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9

2014.12.29

“힘들고 ‘을’ 신세지만 좋은 주민도 많죠”

아파트 경비원 분신 사건 그 후…고용승계 약속, 그래도 걱정

  • 김지은 객원기자 likepoolggot@hanmail.net

    입력2014-12-29 0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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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들고 ‘을’ 신세지만  좋은 주민도 많죠”

    서울 서대문구 인왕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들은 오히려 주민들을 칭찬한다.

    2014년 11월 7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신현대아파트 경비원 이모 씨가 사망했다. 원인은 패혈증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 그는 아파트 입주민과 불화로 자신의 몸에 인화물질을 뿌리고 불을 붙여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사망한 후 신현대아파트에서는 경비원 처우 개선과 입주민의 진정성 있는 사과 등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졌고, 그럼에도 아파트 입주자임원회는 2014년 말 현 경비용역업체와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업체를 선정한다고 밝혔다.

    현 업체는 30년 넘게 이 아파트 경비를 담당해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2월 10일에는 이 아파트의 입주민이 경비원을 폭행해 코뼈가 부러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경비원에 대한 비인격적 대우를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고 나서면서 갈등은 더욱 첨예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24시간 맞교대 업무 과중

    2014년 12월 16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바로 그곳을 찾았다. 27개 동 1924가구가 사는 신현대아파트에서는 경비원 78명과 청소, 설비관리 등에 투입되는 39명의 용역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추운 날씨 탓인지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아파트 마당은 잠잠했다. 그 흔한 플래카드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 아파트 경비실은 아파트 건물과 떨어져 각 동과 동 사이 주차장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아본 뒤 경비실 문을 살짝 열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경비원 A씨는 실명과 개인 신상정보를 기사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비로소 입을 열었다. 찬바람 쌩쌩 부는 날씨에 오들오들 떠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난로 가까운 자리까지 내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건넨 첫마디는 “다 지난 일인데 뭐하러 또 취재를 왔어요?”였다.

    동료의 죽음 이후 전원 해고 통보까지 받아 날이 서 있을 것 같았는데 반응이 의외였다.



    “내가 알기론 용역업체만 바꾸고 우리는 고용승계를 해준대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 아파트는 여느 아파트랑 달라서 아무나 경비를 못 해요. 우리는 이 대단지에서 누가 몇 동 몇 호에 사는지, 누가 가사도우미고 누가 친척인지까지 죄다 꿰고 있는데 당장 우리를 다 내보내고 나면 주민 불편이 더 크지, 뭐”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우리 없으면 당장 주차는 어떡할 건데요”라고도 덧붙였다.

    여느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압구정로 신현대아파트 경비원도 24시간 근무를 기본으로 한다. 새벽 6시 출근해 다음 날 새벽 6시에 퇴근하는 구조다. 하루 중 가장 바쁜 때는 출퇴근 시간대다. 차량이 원활히 소통할 수 있게 주차된 차를 빼고 옮기는 것이 이 아파트 경비원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1983년 입주를 시작한 신현대아파트에는 지하주차장이 없다. 지상주차장도 협소해 낮 시간에도 이중주차가 예사다. 차를 빼주는 일이 밤낮으로 계속되다 보니 운전 잘하는 사람 위주로 경비원을 채용하고, 경비실에 차 열쇠를 맡겨둘 수 있게 해놓았다고 한다. 이곳 경비원들은 기본적으로 운전특기자인 셈이다.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부자만 사는 아파트라 주차까지 경비원에게 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경비원이 지는 게 사실이다. A씨는 “우리가 다른 아파트 경비원에 비해 임금을 좀 더 받기는 하는데, 그 안에는 발레파킹 비용도 포함돼 있다. 주차관리 요원을 따로 두려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 우리한테 주차관리를 맡기는 것”이라고 했다.

    “근데 여기에는 워낙 비싼 차가 많아서 살짝 스치기만 해도 ‘몇백’이 나가요. 재수 나쁘면 그 수리비까지 죄다 우리가 물어야 하죠. 입주민 차를 대신 빼주다 지나가는 다른 입주민 차량과 부딪혀 딸 결혼자금으로 모아둔 1500만 원을 고스란히 쏟아붓고 그만둔 경비원도 있다고 들었어요.”

    A씨는 “경비원들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수없이 요구했지만 선뜻 보험 가입을 받아주는 보험사가 없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밥, 갈비탕 건네

    “힘들고 ‘을’ 신세지만  좋은 주민도 많죠”
    또 다른 경비원 B씨를 만났다. 비닐팩에 싼 충무김밥을 손에 들고 서 있어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자 “밥은 이미 먹었다. 김밥은 조금 전 입주민이 한 팩 주고 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아파트 입주민과 막역하게 지내는 듯했다.

    “여기 있다 보면 갈비탕을 많이 끓여놨는데 갑자기 외식할 일이 생겼다며 가져다주고 나가는 분도 있고, 택배로 뭐 받으면 그중 일부를 나눠주는 분도 있고 그래요.”

    B씨는 “경비원 사망 이후 이 아파트 주민들이 죄다 돈만 밝히는 나쁜 사람인 양 알려진 게 안타깝다”며 먼저 입을 열었다. “사람 사는 데 어디나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지 않나. 언론에서 좀 과장한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인생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경비 일을 오래 하면 사람이 기가 죽어서 할 말도 잘 못 하고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별생각 없이 하는 말도 아프게 받아들이고 심하면 속이 문드러지고 그러는 거죠. 그런데 ‘내가 정말 이 일 말고 할 게 없어 이 일을 하나’ 생각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결국엔 내가 좋아서 하는 거란 말이죠. 솔직히 아파트 경비 일이라는 게 죽을 만큼 힘든 일은 아니에요. 못 견디겠으면 그만두면 되는 거고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으니 절대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말아야죠.”

    이 아파트 경비원의 초봉은 세전 185만 원. 근무시간으로 따지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래도 B씨는 그나마 다른 아파트에 비하면 조건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근무하는 동 규모에 따라 적게는 50만 원, 많게는 300여만 원까지 명절 상여금도 지급된다. 경비업체에서는 2년마다 근무 동을 바꿔주는데 이것이 그 나름의 인사이동인 셈이다. 이 상여금 때문에 경비원 사이에 은근히 경쟁도 있다고 한다.

    B씨도 근무하는 동안 차량 사고를 낸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돈을 물어주진 않았다. 그는 “내가 어쩔 줄 몰라 벌벌 떨고 있으니 차 주인이 괜찮다고, 자기 차를 대신 옮기다 사고가 난 거니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했다”며 “주민 대부분은 경비원 월급이 뻔하다는 거를 아니까 그렇게 혹독하게 대하지 않는다. 죄다 물어내야 하는 상황이면 여기 남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고 반문했다.

    최근 이 아파트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상황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이가 없는 건 아니다. 경비원 C씨는 용역업체가 바뀌면 분명히 정리해고를 당하는 사람이 생길 거라며 불안해했다. 하지만 이곳 입주민이 특별히 경비원을 못살게 굴지는 않는다는 게 기자가 만난 경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오히려 안타까워하는 입주민이 더 많다고 했다. “다른 아파트 사정은 다를 거 같으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다수의 ‘갑’(입주민)과 소수의 ‘을’(경비원)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고용관계는 책임 소재를 분산하거나 외면하기 좋은 구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 나름”

    “힘들고 ‘을’ 신세지만  좋은 주민도 많죠”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통일로 32길) 인왕아파트로 자리를 옮겼다. 1968년 건립된 이 아파트 역시 지하주차장이 없어 주차관리로 몸살을 앓는 곳이다. 신현대아파트와 다른 점은 경비원이 대신 주차해주거나 차를 빼주는 일이 없다는 것. 이곳에서는 이중주차를 한 입주민이 관리실에 열쇠를 맡기고 가면 차를 이동해야 하는 입주민이 열쇠를 받아 직접 운전한다. 필요한 경우 경비원이 주차 공간을 봐주거나 차 주인에게 직접 차량을 이동해달라고 전화를 건다.

    규모가 작은 소형 아파트다 보니 이곳 경비원은 아파트자치회에서 직접 고용, 관리한다. 대형 아파트 단지와 달리 설비관리 직원이 따로 없는 데다 독거노인이 많이 살아 이곳 경비원들은 형광등 교체나 무거운 짐 운반 등의 일을 선뜻 대신해준다. 연배가 비슷한 입주민이 많아 경비실이 입주민의 사랑방 구실을 하기도 한다. 제 나름 가족적인 분위기인 셈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근무 환경은 열악하다. 아침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격일로 일하고 받는 임금이 한 달 100만 원 수준. 신현대아파트와 달리 한밤엔 휴식이 허락되긴 하지만 그만큼 급여가 낮다. 이곳에서 만난 경비원 김모 씨는 “월급은 빠듯하지만 정년이 따로 없어 일하고 싶을 때까지 일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저는 공기업에서 정년퇴직하고 여기 왔어요. 사람은 나이 들어도 일을 해야 하잖아요. 잠시 노는 건 몰라도 몇 년을 놀면 늙고 병만 든다고. 여기 나와 이렇게 움직이고 사람들 만나는 게 정말 살아 있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그가 이 아파트에 근무한 지는 햇수로 7년째. 지금까지 한 번도 입주민과 얼굴 붉힌 적이 없다고 했다. 무례하게 굴거나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없었느냐는 우문에 그는 “모든 일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현답을 내놓았다. 경비원 박모 씨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물론 성격 급한 사람도 있다. 가끔은 젊은 사람이 툭툭 반말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저 사람은 가정교육을 좀 덜 받았구나’ 생각하고 넘어간다”고 했다.

    “나는 지금 제2 인생을 살고 있어요. 과거 무슨 일을 했든, 돈을 얼마나 벌고 얼마나 잘나갔든 지금은 여기가 내 직장인 거예요. 나를 고용한 사람보다 나이가 많다고 함부로 대할 순 없는 거죠.”

    박씨의 말이다. 이들의 겸허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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