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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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의 지갑이 열린다

2020년 전 세계 중산층 인구의 54% 차지…지금보다 소비 3배 늘어나

  •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5-01-19 1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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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인의 지갑이 열린다

    2014년 10월 중국 국경절 연휴를 맞아 대거 한국에 온 요우커(중국 관광객)로 북적이는 서울 명동 거리.

    “무엇을 입고 자나요?”

    한 기자가 당대 최고의 섹시 심벌 메릴린 먼로에게 짓궂게 물었다.

    “샤넬 No.5 몇 방울.” 이 대답에 열광한 것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다. 디자이너 이름이 붙은 세계 최초의 향수 샤넬 No.5는 1921년 만들어진 제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유럽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이 향수를 미국 본토에 알렸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데는 ‘메릴린 먼로(MM)=샤넬 No.5’란 공식이 큰 구실을 했다. 이 공식이 만들어진 시기는 1950년대 중반으로 세계대전 후 미국 경제가 황금기를 구가하기 시작한 때다. 경제가 성장하자 소득이 늘고 중산층이 형성됐다. 소비시장이 확대되고 교외에 신도시가 건설됐다. 유럽 명품이 미국 시장에 자리 잡은 데는 소득 증가와 중산층 증대라는 경제적 배경이 있는 것이다.

    글로벌 소비 중심축으로 부상한 아시아

    이후 명품시장 주도권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아시아, 그중에서도 일본으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일본은 6·25전쟁 특수를 바탕으로 패전을 딛고 본격적인 성장기를 구가했다. 경제성장률도 오랫동안 9%대를 유지했다. 9% 경제성장률이라면 대략 8년에 한 번씩 경제 규모가 2배로 커진다.



    소득이 늘자 중산층이 형성됐다. 도시로 사람이 모여들자 다마뉴타운 같은 신도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신도시 가운데 하나인 다마뉴타운에 첫 입주가 이뤄진 것은 1971년이다. 일본 국민의 소비력이 높아지고 명품 같은 사치재에 대한 수요가 늘기 시작하자 글로벌 명품업체들이 앞다퉈 도쿄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도쿄 중심가는 명품업체들의 세계 격전지가 됐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명품시장에서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한 게 우리나라다. ‘3초 백’ 등 명품과 관련한 신조어들이 만들어질 정도로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핵심적인 명품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세계 명품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단연 중국이다. 주요 명품업체들이 중국인의 눈길을 끌고자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명품시장의 흐름이 보여주는 사실은 글로벌 소비시장의 중심축 이동에 따라 핵심시장이 변화한다는 점이다. 명품시장은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형성이 불가능하다. 국민소득 1000, 2000달러 경제에서 명품시장은 의미를 갖기 어렵다. 국민소득이 최소 5000달러는 넘어가야 시장성이 확보된다.

    아시아인의 지갑이 열린다
    현재 글로벌 소비시장의 중심축은 아시아다. 소비력은 중산층이 형성될 때 배가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까지 아시아가 전 세계 중산층 인구에서 54%를 차지할 전망이다. 이는 17억4000만 명에 해당하는 수치로 2009년 5억3000만 명에 비해 3배나 증가한 규모다(표 참조). 소비 규모도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50억 달러(2009)에서 148억 달러(2020)로 3배 가까이 증가할 전망이다. 한마디로 앞으로 지금보다 3배나 더 많은 돈을 쓴다는 얘기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아시아 지역의 중산층 규모와 소비 규모가 시간에 비례해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 아시아 중산층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규모는 2030년 66%로 확대되고, 숫자도 32억30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향후 10~20년은 아시아 중산층의 수가 늘고, 그들의 소비력도 더 커질 것이다.

    이런 소비력의 확대는 전 방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느 특정 분야만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와 관련한 전 분야가 영향을 받는다. 자동차 같은 내구재는 물론, 소비재와 통신 등 소비 관련 시장도 더 확대될 것이고, 소득 증가에 발맞춰 명품이나 화장품 같은 사치재 시장도 그 규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여행이나 문화 관련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이미 피부로 느끼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요우커(중국인 관광객)는 이미 한국 관광산업을 쥐락펴락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자 관점에서도 아시아 소비시장의 확대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주제다. 이 과정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을 찾아낸다면 상당한 보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최근 국내에서 아모레퍼시픽이 주식시장의 총아로 떠오른 것은 중국 등 아시아 마켓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한 데 힘입은 결과다.

    아시아인의 지갑이 열린다

    국내 한 면세점에 한국산 화장품을 사려는 중국인 관광객 들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다.

    아시아 소비 관련 기업에 투자하라

    중산층의 증가는 각 국가의 발전 단계와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다. 어느 정도 성숙 경제에 이르면 폭발적으로 중산층이 증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설적인 투자자 가운데 국가별 발전 단계를 활용해 큰 부를 쌓은 대표적인 인물이 보험주(株)의 대가 셸비 데이비스다. 그는 미국과 일본의 보험주에 투자해 초기 투자자금을 1만8000배로 불린 투자의 전설이다.

    데비이스는 대공황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 주로 미국 보험주에 투자했다. 대공황으로 가격도 쌌고,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제가 황금기를 구가하면서 보험주는 그에게 막대한 수익을 안겨줬다. 60년대 이후 일본 경제가 세계 주류로 등장하던 시점에 그는 다른 투자자들보다 한발 앞서 일본 증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62년 일본 방문 후 일본 대형 보험회사 5개 중 4개에 투자하고, 이 주식들을 장기 보유해 크게 성공했다. 만일 그가 살아 있었다면, 혹시 중국 보험주에 투자하지 않았을까.

    아시아 소비시장에서 수혜를 입고 있는 기업은 크게 지역에 따라 3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아모레퍼시픽 같은 국내 기업이다. 흔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 진출해 성과를 내는 기업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현지 토종 기업이다. 현지에서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갖고 성장하는 기업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세 번째는 글로벌 기업이다. 기업 소재지는 선진국에 있지만 매출액의 상당 부분을 아시아 지역에서 올리는 기업을 가리킨다.

    하지만 개인투자자가 다른 나라 기업을 깊이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개인투자자는 아시아 소비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과거 3년 이상 운용 실적이 있는 펀드 가운데 꾸준한 성과를 내는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

    아시아 소비시장이 미래의 금맥이 될지는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아시아 소비시장의 확대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기업을 찾아낸다면 대박은 아니어도 적어도 소박이나 중박은 될 공산이 크다. 어차피 투자는 확률 게임이다. 확률이 높은 쪽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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