이러한 방법을 ‘케이크에 크림 바르기’라고 한다. 빵을 다 굽고 나서 크림을 바르듯, 비장의 한 수는 마지막에 써먹어야 한다는 의미다. 비장의 한 수는 상대가 모르기 때문에 ‘秘藏’이다. 결정적일 때 도와주기로 한 상사든 코피 터지며 익혀둔 제2외국어든, 칼자루를 쥐기 전엔 칼집에서 꺼내지 않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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