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4

2014.11.24

“시간낭비 비효율? DIY 매력 돈 주고 못 사요”

술·향수·자전거·인형옷 등 내 손으로 만들고 사용하는 재미 쏠쏠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4-11-24 0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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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낭비 비효율? DIY 매력 돈 주고 못 사요”

    11월 8일 서울 성동구 옥수동 ‘자가양조공간 SOMA’에서 이연옥·주종안 부부가 직접 만든 와인을 테이스팅하고 있다.

    DIY(Do It Yourself). DIY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물자와 인력이 부족하던 영국에서 자기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사회운동에서 시작됐지만, 지금은 다양한 취미와 여가 분야에서 활용된다. 사실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해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DIY는 비효율의 정점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뭔가를 만드는 데 드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이미 시중에 나온 물건이라면 사서 쓰는 게 비용 면에서도 절약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DIY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DIY 덕에 삶에 활력을 얻었다는 사람부터 DIY로 시작했다 관련 업계로 이직한 사람까지, 기자가 만나본 이들은 ‘자발적 비효율주의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이들은 왜 ‘비효율’을 추구하는 걸까.

    세상 하나뿐인 최고의 제품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 욕구가 5단계로 이뤄져 있다고 봤다. 최하위에 생리적 욕구가 있고 안전 욕구, 인정 욕구, 존경 욕구 순으로 단계가 올라가다 가장 최상위인 자아실현 욕구를 만난다. 매슬로에 따르면 인간은 아래 단계 욕구가 어느 정도 채워져야 그다음 단계의 욕구를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이 DIY에 빠지는 이유는 내 손에서 뭔가가 탄생한다는 것에 대한 희열, 그리고 재미다.

    11월 8일 오후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 위치한 ‘자가양조공간 SOMA’를 찾았다. 지하로 내려가자 술 냄새가 확 올라왔다. 사무실에는 ‘우리술사전’부터 ‘100가지 술 담그기’ ‘발효공학’ ‘한국전통주교과서’ 등 100권 가까이 되는 술 관련 서적이 꽂혀 있었다. 2012년 9월 문을 연 이곳은 직접 술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와인부터 막걸리까지 다양한 술을 만들 수 있지만 주류법상 판매는 불가능하고 자가 소비만 가능하다. 이날도 혼자 온 젊은 여성부터 중년 부부까지 다양한 사람이 각자 술을 빚고 있었다.



    술을 만든 지 3개월 됐다는 주종안(49), 이연옥(49) 부부는 주말 데이트를 이곳에서 즐긴다. 머루포도로 빚은 와인에서 포도 껍질을 건져내는 래킹 작업을 하던 주씨는 술 만들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방송에서 이곳을 보고 아내와 함께 찾았다고 했다. 그는 “복분자 와인과 오디 와인을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당도가 높은 머루포도 와인을 만들었다. 열심히 배워 나중에 은퇴하면 제2 직업으로 삼아볼까 한다”며 웃었다. 이씨는 “직접 만든 술이라 더 의미 있고 연말엔 주변에 한두 병씩 선물하기에도 좋아 재미있게 즐기고 있다”고 했다.

    6월부터 술을 만들고 있는 유진호(32) 씨는 한 달간 숙성한 매실주를 다른 용기에 옮겨 담고 있었다. 그는 “친구가 만든 매실주를 선물해줘서 마셔보니 맛이 좋아 도전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술을 즐기는 편인데 직접 만들어 먹는 게 추억이 되고, 기호에 맞게 당도나 도수도 조절할 수 있어 좋다. 완성되면 주변에 선물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며 적극 추천했다.

    박인경 자가양조공간 SOMA 매니저는 “처음부터 잘 만들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시행착오를 겪어야 점차 맛있는 술을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술 만들기에 처음 도전한다면 상대적으로 완성까지 시간이 적게 걸리는 맥주 만들기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11월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수동 ‘클레이팝’에서는 박선영 대표와 수강생 박은영(27) 씨의 화기애애한 일대일 도예 수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도예가로 활동하는 박 대표는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이 공방을 찾는다. 커플이나 모녀가 함께 와서 그릇을 만들기도 한다. 소규모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쓰는 내내 기분도 좋아져

    “시간낭비 비효율? DIY 매력 돈 주고 못 사요”

    11월 10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클레이팝’에서 도예 수업 중인 박선영 대표와 수강생 박은영 씨(위). 서울 강남구 신사동 ‘데메테르 퍼퓸 스튜디오’에서는 퍼퓸 디자이너와 함께 나만의 향수를 만들 수 있다.

    볼(bowl)을 만들려고 흙을 만지던 박씨는 “이웃집 언니와 수다 떨며 배우는 기분이다. 손재주가 없어도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셔서 관심만 있으면 쉽게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2년째 도예 수업을 받는 박씨는 그동안 만든 그릇으로 신혼집 찬장을 가득 채웠다. 그의 볼 만들기 예찬론은 끝이 없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요리를 그릇에 예쁘게 담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릇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 시작했어요. 시중에서 팔지 않는 나만의 그릇을 만들 수 있어 좋습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접시처럼 얇게 만들 수는 없지만 도톰한 그릇도 그 나름의 멋이 있어요. 직접 만든 그릇에 내가 만든 음식을 세팅할 때 만족감을 느낍니다. 흙을 감아올릴 때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 집중할 수 있고,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 흙을 두드리는 동안에는 스트레스가 풀립니다.”

    한때 ‘국민 가방’ ‘3초 백’이라는 말이 있었다. 유행하는 제품을 너 나 할 것 없이 들고 다니다 보니, 지나가면 3초에 한 번씩 같은 브랜드 제품을 든 사람을 볼 수 있는 풍경을 풍자한 말이었다. 하지만 DIY가 있다면 그럴 걱정은 없다. 때로 이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살릴 목적으로 DIY를 활용한다.

    ‘향수 마니아’ 김유현(27) 씨는 시중에 나온 향수를 쓰지 않는다. 그 대신 향수를 직접 만들어 쓴다. 김씨는 “대학생 때 스튜어디스가 자주 쓴다는 향수를 호기심에 사서 뿌렸는데, 다음 날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들 사이에서 다 비슷한 향이 났다. 그때부터 나만의 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잡지에 소개되거나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국민향수’ 같은 제품을 피해 고가 제품을 사기도 했는데, 가격적으로도 부담이 됐고 고가라고 제가 딱 원하는 향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고민하다 직접 만들어 쓰기로 했죠.”

    DIY 키트를 구매해 조향해보고 시행착오를 겪던 김씨는 전문 DIY 숍에서 상담을 받은 뒤 자신이 원하는 향수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우디향을 좋아하는 김씨는 “남성 향수를 쓰자니 우디향이 너무 강하고, 여성 향수에는 원하지 않는 플로럴향이 섞여 있을 때가 많아서 시트러스향에 우디향을 적절히 배합해 쓴다”며 “만드는 동안에도 재미있지만 쓰는 내내 기분이 좋아지는 게 DIY 향수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서울 강남구 신사동 ‘데메테르 퍼퓸 스튜디오’에서는 초보자도 퍼퓸 디자이너와 함께 향수를 만들어볼 수 있다. 먼저 향수를 쓰는 목적과 자신의 평소 스타일, 좋아하는 컬러, 장소, 즐겨 쓰는 향수 등을 ‘향기 브리프’에 적는다. 이후 퍼퓸 디자이너와 상의해가며 다양한 향료를 조합해 원하는 향을 만든다. 헨리 안 데메테르 퍼퓸 스튜디오 디자이너는 “자신의 향을 찾고 싶거나 기념일 이색 데이트를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특히 향수 마니아는 흔한 향을 좋아하지 않기에 독특한 향을 만들고자 이곳을 찾는다. 처음 오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비슷한 계열의 향만 세 가지씩 고르는데, 그럴 경우 미들노트에 향이 집중된다. 좋은 향수를 만들고 싶다면 톱, 미들, 베이스노트를 적절히 조합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여성스러운 옷을 즐겨 입는다면 플로럴향을 뿌리는 게 답일까. 향수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그는 “중요한 건 개성이다. 귀여운 이미지의 여인에게서 샤프한 향이 나더라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만 잘 한다면 그게 바로 개성이 된다. 향이 주는 반전 매력을 즐겨보라”고 조언했다.

    흥미 삼아 시작한 DIY가 삶을 다른 방향으로 바꿔놓은 경우도 있다. 11월 14일 오전 자전거 정비와 제작을 배울 수 있는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바이크아카데미’를 찾았다. 이곳에서는 자전거 정비와 자전거 만들기의 핵심인 프레임 설계 및 제작을 배울 수 있다. 이상훈 대표는 전자공학과 출신으로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니다 자전거 매력에 빠져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 경우다.

    “시간낭비 비효율? DIY 매력 돈 주고 못 사요”
    취미가 바꿔놓은 일상

    이 대표는 “2005년부터 라이딩을 시작했는데 자전거를 타고 풍광을 즐기며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는 게 좋았다. 그러다 자전거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 눈을 떴고 비즈니스를 생각했다. 처음에는 자전거숍을 열었는데, 정비를 할 줄 몰라 우여곡절이 많았다. 미국에서 정비 과정을 공부해 2007년 정비 커리큘럼을 만들었고, 정비를 가르치다 보니 프레임 자체를 건드리고 싶어졌다. 그래서 미국에서 다시 프레임 제작 과정을 이수했다”고 했다.

    국내에서 그가 자전거 프레임 제작 커리큘럼을 시작한 건 2012년부터다. 사무실 책상에는 손때 묻은 필기노트가 놓여 있었는데 미국에서 배워온 프레임 설계, 제작 노하우가 빼곡히 쓰여 있었다. 이 대표는 “이게 내 재산”이라며 웃었다. 그는 “자전거 DIY를 위해서는 2주 과정을 쉬지 않고 따라야 하고, 하루 종일 공구를 만지면 녹초가 되기 때문에 열정과 끈기가 없으면 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핸들을 돌려가며 나사산을 열심히 만들던 홍장근(46) 씨는 이곳에서 1년간 자전거 제작을 배우고 올해 초퍼바이크를 제작 및 판매하는 ‘제스티크랭크’를 세웠다. 그가 타는 자전거와 초등생 아들이 타는 자전거 모두 직접 만든 초퍼바이크다. 그는 “커스텀바이크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싶어 이곳에서 배우면서 만든 자전거만 수십 대에 이른다”고 했다. 홍씨는 “라이더라면 직접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욕망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대. 재밌겠네. 그럼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DIY 인형옷 덕에 해외에 진출한 경우도 있다. 대학생 때부터 구체관절인형 옷을 만들었다는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최지은(31) 씨는 1년 전부터 블라이스 인형 옷을 만들고 있다. 그는 “본업이 따로 있다 보니 퇴근하고 집에 와서 틈틈이 작업하면 한 벌을 만드는 데 4~5일 걸린다”고 했다. 옷을 한 번 만들기 시작하면 온 집 안이 실밥과 먼지투성이가 되지만, 남편은 적극적으로 그의 취미생활을 지지하고 디자인 조언도 해주는 든든한 아군이다. 부모도 처음에는 “쓸데없는 일 하는 거 아니냐”며 탐탁지 않아 했지만 이제는 응원해준다고.

    처음에는 자기만족 차원에서 완성한 인형 옷을 인터넷 개인 블로그에 올렸는데, 판매 요청이 많아 소량 판매도 하고 있다. 주말에는 원하는 천과 비즈, 레이스 등을 사려고 서울 동대문 종합시장에서 품을 판다. 기성복보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들지만 최씨는 “시중에서 파는 옷 중에는 내 취향이 없었다. 완성품을 올렸을 때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과 피드백이 오니 더 보람을 느낀다. 옷을 팔고 생기는 수익은 다시 새로운 옷을 만드는 데 쓴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패션잡지 화보나 플리커와 인스타그램의 사진, 동화책 삽화, 일러스트레이션 등을 참고해가며 인형에게 어울리는 디자인을 구상한다. 12월 국내에서 열리는 ‘스윗돌페어’에 참가해 인형 옷을 전시, 판매할 예정이라는 그는 내년 6월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블라이스 인형 행사인 ‘블라이스콘’에도 참가할 기회를 얻었다. 전 세계에서 40여 부스만 참가할 수 있어 신청 경쟁이 치열한 국제 행사다.

    “취미로 시작한 인형 옷 DIY 덕에 동경하던 디자이너도 직접 만날 수 있게 돼 기뻐요. 인형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도 크고요. 내년 블라이스콘에서 선보일 작품은 아직 세부적인 콘셉트를 정하지 않았지만, 스모킹 자수 기법을 활용해 전원적인 느낌을 연출해볼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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