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5

2015.02.09

‘B급 작가주의’ 색다른 매력

주성치 감독의 ‘서유기 : 모험의 시작’

  •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5-02-09 09: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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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성치 영화에는 마니아층이 있다. ‘쿵푸 허슬’ ‘소림축구’ 같은 주성치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면 환호하며 반색하는 팬층과 시답잖게 여기는 관객층으로 나뉜다. 일단 마음에 들면 중독적으로 좋아하게 만드는 영화, 그게 주성치 영화다. 주성치가 오랜만에 한국 시장에서 개봉하는 새 영화 ‘서유기 : 모험의 시작’도 딱 그렇다.

    ‘서유기’는 중국 고전 중에도 고전이다. 가까이는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에서부터 멀게는 중국 드라마 ‘서유기’에 이르기까지, 이 고전을 각색한 버전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서유기’를 읽지 않았다고 해도 누구나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의 이름과 근두운(筋斗雲), 진구저우(손오공 머리에 씌워져 있는 금테를 죄는 주문) 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영화 ‘서유기 : 모험의 시작’은 우리가 잘 아는 이 ‘서유기’의 프리퀄이라 할 수 있다. 삼장법사가 도력을 얻기 전, 그리고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이 요괴였던 시절부터 시작한다. 영화 서두는 주인공 진형장이 마을에 속출하는 요괴를 잡고자 나서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영화적 관습을 깨는 장면이 등장한다. 진형장이 되레 요괴에게 당하는 것이다. 그 결과 고작 다섯 살 남짓한 여자아이가 관객 눈앞에서 처참히 요괴 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이를 구하려던 엄마 역시 희생당한다. 어린 여자아이의 죽음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 이는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의외의 사실주의적 재현이라 할 수 있을 이 장면에서 ‘서유기 : 모험의 시작’은 빤한 할리우드 서사와 차별성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영웅이 중생을 구하는 얘기가 아니라 아직 ‘조금’ 부족했던 진형장의 성장담이다. 진현장의 뛰어난 점은 무척 순수하고 선하다는 것. 그러나 이 선함은 요괴를 잡고, 부수고, 해결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요괴를 붙잡고 나서 ‘동요 300수’를 불러 마성에 갇힌 순수함을 깨우치려는 행동 역시 실패하기 일쑤다. 그는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 하고, 눈앞에서 죽은 소녀 때문에 슬퍼하지만 막상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구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스승이 진형장에게 말했던 ‘조금’ 부족했던 부분이 무엇인지 밝혀진다. 비로소 그는 사랑을 기피하는 게 도가 아니라 중생의 욕망을 큰 사랑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도이며, 스스로 고통을 알아야만 중생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관점에서 보면 ‘서유기 : 모험의 시작’의 특수효과는 어설프고, 표현은 키치적이다. 하지만 주성치는 자기 영화의 어설픔을 숨기지 않는다. 어떤 점에서 B급 작가주의라고 할 수 있다. 뚱뚱한 사람을 비하하고, 신체가 분리되는 참혹한 살인 장면이 난무하지만 잔혹하거나 비윤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다. 마치 어린아이의 무해한 장난을 보는 기분이랄까. 유치하고, 썰렁한 주성치식 세계. 색다른 모험극이 필요한 관객이라면 느긋한 마음으로 즐겨볼 만하다.

    ‘B급 작가주의’ 색다른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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