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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김원곤 교수의 외국어 도전기 <마지막 회>

언어의 천재들은 승승장구?

초다언어 구사자 남성이 압도적 다수…언어 학습은 ‘삶의 최고 윤활유’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언어의 천재들은 승승장구?

언어의 천재들은 승승장구?
국제화 시대를 맞아 필요에 의해 또는 개인 스펙을 쌓으려는 목적으로 다양한 언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언어 습득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면서 실제 초다언어 구사자에 대한 관심도 커지는 상황. 그들의 세계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외국어 실력을 키우고자 하는 시도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관련 학자들 연구에 따르면 초다언어 구사자는 몇 가지 흥미로운 특징을 갖고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특징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언어 공부에 유리하다는 통념을 완전히 깨는 것으로, 현상 자체만으로도 많은 이의 관심을 끌고 있다. 초다언어 구사자 중 남성이 많은 이유에 대해 일부 학자는 호르몬 차이로 설명하기도 하고, 또 다른 전문가들은 남성의 과시적 욕구 때문이라는 설도 내놓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수집벽과 연관이 높을 것이라는 설이 좀 더 눈길을 끈다. 실제 주위를 둘러보면 수많은 종류의 전문 수집가가 있지만, 그중 여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다. 여성에게 아예 수집 취미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일상생활에서 아기자기하게 소규모로 취미생활을 하는 것일 뿐, 전문가 수준으로 수집 활동을 확대해가는 경향은 남성에게서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개인적 시간 들여 언어 학습에 몰두

이런 현상은 원시사회의 채집·사냥 문화와 관련 깊어 보인다. 원시사회에서 남성은 주로 생존을 위해 외부에서 가급적 많은 물건을 수집해(사냥도 광의의 수집이다) 집으로 가져오는 구실을 맡은 반면, 여성은 이 물건들을 현명하게 소비하는 일을 담당해왔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결국 남성의 수집 욕구가 언어 공부와 묘하게 결합하면서 초다언어 구사자 사회에서 남성 우위현상을 낳은 게 아니냐는 해석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주간동아’ 961, 962호에서 소개한 ‘언어의 천재들 : 세계에서 가장 비범한 언어학습자들을 찾아서’(원제 Babel, No More)의 저자 마이클 에라드는 남성 우위현상만큼 현저하지는 않지만 초다언어 구사자들은 몇 가지 추가적인 특징을 보인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초다언어 구사자 중에는 왼손잡이가 많으며, 내성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실용적이고 독립적인 성향을 보이는 이가 많다는 것. 여기에 운전을 하지 않는다든지 길을 잘 잃는 특징도 관찰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동성애자와의 관련성도 언급하면서 만일 어떤 초다언어 구사자가 호모라는 말을 듣더라도 그로서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라고 표현하고 있다.

다중언어 구사와 관련해 또 하나 흥미로운 현상은 이른바 서번트 다중언어 구사자(polyglot savant)의 존재다. 서번트는 전반적으로는 정상인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나 언어를 포함한 특정 분야에서 비범한 능력을 보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사실 어린아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 언어에서만은 남다른 재능을 보여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들의 존재는 우리 뇌의 언어 습득 과정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재료가 되기 때문에 관련 연구가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까지 일반인의 언어 학습을 결정적으로 도와줄 만한 결과는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초다언어 구사자와 관련해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언어에 대한 그들의 탁월한 재능에도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사회적 지위나 부를 누리는 사람은 정작 드물다는 것이다. 이는 대중 예상을 크게 깨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현실만 보더라도 외국어 구사 능력은 가장 중요한 개인 스펙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가 2개 외국어를 넘어 그 이상의 다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입학과 취업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승승장구가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을 것 같다.

문제는 실제 우리 사회에서도 다중언어 구사자가 큰 성공을 거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초다언어 구사자의 경우 보통 남보다 이른 나이에 언어 공부를 시작해 그 후 개인시간을 대부분 언어 공부하는 데 몰두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혹시 여유시간이 생기더라도 초다언어 구사자의 특성상 오로지 새로운 언어 습득에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그 외 다른 생산적 활동은 잘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많은 이의 외국어 관심 제고에 보람

지금까지 적잖은 초다언어 구사자가 있었지만 이들에 대한 관련 학자들의 연구만 있었을 뿐 정작 본인 손으로 스스로를 분석한 연구는 전무한 것도 이런 사회적 기반 확보의 실패와 어느 정도 연관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최근에는 인터넷 발달로 일부 초다언어 구사자가 스스로 자신의 정보를 공개하기도 하고, 다중언어 구사자의 세계에 대한 단편적인 소개나 느낌 등을 피력하고 있지만 의미 있는 수준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초다언어 구사자 그룹의 끝머리에 닿아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내 경우를 그들의 일반적인 특징과 한 번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먼저 닮은 점은 남자이고, 수집벽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실제 나는 지금까지 우표와 미니어처 종, 미니어처 술 등을 열심히 수집했거나 수집하고 있다. 또한 적당히 실용적이고 독립성이 강하다는 점도 크게 틀리지 않은 듯하다.

반면, 나는 왼손잡이가 아니고 내성적이지도 않다. 운전도 필요 없어 자주 하지 않는 것일 뿐 언제든 할 수 있고 길치는 더더욱 아니다. 아들 둘을 낳고 30년 이상 별문제 없이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을 보면 동성애 관련 문제도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차이점은 언어 공부를 시작한 시점이다. 초다언어 구사자가 거의 모두라고 할 정도로 이른 나이에 언어 공부를 시작한 것에 비해, 나는 50이 넘은 나이에 일본어를 필두로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4가지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뒤늦게 구사언어 목록에 포함시키게 됐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만학도인 셈. 또 구사언어 목록에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를 추가해 그 수를 늘리고 싶어 하는 일반 초다언어 구사자의 수평 확장 스타일에 비해, 나는 그것에는 관심이 없고 현재 배우고 있는 언어들을 좀 더 고급 수준으로 구사하길 원하는 수직 확장형 스타일이라는 점도 큰 차이다.

언어 학습 배경과 차이점이 어떻든 결과적으로 다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지금까지 연재를 통해 많은 이가 외국어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언어 공부 자체를 인생 목표로 삼기보다 언어 학습을 생활의 윤활유로 삼아 삶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게 내 개인적 바람이다.



주간동아 963호 (p64~65)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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