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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

실력보다 인성 더 중요…능력 뛰어나도 팀워크 해치면 무용지물

용병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

용병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

불성실한 태도로 울산 모비스에서 퇴출당한 로드 벤슨(왼쪽)과 애국가가 울리는 중 국민의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모비스의 외국인 선수 리카르도 래틀리프.

남자 프로농구 창원 LG의 외국인 선수 데이본 제퍼슨이 경기 전 국민의례 때 스트레칭을 해 ‘국가 모독’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전격 퇴출됐다. 플레이오프(PO)에 올라 ‘봄 농구’를 펼치던 소속팀으로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농구뿐 아니라 야구, 축구, 배구 등 국내 4대 프로스포츠는 이미 오래전부터 경기력 향상을 위해 외국인선수제도를 도입했다. 비싼 돈을 주고 데려온 만큼, 적잖은 선수가 국내 선수들에 비해 빼어난 기량을 과시하며 리그 발전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인성을 갖추지 못한 일부 용병 선수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물의를 일으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러시아리그 득점왕 출신인 제퍼슨은 2013년 LG에 입단할 때부터 화제를 뿌렸던 선수다. 눈길을 끈 월등한 커리어뿐 아니라 천문학적인 몸값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면서 주목 대상이 됐다. 그동안 한 번도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던 LG는 고액을 쓰고 데려온 제퍼슨 덕에 2013~2014시즌 첫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재계약에 성공한 제퍼슨은 이번 시즌 초반 지난 시즌과 같은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니 보여주지 않았다. 겉으론 부상을 내세웠지만 무리하게 뒷돈을 요구했고 구단이 이를 거부하자 태업을 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재활 기간 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술집 출입 사실을 공개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주목을 끌던 그는 결국 대형사고를 쳤다. 3월 18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울산 모비스와의 ‘2014~2015 KCC 프로농구’ 4강 PO 1차전에 앞서 애국가가 울리는 내내 스트레칭을 했다. 이 모습은 전파를 타고 그대로 중계 화면에 잡혔다. 이튿날 제퍼슨은 사과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였지만, 회견 직전 SNS에 양쪽 가운뎃손가락을 편 볼썽사나운 사진을 올려 회견의 진정성마저 의심받으며 더 큰 비난에 휩싸였다. 구단으로선 별다른 선택 방법이 없었다. 성난 ‘팬심’을 가라앉히고, 구단 이미지 추락을 막기 위해 자체 퇴출이라는 강력한 징계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프로농구연맹(KBL)도 그를 영구 제명해 한국 농구 무대에 더는 발을 붙이지 못하게 했다.

반항, 줄행랑 머리 아픈 각 구단들



LG는 유독 외국인 선수와 관련해 아픈 기억이 많은 팀이다. 1999~2000시즌 개막을 앞두고선 직전 2시즌 동안 평균 27.7점을 기록했던 에이스 버나드 블런트가 돌연 미국으로 줄행랑을 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 시즌 PO에 오르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2006~2007시즌에는 퍼비스 패스코가 PO 경기 도중 상대 선수를 때리고 퇴장 명령을 내린 심판을 밀어 넘어뜨리며 희대의 말썽꾸러기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패스코도 곧바로 KBL로부터 영구 제명됐다.

용병 때문에 머리 아프기는 다른 종목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었던 루크 스콧. 그는 역대 KBO(한국야구위원회) 리그에 온 용병 가운데 메이저리그 최고 성적을 자랑했지만 시즌이 한창이던 7월 중도에 짐을 싸야 했다. 이만수 당시 감독에게 공개적으로 대들었기 때문이다. 그전에 2군행 통보를 받고 이미 한 차례 반항했던 그를 이 감독은 더는 놔두지 않았다. 2013년 빅리그 91경기에 나섰고, 메이저리그 통산 135홈런을 기록한 스콧은 한국에서 33경기 출장에 타율 0.267, 홈런 6개에 그쳤다.

야구에서 악동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선수는 롯데 자이언츠에서 활약한 ‘검은 갈매기’ 펠릭스 호세다. 1999년 롯데에 입단한 첫해부터 타율 0.327에 36홈런, 122타점으로 괴물 같은 활약을 펼친 그는 그해 삼성 라이온즈와의 PO 7차전에서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대형사건을 터뜨렸다. 6회 초 홈런을 때린 뒤 3루를 돌고 있을 때 관중석에서 맥주캔 등이 날아들자 이성을 잃은 그는 더그아웃 앞에서 스탠드로 방망이를 집어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2001년 9월 18일 삼성전에서는 상대 투수 배영수를 폭행하기도 했다. 7회 배영수가 자신의 등 뒤로 날아가는 공을 던지자 씩씩대며 볼넷을 골라 1루에 나간 뒤 다음 타자 훌리안 얀이 배영수의 공에 옆구리를 맞자 기다렸다는 듯 득달같이 마운드로 달려들어 등을 돌리고 서 있던 배영수를 주먹으로 가격했다. 타자와 투수의 빈볼 시비는 야구의 일부고 종종 연출되는 장면이지만, 1루 주자가 마운드로 쫓아가 투수를 때리는 장면은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한동안 국내 무대를 떠났다 다시 돌아온 호세는 2006년 8월 5일 인천 문학야구장에서 열린 SK와 경기에서 투수 신승현의 공에 맞은 뒤 도망가는 투수를 잡으려고 상대 더그아웃으로 돌진하기도 했다. 다행히 최태원 SK 코치의 제지로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한번 악동은 영원한 악동’임을 보여줬다. 그는 롯데에서 ‘잘나갈 때’ 부산 시내 집창촌을 제집 드나들 듯하고, 종종 만취해 추태를 부리기도 해 롯데 프런트가 뒷감당하느라 적잖이 고생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용병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

프로농구 창원 LG는 3월 20일 비윤리적 행동으로 물의를 빚은 외국인 선수 데이본 제퍼슨(오른쪽)을 퇴출한다고 밝혔다.

감독의 ‘용병 길들이기’ 팀 운명 좌우하기도

용병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과의 마찰로 2014 시즌 중 퇴출당한 루크 스콧.



국내 리그에서 외국인 선수의 팀 내 비중은 상상 밖으로 크다. 종목에 상관없이 그렇다. 특히 5명이 플레이하는 농구 같은 경우는 용병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잘 뽑은 용병 하나가 한 시즌 농사를 좌우한다.

유재학 모비스 감독은 올 시즌 개막에 앞서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 주역인 로드 벤슨을 전격 퇴출했다. 오프시즌 때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팀을 떠나 있던 그는 소속팀으로부터 ‘벤슨이 무리한 뒷돈을 요구하고 불성실한 태도로 훈련한다’는 보고를 받고 지체 없이 퇴출을 지시했다. 유 감독은 인성을 중요시하는 지도자다. 개인보다 팀을 우선으로 한다. 아무리 능력 있는 용병이라도 팀워크를 해친다면 없느니만 못 하다고 생각한다. 벤슨이 떠난 뒤 유 감독은 ‘용병 2옵션’이던 리카르도 래틀리프를 에이스로 키웠고, ‘인성 좋기로 소문난’ 아이라 클라크를 데려와 벤치 분위기를 잡았다. 모비스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큰 이유다. 이처럼 유 감독의 ‘용병 다루기’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남자 프로배구의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도 용병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다. 지금은 국내 최고 공격수로 성장한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레오)는 신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엄청난 훈련량에 놀라며 “못하겠다”고 반기를 들었다. 신 감독은 “당장 돌아가라”며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을 냈고, 그제야 레오가 정신을 차리고 고분고분 훈련을 소화했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종목을 불문하고 우리나라에 오는 외국인 선수 대부분은 성적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연봉도 제법 받는다. 덜 성숙한 경우라면 한국 리그를 우습게 보고, 묘한 우월의식을 갖기도 한다. 각 사령탑이 용병과 눈에 보이지 않는 기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결과에 따라 팀 운명이 엇갈리기도 한다.



주간동아 2015.03.30 981호 (p62~63)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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