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4

2015.02.02

침체된 라면시장 돌파구는 ‘면발’

불황일수록 쫄깃한 식감과 매운맛 당겨

  • 김지현 객원기자 koreanazalea@naver.com

    입력2015-01-30 15: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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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체된 라면시장 돌파구는 ‘면발’
    겨울이면 ‘이것’ 한 사발이 그리워진다. 탱탱한 면발에 얼큰한 국물은 물론,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까지 맛있을 듯. 끓는 물에 푹 익히면서 파도 썰어 넣고 달걀도 풀어 넣는다. 신김치도 이것과 먹으면 훌륭한 반찬이 된다. 몇 분 동안 보글보글 끓인 뒤 나무젓가락을 뚝 쪼개면 먹을 준비 끝. 산이나 스키장에 갈 때, 해외여행을 떠날 때도 꼭 챙기는 것. 특히 회사에서 야근할 때 필수품. 후루룩 먹는 소리만 들어도 입안에 군침이 도는 음식. 국민 ‘솔푸드’(영혼을 달래는 음식) 라면이다.

    대한민국 라면 역사는 5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소득 80달러였던 1963년 ‘삼양라면’이 10원에 출시됐다. 닭고기 국물 맛으로 서민의 배고픔을 달래준 삼양라면은 86년까지 라면시장 점유율 1위였다. 그동안 후발주자 농심은 82년 경기 안성에 스프공장을 짓고 국물 맛 혁신에 주력했다. 87년 농심 ‘안성탕면’이 삼양라면을 제치면서 국내 라면의 새로운 강자로 올라섰다. 깊은 쇠고기 국물 맛이 비결이었다. 이후 농심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운맛에 주목했다. 한국 대표 라면으로 불리는 ‘신라면’은 91년부터 24년간 부동의 1위다. 국내에서만 연 8억 개가 팔린다. 2014년 기준으로 라면업계의 4대 강자는 농심(시장점유율 62.2%), 오뚜기(16.1%), 삼양식품(13.4%), 팔도(8.3%)다(42쪽 그래프 참조).

    하지만 라면시장도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없는 법. 국내 라면시장 규모는 2012년 1조9800억 원에서 2013년 2조 원을 돌파했지만, 2014년 1억97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 감소했다. 각 라면업체는 불황을 돌파하고자 애쓰는 모습이다. 이에 올해 라면업계를 이끌어갈 새로운 키워드가 탄생했다. ‘면발’이다.

    갈수록 통통하고 탱탱해지는 면

    농심은 1월 13일 ‘우육탕면’을 출시했다. 이 제품의 면 두께는 3mm. 일반 라면의 면 두께인 1.6mm의 약 2배다. 오동통한 면이 특징인 ‘너구리’(2.1mm)보다 훨씬 두껍다. 농심 관계자는 “5분 내 익으면서도 탱탱한 느낌이 살아 있는 두꺼운 면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일본 라면과 본격적인 시장 쟁탈전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쟁사들도 면발 강화에 나섰다. 팔도 ‘왕뚜껑’은 지난해 12월 면발 개선을 마치고 1월부터 새로워진 제품을 출시했다. 기존 0.95mm였던 면발은 1.05mm로 통통해졌다. 대학생 캠프 시식행사 및 소비자 설문조사 결과 굵은 면이 얇은 면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전언이다. 팔도 관계자는 “요즘 소비자는 면의 미세한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탄력을 유지하면서도 조리 후 쉽게 퍼지지 않는 면 개발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삼양은 면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몰에 라면전문점 ‘라면에스’를 세우고 다양한 종류의 라면을 선보이고 있다. ‘라면 한식’을 표방한 이 가게는 ‘미스터 토푸(순두부라면)’, 국물 없는 ‘마제멘’ 등을 판매한다. 언뜻 보면 퓨전 요리 같지만 면은 모두 ‘라면사리’다. 삼양 관계자는 “일종의 소비자 테스트”라며 “삼양식품연구소에서 개발한 면으로, 시중에는 팔지 않는 사리다. 유탕면(기름에 튀긴 면), 건면, 비빔면 세 가지를 쓰면서 고객 반응을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오뚜기 역시 육수, 치킨, 채소에서 추출한 원료를 면에 배합하는 등 면발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라면업계는 면발의 3가지 특성에 승부수를 띄웠다. 첫 번째는 ‘쫄깃한 식감’. 농심 관계자에 따르면 소비자 연령이 젊을수록 탱탱하고 쫄깃한 면발을 좋아한다. 면발이 전반적으로 굵어지는 것도 주요 소비층인 20, 30대의 기호를 반영한 결과다. 서울 삼청동 라면전문식당 ‘55번지 라면’의 이재현 대표는 “라면 조리 시 면의 탄성력에 가장 신경 쓴다”고 말했다.

    “손님이 ‘면을 꼬들꼬들하게 익혀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그래서 면을 뜨거운 육수와 찬 육수에 번갈아가며 넣고 끓인다. 끓이는 동안 면을 공기에 식혀주는 에어레이션(airation·통기) 작업도 한다. 그럼 면의 탄성력이 2배 강해진다. 퍼진 면발을 싫어하는 손님이 있기 때문에 손님이 라면을 먹는 내내 탱탱한 감을 유지하도록 시간 계산을 철저히 하며 조리한다.”

    침체된 라면시장 돌파구는 ‘면발’

    라면업계의 면발 경쟁이 시작됐다. 최근 면발 굵기를 늘린 팔도 ‘왕뚜껑’, 지난해 시장 10위권 내 진입한 삼양 ‘불닭볶음면’, 면 두께 3mm인 농심 ‘우육탕면’, 면에 새로운 원료를 배합한 오뚜기 ‘진라면’(왼쪽부터 시계방향).

    비유탕면, 탄성 약해 소비자 외면

    한때 웰빙 트렌드로 라면업계에 비(非)유탕면이 등장한 적이 있다. 풀무원의 라면 브랜드 ‘자연은 맛있다(noodles·more)’가 내놓은 ‘꽃게짬뽕’ ‘오징어짜장’ 등이다. 생면은 일반 유탕면에 비해 지방 함량이 약 20분의 1이고 칼로리도 절반 정도다. 하지만 쫄깃한 식감이 약해 결국 시장 경쟁에서 밀렸다. 이재현 대표는 “생면을 사용해봤는데 국수 느낌이 나더라. 똑같은 라면 국물에 풀었지만 라면이 아닌 짬뽕같이 돼버려서 안 쓰고 있다”고 말했다. ‘꽃게짬뽕’은 지난해 시장점유율 1.4%로 13~15위를 오르내리는 데 그쳤다.

    두 번째는 ‘맛’이다. 라면 맛을 내는 데는 스프뿐 아니라 면도 중요하다. 면에 배합되는 재료에 따라 면 자체의 맛과 국물 흡수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밀가루와 전분의 혼합 비율, 면을 찌고 튀기는 과정도 맛을 좌우한다. 특히 기름에 튀길 때 팜유나 해바라기유 등 어떤 기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맛이 판이해진다.

    서울 삼성동 라면전문점 ‘황토군 토담면 오다리’의 임형태 사장은 “제품마다 국물 맛이 잘 배는 정도가 다르다”고 말했다. “특히 오뚜기 ‘진라면’은 칼슘 성분이 면에 추가되면서 면의 단면이 원형에서 타원형으로 바뀌었는데, 예전보다 국물을 잘 흡수하는 편이다. 국물이 잘 안 배면 국수도, 라면도 아닌 어정쩡한 요리가 된다. 라면업계도 이 점을 아는지 단면이 타원형인 유탕면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세 번째는 ‘영양’이다. 라면은 요즘 사람들이 꺼리는 나트륨과 지방 함량이 높은 게 약점. 소비자의 웰빙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라면업체들은 면 반죽부터 신경 쓴다. 밀가루 외 감자전분, 녹두전분을 포함하거나 나트륨 함량을 줄이는 방식이다. 면을 제조할 때는 소금이 들어가는데 쫄깃한 면일수록 소금이 더 많이 들어간다. 라면업체는 면의 탄성력을 강화하면서도 나트륨 함량은 줄여야 하는 상반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생면을 사용한 풀무원의 라면은 시장 선두권 진입에 실패했다. 농심 역시 ‘떡국면’ ‘볶음쌀면’ 등을 출시했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라면업계는 건강에 좋은 면 개발을 장기적인 숙제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연령이 높아질수록 밀가루, 튀김류 제품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라면의 주요 소비층인 20, 30대를 포함해 40대 이상 소비자까지 잡으려면 비유탕면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밀가루 대신 쌀로 면을 만들고 건조 방식을 바꾸면 단가가 높아진다. 아직 ‘라면은 싼 음식’이라는 인식 때문에 영양을 강화한 라면이 소비자에게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라면시장에서 ‘국물 전쟁’은 끝난 걸까. 2011년 8월 출시된 팔도 ‘꼬꼬면’은 하얀 국물 신드롬을 일으키며 라면시장을 뒤흔들었다. 삼양의 ‘나가사끼 짬뽕’도 하얀 국물로 히트했다. 하지만 라면업계는 당분간 국물 전쟁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꼬꼬면’과 ‘나가사끼 짬뽕’의 선전은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해석이다. 2014년 두 제품 모두 라면시장 종합순위 3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침체된 라면시장 돌파구는 ‘면발’
    국물 전쟁 당분간 없다

    라면 소비자도 기존 매운맛으로 돌아오고 있다. 임형태 사장은 “요즘 고객은 빨간 국물에 얼큰한 맛의 라면을 찾는다. 이전에 하얀 국물 라면 등 독특한 라면을 먹어봤지만 다시 자신에게 익숙한 라면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젊은이는 잘 모르지만 예전에 농심 ‘형님소고기라면’이 있었다. 가장 전통적인 라면 맛이랄까, 그 라면의 맛을 그리워하는 손님이 많다. 불황이다 보니 옛 추억을 떠올리는 라면을 자꾸 찾는 것 같다.”

    다만 소비자가 완제품을 수정하거나 새롭게 조리하는 소비자 트렌드가 강화될 여지는 남아 있다. 농심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 만든 일명 ‘짜파구리’는 2012년 ‘모디슈머’ 열풍을 촉발했다. 삼양 ‘불닭볶음면’도 라면시장에서 가장 큰 성장률(64.8%)을 보이며 신제품 강자로 떠올랐다. 지난해 시장점유율은 2.8%로 매출 순위 10위권 내 진입했다.

    라면 면발은 앞으로도 더 쫄깃해질까. 차윤환 숭의여대 식품영양과 교수는 “불황이 깊어질수록 라면 면발은 더 탱탱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음식물을 씹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스트레스 낮추기 요법이다. 또 라면을 오래 씹으면서 매운맛을 느끼는데 이것이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한다. 일시적으로나마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를 보는 것이다. 한국인은 쫄면을 즐겨 먹는 등 퍼진 면보다 탄성 있는 면을 선호하는 편인데, 소화 능력이 좋은 20, 30대 젊은이가 주요 라면 소비자인 한 면발은 더 탱탱해질 것이다.”

    침체된 라면시장 돌파구는 ‘면발’
    올해 라면업계 경쟁은 지난해보다 치열해질 전망이다. 차윤환 교수는 “농심이 라면업계의 절대 강자이긴 하지만 다른 업체들이 시장 틈새를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심의 ‘면발 경쟁’ 선언을 이렇게 해석했다.

    “농심은 원래 스프 강자다. 1982년 안성 스프공장이 생기면서 업계에서는 농심 스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굳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농심은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히트를 못 했다. ‘건면세대’ ‘신라면 블랙’ 등 최근 성공한 제품이 없지 않나. 그리고 타사에 비해 면발에 대한 호응도가 낮았다. 농심이 면발 강화에 나선 것은 시장 모든 면에서 최고 우위를 점하려는 야심 찬 시도다.”

    라면업계는 바짝 긴장한 상황이다. 오뚜기가 라면업체 중 유일하게 시장점유율을 2013년 14.1%에서 지난해 16.1%로 올렸고 삼양은 ‘불닭볶음면’ 판매를 강화할 계획이다. 팔도도 ‘왕뚜껑’ 개선으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농심이 최근 출시한 ‘우육탕면’도 시장 진입 초기에 성공한 모양새다. 농심 측은 “출시 일주일 만에 매출 10억 원을 달성하는 등 소비자 반향이 크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라면은 가격을 올릴 수 없는 상품이다. 조금만 가격이 올라도 매출이 뚝 떨어지기 때문에 지난 5년 동안 가격 인상을 못 했다. 면발 개선이나 맛 강화, 마케팅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강자도, 약자도 긴장을 풀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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