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1

2014.11.03

쇼핑 매력에 푹 빠진 ‘요우커’(遊客)

‘中에서 온 그대’ 500만, 관광보다 쇼핑에 더 집중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4-11-03 11:0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쇼핑 매력에 푹 빠진 ‘요우커’(遊客)

    10월 29일 서울 명동 거리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요우커들.

    #1 10월 2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이대) 정문은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사진을 찍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조부모와 함께 여행 온 중국인 가족은 한 손에 ‘셀카봉’을 들고 배꽃이 조각된 벽 앞에서 활짝 웃었다. 학교 앞 명물인 닭꼬치 포장마차에는 전에 없던 중국어 문구가 우리말보다 크게 쓰여 있었다.

    #2 같은 날 오후 서울 명동. 화장품 매장에 들어서니 직원이 중국어로 “콰이라이(快來·어서오세요)” “닌 쉬야오 션머(도와드릴까요)” 같은 말을 건넸다. 입구에는 중국어 팻말과 수분크림 8통이 한 묶음씩 포장돼 잔뜩 쌓여 있었다. 이윽고 20대 중국 여성 두 명이 들어와 매장을 잠시 둘러보더니 케이블채널 OnStyle ‘겟잇뷰티’에 나온 비비크림 12개를 장바구니에 쓸어 담은 뒤 계산대로 향했다.

    올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한국관광공사(관광공사)에 따르면 1~9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1217만5550명이다. 관광공사는 올해 말까지 1400여만 명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중 1~9월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요우커·遊客)은 468만3415명으로 전체의 43.9%에 달했다. 요우커 500만 명 시대, 요즘 명동 거리 상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인사말은 ‘이랏샤이마세(いらっしゃいませ)’가 아닌 ‘콰이라이’다. 국경절(10월 1일) 연휴는 지났지만 명동과 이대 일대에서는 여전히 요우커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한자 간판, 중국어 인사말은 기본

    상반기 국내에서 카드를 쓴 외국인 중 요우커 비중도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9월 14일 신한카드 빅데이터 센터가 한국문화정보센터와 공동으로 올해 상반기 외국인 신용카드 국내 사용 지출액을 국가별로 분석한 결과 상반기 외국인 카드사용액(4조8290억 원) 중 중국인의 비중은 52.8%(2조5514억 원)였다. 이들의 국내 카드 사용액은 일본인, 미국인의 카드 사용액을 합친 금액의 2배가 넘었다. 쇼핑, 숙박, 음식 등 관광 관련 업종 이용액을 합산한 결과, 중국인 비중은 지난해 동기보다 60.4% 증가했지만, 일본인 비중은 22.0% 감소했다.



    관련 업계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중국어 전공자’가 우대받는 경우도 늘었다. 화장품 매장 에뛰드하우스 명동점에서 화장품 판매 아르바이트를 했던 최정민(23) 씨는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했는데 명동 매장은 손님의 반 이상이 중국인이라 응대에 도움이 됐다. 대부분 국내 뷰티 프로그램에서 이슈가 된 제품을 알고 사러 왔다. 가족용, 선물용으로 6개월 이상 쓸 분량을 사갈 때가 많아 한 번 패키지 손님들이 왔다 가면 진열대를 다시 채우기에 바빴다”고 말했다.

    쇼핑 매력에 푹 빠진 ‘요우커’(遊客)

    중국 국경절 연휴는 지났지만 서울 명동 거리에서는 여전히 요우커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이 성황이다.

    명동 거리에서 만난 중국인 주부 가오후아홍(40) 씨는 배우 이민호와 김수현의 팬이라고 했다. 단둥에서 왔다는 그는 양손에 화장품과 SPA 브랜드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그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상속자들’을 재밌게 보고 한국이 궁금해져 여행을 왔다. 화장품 질이 좋고 저렴해 선물용으로 잔뜩 샀다. 서울 구경을 마치면 제주에서 일정을 마무리할 생각인데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이대도 요우커 사이에서 떠오르는 관광 명소다. 중국인 여행 가이드북이나 여행 사이트에는 가볼 만한 관광지로 이대가 소개돼 있다. 서울시가 9월 10일 발표한 ‘서울지하철 일회용 교통카드 외국인 이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6월 이대입구역에서 중국인이 발급한 일회용 교통카드는 총 1만3000건이었으나, 올해 같은 기간에는 2만9000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이대 정문에서 만난 중국 베이징 출신 리주안(28) 씨는 이번이 두 번째 한국 방문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가족과 패키지여행을 왔지만 이번엔 친구와 자유 여행을 온 그는 “지난번 여행에서 주요 관광지를 돌아봤기에 이번 여행은 쇼핑 위주로 할 생각이다. 이대 앞 카페와 맛집을 다닐 예정”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인들의 기초 중국어 습득은 필수가 됐다. 인근 쇼핑골목에서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정명화(36) 씨는 “최근 중국인 관광객이 부쩍 늘어 가벼운 중국어 인사말을 공부했다. 우리가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을 보면 좋아하듯 중국 관광객도 중국어로 인사를 건네면 좋아한다”고 말했다.

    10월 6일 이대 교내신문 ‘이대학보’에서 중화권 관광객 14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요우커는 한류 열풍과 중국 현지 교육열 때문에 이대를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능프로그램 한류로 불리는 SBS ‘런닝맨’ 등에 학교가 노출돼 관광객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것. 부작용도 있다. 이대 재학생 김지원(20) 씨는 “학교가 유명해지는 건 좋지만 관광객이 학생들 사진을 찍어 중국 인터넷 블로그에 올리는 건 불편하다. 도서관 열람실까지 몰려와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는데 학교에서는 별다른 제재 조치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 명품 42종 발표

    쇼핑 매력에 푹 빠진 ‘요우커’(遊客)

    한류 열풍은 요우커들의 한국 여행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 긴다. 중국 한류의 중심 김수현, 이민호, EXO(위부터).

    요우커는 국내에서 명소 방문보다 쇼핑에 집중했다. 1~9월 롯데면세점에서 쇼핑한 요우커는 400만 명을 넘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50% 증가한 수치다. 면세점을 방문하는 요우커가 특히 선호하는 건 국산품. 쇼핑 목록을 살펴보면 국산 화장품 매출은 전년 대비 약 150%, 국산 전자제품 매출은 약 120% 증가했다. 국산 패션 제품 매출도 약 260% 성장 추세를 보였다. 롯데면세점 홍보팀 이민호 대리는 “국산화장품의 판매 비중이 압도적이다. 면세점을 방문하는 2명 중 1명은 국산 화장품을 구매한다. 루이비통이나 까르띠에, MCM 등의 명품도 전통적으로 잘 팔리는 제품”이라고 밝혔다.

    롯데면세점은 요우커를 잡기 위해 중화권에서 인기가 높은 한류 스타(이민호, 김수현, 슈퍼주니어 등)를 모델로 기용하는 한편, 중국인 전문 데스크를 따로 만들고 각 층마다 중국어 통역원을 배치했다. 9월 23일에는 업계 최초로 크루즈 선상에서 배우 박신혜의 팬미팅을 진행하면서 요우커 1300명을 추가로 유치했다. 4월 1만 명, 8월 1만5000명의 요우커를 유치한 ‘롯데면세점 패밀리콘서트’도 배우 이민호를 전면에 내세워 11월 초 다시 열 계획이다.

    요우커는 어떤 한국 제품을 사랑할까. 한국마케팅협회는 10월 23일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의 명품’ 42종을 뽑은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결과는 한국마케팅협회가 중국 ‘인민일보’ 인터넷판 ‘인민망’과 함께 7월 20일~9월 30일 중국인 1만76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를 분석한 것이다.

    소비재 부문에서는 경남제약 레모나, 농심 신라면, 하이트진로 하이트 맥주, 롯데주류 처음처럼(소주),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광동제약 비타500, LG생활건강 죽염치약, 오리온 초코파이, 한국인삼공사 정관장 등 18종이 뽑혔다. 내구재 부문에서는 성주디앤디 MCM, 쿠쿠전자 쿠쿠 밥솥,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 LG전자 휘센에어컨, 현대자동차 엘란트라(아반떼) 등 10종이 뽑혔다. EXO(가수), 제주도(관광명소), ‘별에서 온 그대’(드라마), 파리바게뜨(베이커리), 카페베네(커피전문점), BBQ(치킨) 등 14종도 서비스 부문 ‘명품’으로 뽑혔다.

    과거에는 관광버스를 대절한 패키지여행객이 절대 다수였지만, 최근에는 자유여행을 하는 요우커도 늘었다. 난징에서 5년간 거주한 남윤호(23) 씨는 “중국인은 한국 관광지에 가야겠다는 생각보다 드라마나 케이팝(K-pop) 때문에 한국에 관심을 갖고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을 때가 많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한창 인기였을 때도 주변 중국인이 한국 여행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고 했다. 남씨의 중국인 친구들은 어떤 경로로 한국 여행 정보를 입수할까.

    중국 최대 한국 여행정보 사이트는 펀도우코리아(bbs.icnkr.com)다. 공지에는 ‘CNN에서 꼽은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 50선’ ‘한국 16개 지역 1박2일 여행 노선 총정리’ 등이 올라와 있다. 따로 분류한 여행 파트에서는 한국 여행 사진부터 가이드 및 통역, 숙박 외에 성형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밖에도 중국인이 찾는 대표적인 한국 여행정보 사이트로 한여우왕(www.hanyouwang.com)이 있다. T머니 무료 나눔부터 이대·홍대·신촌 완전 공략, 명동·남대문 볼거리와 먹거리 완전 공략 등 유용한 한국 여행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중국판 네이버라 부르는 검색엔진 바이두(www.baidu.com)에서도 적절한 키워드 조합으로 요우커의 한국 여행 포스팅을 찾을 수 있다.

    관광 고부가가치화 도모해야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초 VIP리포트 ‘중국인 관광객 400만에서 1000만 시대로’에서 요우커의 특징과 경제적 효과를 분석했다. 이 리포트에 따르면 중국은 2012년 독일을 제치고 세계 최대 해외 관광 지출 국가로 부상했다. 또한 국내 요우커 증가로 대(對)중국 여행 수입액이 급증하면서 한국의 대중국 여행 수지가 2012년 흑자로 전환됐다. 요우커는 업무보다 일반 관광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 경우가 많고 쇼핑과 식도락 활동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한국을 방문했던 지인으로부터 여행정보를 입수하는 경우가 늘었고, 면세점 이용 비중이 높지만, 개별 관광객은 백화점 이용 비중도 높은 편이었다.

    백다미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2020년에는 방한 요우커 1000만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며 “거대한 소비 잠재력이 있는 중국 관광객 유치를 통해 관광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활용할 기회”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저가 관광 구조를 개편하고 관광 상품의 고부가가치화를 도모해야 한다. 테마 쇼핑형 관광지나 쇼핑 전용 시티투어 코스 개발을 활성화하고 중저가형 중심의 숙박 시설을 먼저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향후 쇼핑 중심 관광 패턴이 문화, 여가 중심 관광으로 발전할 수 있기에 문화, 오락 상품 개발에 집중하고, 입소문 효과를 얻고 싶다면 중국어 가능 인력 확보와 상품, 서비스 품질 개선에도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