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2

2015.04.06

의사보다 똑똑하고 은행원보다 빠른 인공지능

IBM ‘왓슨’으로 본 지식노동의 자동화…암 진단도 척척, 콜센터 직원 대신 컴퓨터

  • 박진우 KB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jinu.park@kbfg.com

    입력2015-04-06 11: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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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보다 똑똑하고 은행원보다 빠른 인공지능
    AI. 흔히 인공지능으로 번역되는 ‘Artificial Intelligence’의 약자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인간의 학습 · 추론 · 지각능력은 물론, 자연언어를 이해하는 능력 같은 인간의 사고능력을 구현하는 기술이다. 개인용 컴퓨터(PC)를 개발한 미국 IBM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인공지능 분야에 대해 연구를 수행해온 대표적인 회사다. 창업주 토머스 왓슨의 이름을 물려받은 ‘왓슨(Watson)’이라는 프로그램이 그 주인공이다.

    한번 배운 내용 절대 잊지 않는 학생

    이 프로그램의 가장 독보적인 경쟁력은 바로 자연어를 처리할 수 있다는 점. 대량 병렬 분석 기능을 통해 단어에 함축된 실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으며, 현재는 영어를 처리하고 이해할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이와 함께 왓슨은 스스로 가설을 세운 뒤 실제 증거를 찾아내 해당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미국에서 왓슨의 이러한 능력이 크게 주목받은 계기는 2011년 미국 유명 TV 퀴즈쇼 ‘제퍼디’에 출연하면서. IBM이 3년간 연구원 20명을 투입해 준비한 이 쇼에서 왓슨이 유명한 퀴즈 챔피언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자 이를 산업 현장에서 활용하겠다는 기업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까지 이러한 노력이 가장 두각을 나타낸 분야는 의료산업계다. 미국 암센터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손꼽히는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암을 진단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2013년



    3월 현장에 투입되기 전 1년 동안 왓슨은 60만 건 이상의 진단서와 200만 쪽의 의료 전문서적, 150만 명 분량의 환자 기록을 습득했고, 이제는 의사들에게 암 진단과 관련한 조언을 하고 있다. 이 암센터의 최고경영자(CEO)가 “왓슨을 통해 세계 모든 의사가 최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잠재성이 엄청난 시도다.

    이 밖에도 미국 MD 앤더슨 암센터에서는 백혈병 진료에 왓슨을 활용하고 있고, 메이요 클리닉이나 클리블랜드 클리닉 같은 유명 의료기관들이 IBM과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왓슨의 활약을 경험해본 의료계 종사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한번 배운 내용은 절대로 잊지 않는 학생’에 비유한다. 의대생이 교육과정을 통해 이 정도 분량을 학습하려면 1주일에 160시간, 하루 22시간 이상 투자해야 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공공영역에서도 왓슨을 활용하고 있다. 미국 군인 전문보험사 USSA는 미군과 그 가족에게 군 전역 후 사회에 복귀할 때 필요한 내용을 상담하는 작업에 왓슨을 투입했다. 사회 적응과 관련한 총 2000여 가지 질문에 대해 전문상담이 가능하고, 3000쪽 이상의 전역 관련 전문서류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어서다.

    의사보다 똑똑하고 은행원보다 빠른 인공지능
    한국어 · 일본어 습득 중

    왓슨의 가능성에 주목한 또 다른 나라는 일본이다. 최근 이동통신사업자 소프트뱅크는 그간 개발 중이던 로봇 페퍼(Pepper)가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도록 왓슨을 적용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를 위해 왓슨은 2월부터 일본어를 새로 공부하는 상황. 존댓말 등 영어와는 사뭇 다른 언어구조 가 가장 큰 어려움이다. 다른 언어를 습득하고 이해해 분석하기까지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금융업계 움직임도 빠르다. 일본 3대 은행 가운데 하나인 미즈호은행은 왓슨을 콜센터에 적용해 고객서비스를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에서는 고액 자산가들에게 자문을 제공하는 일에, 남아프리카공화국 네드뱅크(Ned Bank)에서는 소셜미디어 모니터링 같은 분야에 왓슨을 활용하려는 시도를 진행 중이다. 단순 반복 작업에 인공지능을 투입함으로써 고객만족도를 높이고 업무 효율성을 증대하는 게 주요 목표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IBM 왓슨연구소는 최근 서울시와 협력해 노인 건강, 질병 관리, 도시환경 같은 서울시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왓슨이 한국어를 새로 배워야 하므로 실현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IBM은 왓슨을 다음 세대 혁신 상품으로 육성 중이다. 1월에는 인공지능 기술을 보유한 신생업체 ‘딥마인드’를 인수하기 위해 구글과 IBM, 페이스북이 경쟁을 벌여

    4억 달러를 제시한 구글이 최종 승자가 됐다. 왓슨이 실제로 유의미한 성과를 창출해내려면 앞으로도 장기간 투자가 필요할 테지만, 그 후폭풍은 상상을 넘어서는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국적 컨설팅업체 매킨지는 인공지능을 통한 ‘지식노동의 자동화’가 2025년이면 연간 5조2000억~6조7000억 달러의 경제 파급 효과를 낳을 것이라 예상한 바 있다.

    유엔이 발표한 ‘미래보고서 2045’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금융컨설턴트나 은행원, 콜센터 직원 등 금융업 관련 직종 대부분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리라 전망하기도 했다. 다만 얼마 전까지는 정보기술(IT)이 비용 절감 수단으로 활용돼 노동력을 대체하는 모습을 주로 보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기존 노동력을 한층 더 효율적으로 보완하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빠르게 진행되는 개발 속도와 관련 회사들의 집중적인 투자를 감안하면, 머지않은 미래에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리란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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