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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 한 번은 마셔봐야 할 걸작

샤토 와인의 원조 오브리옹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죽기 전 한 번은 마셔봐야 할 걸작

죽기 전 한 번은 마셔봐야 할 걸작

샤토 오브리옹 전경(왼쪽)과 올드 빈티지 셀러.

프랑스 보르도 와인 레이블에 ‘샤토(cha^-teau)’라고 적혀 있으면 왠지 중세시대에 지은 성이나 저택에서 남다른 역사와 전통으로 만든 고급 와인일 것만 같다. 하지만 보르도에는 실제로 그런 성이나 저택을 보유한 와이너리는 거의 없다. 1800년대부터 보르도 와이너리들이 자신의 와인에 특별한 테루아르(토양)에서 생산된 고급 와인이라는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와인 이름에 샤토를 붙이기 시작했다.

사실 18세기 이전에는 와이너리나 테루아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다. 보르도에서 생산된 와인이면 보르도 와인, 독일에서 생산된 와인이면 라인 강 유역에서 만들어졌다는 뜻에서 레니쉬(Rhenish)라고 불렀다. 마치 우리가 쌀을 이천쌀, 김포쌀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보르도 와인은 지금처럼 고급 와인도 아니어서, 당시 가장 고가였던 이탈리아 와인 가격의 8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심지어 독일 와인보다 싼값에 팔렸다. 와이너리는 와인을 만들면 나무통에 담아 네고시앙(Ne′gociant)이라는 중개상에게 팔았고, 네고시앙은 그 와인들을 적절히 섞어 맛을 맞춘 뒤 자기들 상표를 붙여 판매했다.

오브리옹(Haut-Brion) 소유주 아르노 드 퐁탁(Arnaud III de Pontac·1599~1681)은 그런 유통 방식에 불만이 많았다. 그는 보르도 의회 의장을 역임한 귀족이었는데, 자기 와인에 대한 긍지가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포도밭은 특별하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어느 와인보다 우수하다고 믿었다. 그렇게 우수한 와인이 네고시앙에게 팔려가 평범한 와인들과 섞이는 것이 참을 수 없었던 그는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다. 네고시앙에게 파는 오브리옹 와인의 가격을 아주 높게 책정한 것이다.

죽기 전 한 번은 마셔봐야 할 걸작

샤토 오브리옹의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그러자 네고시앙들은 오브리옹 와인을 다른 와인과 섞지 않고 별도로 비싼 값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퐁탁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영국 런던에 폰택스 헤드(Pontack’s Head)라는 주점을 열고, 오브리옹 와인을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다. 주점은 사상가 존 로크, ‘로빈슨 크루소’ 저자 대니얼 디포, ‘걸리버 여행기’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 등 유명 인사들이 찾는 명소가 됐고, 약 200년간 성공적으로 운영됐다.

퐁탁을 단순히 뛰어난 전략을 가진 와인 마케터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브리옹 와인의 품질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그의 고가 프리미엄 와인 전략은 성공할 수 없었을 테고, 400년이 지난 현재까지 ‘죽기 전 한 번쯤은 마셔보고 싶은 와인’이라는 평가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오브리옹의 성공은 테루아르와 고급 와인에 대한 개념을 탄생시킨 계기가 됐다.



17세기 말 습지였던 프랑스 메독 지방이 개간되자 테루아르에 일가견이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좋은 땅을 매입했고, 포도밭과 와이너리를 건설해 오브리옹의 성공 모델을 좇았다. 그들은 우수한 테루아르를 바탕으로 포도 재배, 양조, 마케팅까지 먼 미래를 보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이 지금 오브리옹과 함께 보르도의 5대 샤토를 형성하는 라피트, 라투르, 마고, 무통이다. 싸구려 와인 산지에서 유명 샤토 본산지로 보르도의 운명을 바꾼 아르노 드 퐁탁과 샤토 오브리옹. 가격이 워낙 비싸 쉽게 접할 수 있는 와인은 아니지만, 그 와인이 주는 역사적 의미를 알고 즐긴다면 더 값진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간동아 970호 (p75~75)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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