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0

2015.03.23

환상의 면발과 국물, 넋을 잃다

서울 칼국수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5-03-23 13: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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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의 면발과 국물, 넋을 잃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할머니칼국수’에서 칼국수 반죽을 만들고 있다.

    1960년대와 70년대 우리 먹을거리는 커다란 변혁을 겪었다. 쌀밥과 김치, 국으로 구성된 한국인의 밥상은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쌀 부족으로 보리 혼식에 이어 분식이 장려됐다. 중국집 짜장면과 짬뽕은 물론이고 라면이 한국인의 일상식이 됐다. 그리고 밀가루 음식으로는 드물게 한국인이 오래전부터 먹어온 칼국수가 본격적인 외식으로 등장했다.

    외식으로서의 칼국수는 이후 서울에도 깊이 뿌리를 내렸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저렴한 서민 칼국수와 지방의 유명 칼국수가 공존해왔다.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부근 돈의동에는 두 곳의 칼국숫집이 있다. 해물칼국수로 유명한 ‘찬양집’과 멸치 국물로 유명한 ‘할머니칼국수’가 그 주인공. ‘찬양집’의 창업연도는 1965년이다. 집에서나 먹던 칼국수가 정부의 강력한 정책하에 세상 밖으로 본격적으로 나온 바로 그 시기에 생긴 집이다.

    ‘할머니칼국수’는 멸치, 다시마, 양파 등을 넣어 만든 진하고도 개운한 국물과 졸깃하고 잘 익은 면발을 수북하게 담아내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일까. 이 집에서 칼국수 한 그릇을 먹으려면 20~30분을 기다리고도 사람들과 부대끼며 먹어야 한다. 하지만 젓가락을 드는 순간 그 모든 수고로움이 뇌리에서 사라진다. 그만큼 입맛을 끄는 매력이 있다.

    한편, 서울 혜화동 부근의 칼국숫집들은 ‘칼국수=서민 음식’이라는 공식을 보기 좋게 깨는 곳이다. ‘국시집’은 1969년 한옥 집 한 칸으로 시작했는데 항상 정치인과 유명 인사들로 붐빈다.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30년 가까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골집이었던 덕이다. 설렁탕 국물을 연상케 하는 사골 육수에 안동칼국수의 특징인 하늘거리는 면발이 일품이다. 그 위에 다진 고기와 호박이 고명으로 나온다. 경북 안동 양반가에서 사골 국물에 칼국수를 말아 먹은 것에서 유래한 ‘양반식 안동 칼국수’다. 칼국수는 물론이고 안주용으로 좋은 수육과 안동식 식당에서 빠지지 않는 문어수육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집이기도 하다.

    ‘국시집’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그 주변에 하나 둘씩 칼국숫집을 차리기 시작하면서 일대에 칼국수 동네가 형성됐다. ‘혜화칼국수’ ‘명륜손칼국수’ ‘밀양손칼국수’ ‘손칼국수’ 등이 그들이다. 이 집들은 서로 이러저러한 인연을 맺고 ‘국시집’ 스타일의 안동식 칼국수를 팔고 있다. 혜화동 주변이 전국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칼국수 문화를 지닌 동네로 변신한 것도 다 그 때문이다.



    환상의 면발과 국물, 넋을 잃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소호정’의 칼국수(왼쪽)와 종로구 혜화동 ‘국시집’의 칼국수.

    서울 강남에 자리 잡은 ‘소호정’은 1984년 압구정동에 ‘안동국시’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이후 95년 서초구 양재동으로 옮기면서 ‘소호정’으로 이름을 바꿨다. 강남에 안동식 칼국수를 본격적으로 정착시킨 집이 바로 이곳이다. 이 집의 원주인 고(故) 김남숙 할머니는 김영삼 대통령 시절 3개월간 청와대에 들어가 주방장들에게 칼국수 제조법을 전수했던 주인공이다. ‘소호정’ 칼국수의 육수도 한우 양지머리를 고아낸 고깃국물이다. 커다란 사기대접에 칼국수가 넘칠 듯 찰랑거린다. 면발이 국물보다 많아 면과 국물이 한 몸처럼 섞여 있다.

    이 집의 기품 있는 고깃국물은 서민적인 칼국수와 양반가에서 먹던 칼국수가 원래부터 다른 태생임을 보여준다. 안동의 전통적인 면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먹어보면 야들야들 하늘거리지만, 그렇다고 날리진 않는다. 면발의 식감도 좋을뿐더러 고깃국물이 잘 배어 있어 진하고 깊은 맛이 난다. ‘소호정’의 칼국수 한 그릇에는 세련된 칼국수의 이정표가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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