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0

2015.01.05

한미일 정보공유약정의 이해득실

동맹끼리도 쉽지 않은 정보협조…미사일방어체제 구축 위한 미국의 압박용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5-01-05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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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일 정보공유약정의 이해득실

    2014년 5월 31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3국 국방부 장관 회담에 참석한 척 헤이글 미국 국방부 장관과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 김관진 국방부 장관(왼쪽부터).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는 주한미군과 한국군 사이에도 정보공유는 쉽지 않다. 키홀(Key Hole) 정찰위성이 촬영한 고해상도 사진 한 장 받아 보려 해도 공문과 협조 요청이 무수히 오가야 하는 식이다. 60년 동맹 사이에도 민감하기 짝이 없는데, 일본과 군사정보를 나눈다? 실무 담당자들 눈으로 보자면 실효성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 정보당국에서 오랜 기간 일한 전직 당국자의 말은 신랄했다. 2014년 마지막 한 주 안보당국의 최대 이슈였던 한미일 정보공유약정에 대한 냉혹한 평가다.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관한 정보를 공유한다는 목적으로 3국 국방당국의 차관급 인사가 약정에 서명한 12월 26일 이후, 한국 국방부는 다양한 경로와 자료를 통해 그 기대 효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이러한 장밋빛 전망과 달리 이번 약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정보협조는 구두선(口頭禪)에 그치리라는 게 정보 실무에 종사했던 이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한마디로 ‘의미 없다’는 것이다.

    ‘할 수 있다’와 ‘해야 한다’의 차이

    실제로 2000년대 이후에도 한미 양국은 정보공유를 둘러싸고 여러 차례 파열음을 빚은 바 있다. 2007년 6월에는 북한의 단거리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미국 측 자산으로 수집한 정보를 청와대가 공개했다며 주한미군에서 공식 항의했고, 북한 장거리로켓 발사 징후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2009년 1월에는 미 국무부까지 나서서 “앞으로 정보협조는 없다”고 으름장을 놓을 만큼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동맹을 의식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을 뿐 2011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전문에는 이를 둘러싼 갈등이 부지기수로 등장한다.



    1987년 관련 협정을 체결한 동맹국 사이에도 걸핏 하면 얼굴을 붉히는 군사 정보공유가 과연 동맹도 아닌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가능할까. 이러한 의구심은 두 나라가 관심을 가질 만한 서로의 정보자산 수준을 살펴보면 한층 더 강해진다. 한국의 경우 전방부대에서 운용하는 송골매 등 무인정찰기와 백두·금강정찰기가 수집하는 신호 및 영상정보, 탄도탄 궤도 추적이 가능한 그린파인 레이다, 2019년 도입 예정인 글로벌호크가 수집하는 정보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에서는 해상도 0.4m급의 광학위성 4대와 야간촬영이 가능한 레이다위성 2대, 해상자위대의 EP-3 정찰기 등을 꼽을 수 있다.

    문제는 정보제공이 원활하게 이뤄질 경우 이들 무기체계의 정보수집 역량이 고스란히노출된다는 사실. 예컨대 백두·금강정찰기가 일주일에 몇 시간이나 공중에 떠 있는지, 통신감청이 가능한 범위는 어디까지인지를 일본이 역산할 수 있다. 거꾸로 일본 정찰위성이 하루에 몇 차례나 한반도를 지나가는지, 영상 분석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우리도 추론할 수 있다. 만에 하나 독도 등에서 영토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상대가 우리의 전력 준비 태세나 이동 상황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파악할지 고스란히 알게 되는 셈. 가까운 우방이라도 군사 정보공유가 쉽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다. 익명을 요청한 정부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번 약정은 정보공유의 근거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할 수 있다’는 것이지 ‘하겠다’‘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일 두 나라가 미국을 통해 정보를 공유한다지만, 한국이 미국에 제공한 정보를 모두 일본에 넘기는 것도 아니고 일본이 미국에 제공한 정보를 우리가 모두 받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는 한일이 협의해 주고받기로 한 정보가 미 국방부를 ‘경유’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두 나라가 어떤 정보를 어느 수준까지 공유할지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미국은 MD라 말하는데

    한미일 정보공유약정의 이해득실

    2014년 12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한미일 정보공유약정 체결에 대한 현안 보고를 하고 있다.

    여기까지 살펴보고 나면 궁금증은 하나로 모인다. 이렇듯 실효성도 적고 결정된 것도 없는 협정을 굳이 체결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번 약정이 2012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우회로 성격이 강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방부는 공식적으로 부인하지만, 당시 국내 정치권과 여론의 반발에 부딪혀 서명 한 시간 전에 무산된 한일 간 정보공유에 미국을 ‘끼워 넣어’ 정치적 파장을 최소화하려고 선택된 길임을 당국자들 역시 부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억해둘 것은 미국 측 내부 보고서들이 2012년 GSOMIA에 대해 한미일 3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을 위한 사전조치였다고 명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3년 6월 24일 미 의회조사국(CRS)이 상하원에 보고한 관련 문서가 대표적인 경우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을 공동으로 요격하려면 일본 레이다가 확인한 미사일 궤적이나 항로를 실시간으로 한국의 요격미사일 부대에 전달하는 식의 시스템 연동이 필수적인데, 2012년 GSOMIA가 바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이를 가능케 하는 제도적 장치였다고 보고서는 적시하고 있다.

    그 외에도 이후 작성된 미국 측 정책문서나 당국자들의 관련 발언에는 GSOMIA가 한국 내 반발로 무산됨에 따라 MD체제 공동 구축도 난항에 빠졌다는 언급이 반복해서 등장했다. 3국 공동 MD 구축을 위해 꼭 필요한 사안이 좌절돼 안타깝다는 게 대체적인 취지다. 워싱턴 인사 사이에서는 이번 한미일 정보공유약정으로 우회로가 뚫림에 따라 공동 MD 구축을 향한 미국의 뜻이 사실상 관철됐다는 환영 분위기 역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한 미국 싱크탱크 관계자의 평가다.

    한미일 정보공유약정의 이해득실

    2012년 6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추진 당시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와 의원들이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규탄 시위를 하는 모습.

    “미국의 기본적인 인식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 괌과 오키나와는 모두 단일한 전장이라는 것이다. 상대가 북한이든 중국이든 러시아든,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맞서려면 한미일 3국이 보유하고 있는 정찰자산과 타격자산을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통합해 활용하겠다는 게 최종적인 목표다. 특히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려면 탐지부터 격추까지 수 분 사이에 진행되는 작업 특성상 3국의 지휘통제자동화(C4I) 체계의 연동이 필수적이다. 이번 정보공유약정을 통해 한국과 일본 사이에도 이러한 작업이 가능해짐에 따라 공동 MD 구축을 위한 준비도 큰 진전을 이뤘다고 본다.”

    전작권과 패키지 딜?

    의회의 국방예산 감축 압박에 시달리는 미국은 최근 들어 일본이나 한국의 자산을 공동 MD에 통합해 활용하는 방안에 무게를 싣고 있다. GSOMIA가 무산된 이후 워싱턴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우리 측에 그에 준하는 한일 간 제도적 장치 마련을 압박해왔다는 것 역시 공공연한 비밀에 속한다. 한 전직 안보당국 관계자가 “물밑에 잠복해 있던 한미 간 핵심 현안 중 하나였다”고 표현했을 정도. 더욱이 이번 약정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2014년 5월 싱가포르 3국 국방부 장관 회담과 사실상 타결된 10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는 공교롭게도 모두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연기를 논의한 테이블이었다. 한국의 요청사항인 전작권 전환 연기와 미국이 집요하게 요구해온 정보공유약정을 맞바꾼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두 사안이 실제로는 ‘패키지 딜(package deal)’로 논의됐지만, 민감성을 의식해 정보공유약정 서명만 두 달 뒤인 연말로 미룬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번 약정 체결 과정에서 국방부는 체결 일자와 관련해 말을 바꿈으로써 비판의 도마에 오른 바 있다. 일본 언론보도가 나온 후인 2014년 12월 26일 약정 체결 사실을 공개하면서 사흘 뒤인 29일 서명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23일, 한국과 일본은 26일 이미 서명을 마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기 때문. 국회 보고가 이뤄진 시점 역시 29일로 이미 체결된 약정을 사후에 보고한 셈이 됐다.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여야 의원을 막론하고 ‘국민을 속인 밀실협정’이라는 비판을 쏟아낸 이유였다.

    특히 ‘기관 간 약정’으로 처리된 이번 합의는 2012년 GSOMIA 추진 당시 제동이 걸린 국무회의 의결이 필요 없는 형태다. ‘국가 간 협정’으로 추진된 2012년에는 외교부가 형식상 주체였던 까닭에, 사안이 불거진 후의 문책 역시 외교부 관계자들에게 집중된 바 있다. 이 무렵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청와대와 국방부가 밀어붙인 사안인데 우리만 ‘독박’을 썼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번 약정에서 국방부 차관이 서명 주체가 된 것 역시 국무회의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함께 ‘우리가 총대를 멜 수는 없다’는 외교부의 입장을 반영한 결과로 전해진다.

    이번 약정을 주도한 우리 측 당사자로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이 꼽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2012년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김 실장은 이번 약정 관련 실무논의가 시작된 2014년 5월 3국 국방부 장관 회담의 당사자였고, 이후에도 안보실장으로서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 등을 통해 관련 논의를 이끈 것으로 전해진다. 3국 간 정보공유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은 그의 오랜 지론이라고 가까운 인사들은 전한다.



    묻어나는 곤혹스러움

    ‘어떻게든 처리하라’는 미국의 압력과 청와대 기류, 그리고 예상되는 국내 여론의 반발. 이들 사이에서 ‘연말까지는 어떻게든 끝내야 한다’는 다급함이 만만치 않았다는 게 안보당국 관계자들의 솔직한 토로다. 이들의 곤혹스러운 처지가 공개된 약정문에 그대로 드러날 정도다. 군사 분야 국가 간 약정의 전체 문장을 공개하는 일 자체가 흔치 않은 데다, ‘본 약정은 당사자들에게 국제법상, 국내법 및 규정상 어떠한 법적 구속력을 창출할 의도가 없다’는 8항은 미국에 성의를 보이면서도 국내 반발을 최소화하려는 고육지책에 가까워 보인다.

    “관련 보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우리는 관련국들이 상호 대화와 신뢰를 촉진하는 데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더 많이 하기를 바라며 그 반대로 돼서는 안 된다.” 2014년 12월 26일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한미일 정보공유약정에 대해 남긴 말이다. 미국은 MD라 말하고, 중국은 으름장을 놓지만, 한국은 모두가 아는 진실을 끝내 부인할 수밖에 없는 난처한 상황. 한미일 정보공유약정의 어설픈 내용과 그 과정에서 국방부가 쏟아낸 갖가지 무리수는 MD 문제에 대해 명확한 원칙을 세워두지 못한 역대 정부의 ‘숙제 미루기’가 낳은 후과인 셈이다. 해가 바뀌어도 벗어날 수 없는 곤혹의 상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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