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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들이 엄마 잃을까 두려워하며 살게 할 순 없어”

美 퍼거슨 시 폭동사태 7개월, 흑인 법조인들과 함께한 하루

“아들이 엄마 잃을까 두려워하며 살게 할 순 없어”

“아들이 엄마 잃을까 두려워하며 살게 할 순 없어”

미국 미주리 주 퍼거슨 시 폭동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웨스트 플로리선트 거리. 파괴된 건물들이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바로 그날, 네 살 된 아들과 흑인시위 현장에 나갔습니다. 흐느끼는 내게 아들이 물었어요. ‘다음은 엄마 차례야?’ 이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저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3월 28일 오전 11시(이하 현지시간),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시 르네상스 호텔 세미나장. 지난해 8월 9일 브라운(당시 18세)이 백인 경찰관 대런 윌슨(29)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뒤 7개월이 넘도록 거리에서 흑인시위를 이끌어온 아이아나 델라인(26)은 이렇게 말하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그는 “겨우 네 살짜리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엄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면 안 되는 것 아니냐. 나는 내 아들이 그런 세상에서 사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며 간호사의 길을 중단하고 투사가 된 이유를 설명했다.

시위에서 법률로

전미흑인법조인협회(NBA)가 ‘퍼거슨 사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주최한 이날 세미나에는 델라인 등 퍼거슨 흑인시위 지도자 4명이 단상에 올라 흑백차별의 높은 장벽에 부딪혀 싸웠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거리에서 진행되던 시위가 흑인 지식인들의 공론장으로 자리를 옮겨 질적으로 승화되는 현장이었다.

시위대 총지도자로 미국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는 데릭 로빈슨(35) 목사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는 보수적인 목사였지만 브라운의 죽음을 본 뒤 예배를 집도하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교회가 이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논평을 낸 것은 브라운이 죽고 이틀이 지난 뒤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사건을 알았을 때 늘 일어나는 사건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시신이 몇 시간이나 길거리에 방치돼 있고 그의 어머니가 울고 있지만 아무도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꿔 현장으로 달려갔다”고 말하며 울분을 터뜨렸다.



카를로스 볼(27)은 “2013년 형이 큰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며 “브라운이 죽자 마치 동생을 잃은 듯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었다”고 증언했다. 아들과 함께 나온 아니타 존스(24)는 자신을 ‘실직한 싱글맘’이라고 소개한 뒤 “우리는 결코 투쟁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거리에 있어야 할 흑인시위 지도자들을 세미나장에서 한꺼번에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이들이 흑인 변호사들의 연례회의에 초대돼 연단에 선 것은 3월 4일 연방 법무부가 퍼거슨 사법당국의 흑인차별 조사결과 보고서를 발표한 데 힘입어서다. 연방정부가 퍼거슨 시의 구조적인 인종차별을 인정하자 흑인 지식인들까지 관심을 보이고 나선 것이다.

실제로 시위대는 이날 세미나의 주인공이었고 영웅이었다. 미주리 주가 지역구인 이매뉴얼 클레버 연방 하원의원은 로빈슨 목사와 델라인 등 네 청년을 청중에게 소개하면서 “흑인 민권운동사를 보면 늘 암흑 속에서 별이 나타났다. 여기 있는 젊은이들은 바로 퍼거슨에서 나온 별들”이라고 소개했다. 장내에는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날 세미나를 기획한 패멀라 미네스 NBA 회장은 “우리는 법률가다. 흑인 청년들이 거리에서 피를 흘려 사회를 바꿨다면 우리는 미주리 주, 미국의 법을 바꿔 기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미국 전역에서 경찰들의 흑인차별 행위에 대한 자료를 얻어 이에 대한 연방 법무부의 권고안을 얻어내자”고 역설했다. 미국 흑인의 지성으로 유명한 코넬 웨스트 유니언신학대 교수는 “백인 경찰이 비무장한 흑인을 총살하는 것은 명백한 반인권 행위”라며 “그런 경찰은 감옥에 보내야 한다. 그것이 정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성실(integrity), 정직(honesty), 품위(decency), 사랑(love)이라는 4가지 덕목을 지켜야 한다”며 백인을 설득하기 위한 흑인민권운동의 지향점을 제시했다.

“스스로 바꿔야 한다”

“아들이 엄마 잃을까 두려워하며 살게 할 순 없어”

전미흑인법조인협회(NBA)가 3월 28일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시 르네상스 호텔에서 개최한 ‘퍼거슨 사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세미나에 참석한 여성 흑인 운동가.

이날 오전 세미나를 마친 미네스 회장은 7개월 동안 시위와 폭동에 지친 흑인 주민들에게 작은 위로 잔치를 베풀었다. 그를 따라 이날 오후 방문한 퍼거슨 시 그레이스 교회 뒷마당에서는 흑인 50여 명이 모여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있었다. 이 행사에는 퍼거슨 시 관련 지도자도 대거 참석해 주민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교회 예배당에서 만난 미주리 주 샤론 페이스 하원의원(74지역구)과 토미 피어슨 하원의원(66지역구)은 기자에게 최근 주 의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흑인차별방지 법안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제가 발의한 법안(HB38)은 경찰관 교육에 ‘다양성과 민감성’ 과목을 넣는 겁니다. 한마디로 인종적, 지역적 다양성을 수용하면서 소요나 평화적 시위 상황에 대처하는 기술을 가르치자는 거죠. 그래야 퍼거슨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습니다.”(페이스 의원)

흑인인 피어슨 의원은 브라운을 총살한 윌슨 경관처럼 크게 위태롭지 않은 상황에서 피의자에게 무력을 사용한 경찰관은 반드시 직무에서 제외돼 무급으로 조사받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는 “경찰관의 직무 행태를 통제하는 것이 개혁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며 “우리는 우리를 미워하는 경찰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미주리 주 의회에는 페이스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포함해 △경찰관 관련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제 도입 △경찰관의 보디캠 착용 의무화 법안 등 법안 8건이 발의돼 있다. 3월 30일 오후 6시부터 주 의회 청사에서는 피어슨 의원이 발의한 법안(HB602)에 대한 첫 청문회가 열렸다. 의원들은 관련 법안의 진행 상황을 주민들에게 뉴스레터로 알리는 등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페이스 의원은 “법안 진행 상황을 알리고 청문회에 주민들을 직접 초청해 제도 개선에 대한 의회의 진정성을 알리고 있다”며 “주민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라고 소개했다.

“아들이 엄마 잃을까 두려워하며 살게 할 순 없어”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관의 총격으로 사망한 현장에 놓여 있는 추모 꽃다발.

흑인 주민의 각성과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내부에서 나오고 있었다. 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NAACP)의 존 게스킨 전국위원회 위원 겸 대변인은 “흑인들도 선거든 지역사회 활동이든 열심히 참여하면서 스스로 환경과 편견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4월 7일 치른 퍼거슨 시의원 선거에서 당선자 3명 가운데 2명이 흑인이었다. 인구 2만1000명이 사는 퍼거슨 시의 주민 67%는 흑인이지만, 시장과 시의원 6명 등 7명으로 구성되는 시의회 의원 가운데 흑인은 1명에 불과했다. 이번 선거 결과 퍼거슨 시의회는 백인 4명, 흑인 3명으로 121년 역사상 가장 다양한 인종 구성을 갖추게 됐다.

7개월 폭동시위로 폐허가 된 퍼거슨 시

전쟁터 방불케 하는 거리, 불신 여전한 주민들


“아들이 엄마 잃을까 두려워하며 살게 할 순 없어”

2014년 8월 9일 마이클 브라운이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기 전 담배를 훔쳤던 주유소(위)와 퍼거슨 시 경찰서.

흑인 폭동이 휩쓸고 지나간 지 5개월여가 지났지만 당시의 ‘상처’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3월 28일 오후 방문한 미국 미주리 주 퍼거슨 시는 지난해 8월 9일 백인 경찰관의 총격에 의해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사망하면서 벌어진 시위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상점 밀집가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웨스트 플로리선트 거리에는 파괴된 건물들이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었고, 거리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한인 교포가 운영하던 휴대전화 대리점 ‘JC와이어리스’ 매장은 당시 시위대가 지른 불에 타 무너진 모습 그대로였다. 건물 남쪽으로 삐죽이 솟은 대형 성조기와 맥도날드 햄버거 광고 아치만이 이곳이 이라크나 시리아의 전쟁터가 아닌,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듯했다. 브라운이 백인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기 전 담배를 훔쳤던 주유소 건물도 파괴된 채 주유기 몇 대만 서 있었다. 아랍인이 소유한 옆쪽 네일아트 건물은 공습이라도 받은 듯 건물 한쪽이 허물어져 있었다.

퍼거슨 시 경찰서 옆에서 흑인 미용용품점을 운영하는 교민 이백우 씨는 “계속된 시위로 흑인 주민들조차 저녁에는 거리에 잘 나오지 않아 도시의 활력이 떨어졌고 당연히 매출도 줄었다”고 안타까워했다. 폭동 때 이씨의 가게 건물도 일부가 불에 타고 약탈 피해를 당했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2월 다시 가게 문을 열었지만 50만 달러의 피해액 가운데 보험금을 받지 못한 20만 달러는 고스란히 떠안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브라운이 총에 맞아 쓰러진 주택가 도로 위에는 아직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흑인 조문객이 끊임없이 놓고 가는 곰인형과 꽃다발들이 찬바람을 맞으며 놓여 있었다. 브라운 또래의 흑인 청년 2명이 이곳을 지나다 주변을 촬영하는 기자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내 사진을 찍지 말라”고 경고하며 사라졌다. 언론과 외지인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이 깊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날 안내는 사건 현장이 지역구인 샤론 페이스 미주리 주 하원의원이 자청하고 나섰다. 백인 여성이지만 흑인 지역사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4선째를 맞은 그는 “지역구 흑인 주민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백인 경찰관들이 밤중에 이곳을 지나며 추모 상징물들을 경찰차로 들이받거나 심지어 오줌을 누고 달아났다’는 등 불신과 증오를 전하는 증언들이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브라운이 사망한 지점에는 누가 세워놓은 것인지 알 수 없는 검은 나무가 서 있었다. 그 위에는 하얀 페인트로 ‘그(백인)들은 우리(흑인)를 매장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씨앗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They tried to bury us, but they didn’t know we were seeds)’는 비문(碑文)이 쓰여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흑인들은 현재 논의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을 요구했다. 조셉 모로(48) 목사는 “찔끔찔끔 바꿀 것이 아니라 경찰과 법원을 채우고 있는 사람 모두를 바꿔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학교 교사인 그의 아내 글로리아 모로(49)도 “중환자에게는 반창고를 붙일 게 아니라 새로운 약을 써야 한다”며 “주민들의 요구를 외면하면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간동아 2015.04.13 983호 (p68~70)

  • 신석호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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