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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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로서의 음악이 사라지는 시대

‘음악의 값’에 대한 소고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5-03-02 1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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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유로서의 음악이 사라지는 시대
    음악을 듣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있다. 음반이 가장 비싸고 음원 다운로드가 그다음, 스트리밍이 가장 저렴하다. 음반에는 음악이 담긴 콤팩트디스크(CD)와 패키지, 케이스 등이 포함되고 음악을 영구 소유할 수 있으니 높은 가격이 매겨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리적 패키지는 없지만 음원 역시 음악을 소유한다는 점에서 그다음 순위를 차지할 수 있다. 반면 스트리밍은 음악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소유할 수 없으니 가장 저렴하다. 요컨대 음악이란 소유와 감상, 두 가지 측면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수단이다.

    모바일 시대의 도래는 이 둘의 소비를 양극화했다. 과거 유물로만 여겨졌던 LP 레코드는 전체 음악 플랫폼 시장에서 최근 몇 년간 괄목할 만한 점유율 상승을 보이고 있다. 2014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판매된 LP가 920만 장에 이른다. 전년 대비 52% 증가라는 놀라운 기세다. 이 통계를 발표한 미국의 음반 판매량 집계기관 닐슨 사운드스캔이 처음 집계를 시작한 1991년 이래 가장 많은 판매량이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 유의미한 판매량 증가 통계는 없지만 다시 LP를 찍는 뮤지션이 점차 늘고 있다. 유재하, 들국화, 김광석의 음악 같은 고전은 물론 김동률, 이적, 아이유, 장기하와 얼굴들, 3호선 버터플라이 등 동시대 뮤지션의 음악 또한 LP로 발매됐다. LP가 추억의 대상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저장 플랫폼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다. 모든 음악 플랫폼 중 LP만큼 소유의 기쁨을 충족시키는 매체는 없기 때문이다.

    30×30cm 커버가 있는 지름 12인치(약 30cm) 레코드판은 마치 대화면 TV 같은 시각적 쾌감을 준다. 음악 역사에서 LP 전성기였던 1970~80년대 커버 아트가 가장 발달했던 이유 또한 이 크기에 있다. 레코드판을 꺼내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얹어 한 면을 들은 후 다음 면으로 뒤집는 일련의 과정은 음악 감상을 일종의 제의적 가치로 승화시킨다. 보관하기도, 감상하기도 가장 번거롭지만 거꾸로 소유 가치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역시 소유 기능을 하는 CD와 음원의 미국 내 판매량이 2014년 전년 대비 각각 9%, 12%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소유로서의 음악 플랫폼이 LP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체 시장을 놓고 볼 때 LP 점유율은 아직 6%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문명 발전 과정과 마찬가지로 음악 시장의 논리 역시 편의성에 기댄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2014년 판매량이 전년 대비 54%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이 그 단적인 증거다. 모바일 시대에 ‘음악의 소유’라는 개념은 사실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만 된다면 언제 어디서나 자기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책 수만 권을 소장한 도서관을 들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문제는 이 편리성에 지불하는 비용이다. 21세기 초 애플이 주도한 다운로드 시장에선 음반과 음원 가격이 큰 차이가 없었다. 이 정책은 하나의 표준이 돼 국내 음악 관계자들이 음원 유통사를 대상으로 벌여왔던 음원 가격 정상화 투쟁의 근거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트리밍 서비스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몇천 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1위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의 경우 오프라인에서도 음악 감상이 가능한 프리미엄 버전이 고작 9.99달러다. 유료 결제 대신 광고를 듣는 버전은 심지어 무료다. 소유를 위해 필요한 공간(음반 수납장이건 하드디스크건)은 사라지고 모든 음악을 들을 수도 있는데, 그 비용이 한없이 저렴해진 것이다. 창작자로선 달가울 리 없다. 지난해 11월 미국 인기 여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자신의 음악을 빼버리며 ‘스트리밍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유도 여기 있다.

    스트리밍이 대세가 될수록 음악의 가치는 내려간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음악의 값을 소유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매기는 건 아날로그 시대 혹은 디지털 시대 초기까지의 패러다임일 것이다. ‘소유로서의 음악’이란 개념이 무의미해진 지금, 음악의 값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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