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5

2015.02.09

똑똑한 온도조절기에 달라진 삶

IT 기술과 빅데이터의 결합…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하는 스마트홈 구축

  • 김진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빅데이터 MBA 주임교수 jhkim6@assist.ac.kr

    입력2015-02-09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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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한 온도조절기에 달라진 삶

    네스트 랩스가 개발한 온도 조절기.



    혁신 아이콘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사람이 고(故) 스티브 잡스다. 그는 혁신을 “현존하고 상용화된 모든 기술을 잘 조합해 사용자가 미치도록 좋아하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무슨 대단한 제품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제품들을 잘만 조합해도 혁신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잡스는 여러 산업을 변혁했지만 그의 위대한 능력은 실제로 무엇을 새롭게 창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변신과 조합의 귀재였다. 어떤 산업을 보고 그 안의 문제점을 발견해 그것을 어떻게 아름답고 단순하며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만들지를 생각해냈다.

    이런 그의 철학을 가장 충실하게 실행한 이가 토니 파델 전 애플 부사장이다. 그는 아이팟 개발을 주도해 ‘아이팟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파델은 2008년 말 애플을 퇴사한 뒤 가족과 함께 프랑스 파리에서 긴 휴가를 보냈다. 1년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새집을 지을 계획을 세웠는데 그가 원하는 집은 단순하고 환경친화적이면서도 기술적으로는 최첨단인 집이었다. 아이팟을 개발한 그가 그런 수준의 집을 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기능과 디자인 모두 바꿔



    똑똑한 온도조절기에 달라진 삶

    가정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활용해 스마트홈을 구축한 네스트 랩스.

    하지만 그는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겪고 매우 놀랐다. 집에서 사용하는 가전기기가 대부분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두 1950년대 수준에서 더는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를 절약해주는 온도조절기를 사려 했지만 기존 제품에는 극히 제한적인 기능만 있었다.

    파델은 이런 현실에서 사람들 삶을 편하게 해줄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견했다. 돋보이는 디자인에 와이파이와 값싼 센서 기술을 결합해 집 안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분석하면 성능이 훌륭한 첨단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그는 동료 몇 명과 함께 차고에서 네스트 랩스(Nest Labs)를 창립했다. 직역하면 보금자리 연구소,의역하면 스마트홈 연구소다. 회사 모토는 집 안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제품들을 한 번에 하나씩 단순하고 예쁘며 생각할 줄 아는 제품으로 재창조해 삶을 편안하게 바꾸는 것이다.

    네스트 랩스가 선택한 첫 제품은 수십 년간 거의 개선되지 않은 온도조절기였다. 베이지색의 못생긴 온도조절기는 미국 가정이 소모하는 에너지의 반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온도조절기가 없을 때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온도조절기 수요는 매우 컸는데, 미국에만 2억5000만 대가 설치돼 있고 매년 1000만 대가 팔렸다.

    네스트 랩스가 새로 내놓은 온도조절기에는 혁신적인 특징이 4가지 있었다. 첫째는 멋진 디자인이다. 눈높이 위치에 달아놓은 아름다운 디자인의 온도조절기는 그 자체가 품격 있는 장식물 기능도 했다. 둘째는 와이파이 장착이다. 이로써 온라인으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고, 집주인이 어디에 있든 스마트폰으로 온도조절이 가능했다. 셋째는 센서로 방 안에 실제 사람이 있는지를 탐지해 그에 따라 온도를 자동 조절하는 기능이다. 넷째는 학습 기능이다. 온도조절기를 설치하면 초반에는 잘 때나 출근할 때와 같이 상황에 따라 온도를 맞춘다. 몇 주가 지나면 센서로부터 들어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언제 어느 상황에서 어떤 온도로 수동 조작했는지를 인공지능을 통해 학습한 뒤, 가족 삶의 패턴에 따라 온도조절기가 자동으로 작동하는 것.

    네스트 랩스의 온도조절기는 이런 기능들이 호평받으며 발매하자마자 제품 수급이 어려울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이 기기로 절약된 에너지도 10억kW에 달했다. 이는 미국 전역에 15분 동안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네스트 랩스 인수한 구글의 야심

    온도조절기가 히트하자 네스트 랩스의 두 번째 제품이 무엇일지에 대해 관심이 높았는데 그것은 바로 연기탐지기였다. 연기탐지기는 사람 생명을 구하는 중요한 기기일 뿐 아니라 법적으로 어느 주택이나 꼭 갖춰야(대부분 몇 개씩) 했기에 수요도 대단히 컸다. 하지만 기존 연기탐지기는 잦은 허위경보 같은 문제로 가정에서 가장 짜증나는 기기였고, 따라서 위험을 무릅쓰고 연기탐지기를 꺼놓는 집도 많았다.

    네스트 랩스의 연기탐지기는 먼저 안전을 개선했다. 사람들이 허위경보를 막으려고 연기탐지기를 꺼놓는 것을 방지하고자 실제로 경보가 울리기 전 부드러운 음성으로 경보가 날 수 있는 상황임을 알리는 기능을 추가해 미리 대비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불필요한 경보를 최소로 줄이고자 온도조절기 센서가 경보 필요성을 판단하게 했다. 예를 들어 목욕탕에 설치된 연기탐지기 센서는 증기와 연기를 분간할 수 있어 샤워할 때 생기는 증기를 감지해도 경보가 울리지 않는 식이다.

    이미 상용화된 지 오래된 기술만을 조합해 만든 2개 제품으로 네스트 랩스는 창업 3년 만에 3억 달러 매출을 올렸고 직원 수도 300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네스트 랩스의 비전은 많은 가전기기가 집 안 환경을 탐지하고, 인터넷으로 서로 소통하며, 시키지 않아도 인공지능으로 알아서 일을 하는 가정, 즉 의식 있는 스마트홈을 만드는 것이다. 네스트 랩스의 이런 비전은 지난해 초 큰 추진력을 얻었다. 빅데이터 기반 서비스의 세계 최강자로 꼽히는 구글이 네스트 랩스를 32억 달러(약 3조2000억 원)에 인수한 것이다. 이 금액은 통상적으로 매출액의 2배 수준인 인수가액을 크게 초과해 10배에 달했다.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할 때 지불한 16억 달러보다 2배나 큰 금액이다.

    왜 구글이 이처럼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며 네스트 랩스를 인수했을까. 한마디로 구글이 네스트 랩스의 현재 가치보다 미래 성장가능성을 크게 평가한 결과다. 특히 네스트 랩스가 개발한, 그리고 앞으로 개발할 기기들과 구글의 크롬캐스트, 구글글래스 등 모바일 서비스를 결합해 스마트홈네트워크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려는 것이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사물인터넷(IoT) 혹은 만물인터넷(Internet of Everything) 같은 차세대 정보기술(IT) 산업에 대한 주도권을 확실히 잡으려는 확고한 의지가 드러났다고도 볼 수 있다. 이제 많은 사람이 구글과 네스트 랩스의 결합이 우리의 가정과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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