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0

2014.10.27

감염자 1만 명…피어볼라(에볼라 공포) 어쩌나

에볼라 확산과 차단 겨울이 분수령…WHO 내년 1월 백신 접종 시작

  • 이우상 동아사이언스 기자 idol@donga.com

    입력2014-10-27 13: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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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염자 1만 명…피어볼라(에볼라 공포) 어쩌나

    ‘2014 ITU 전권회의’가 열리는 부산 벡스코에 방문객의 체온을 측정하는 발열감지기가 설치돼 있다.

    10월 20일 세계보건기구(WHO)는 나이지리아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사라졌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1만 명 가까운 감염환자가 발생한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등 서아프리카 3개국에선 지금 이 순간에도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 중이다.

    시에라리온 정부 조사에 따르면 자국 내에서만 하루 20명씩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10월 20일 기준 시에라리온 내 에볼라 감염환자 수는 3410명이며 이 중 1200명이 사망했다. 서아프리카 3개국 감염환자 수는 9178명이다. 라이베리아 통계가 제대로 갱신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다. 실제로는 더 많다는 뜻이다. WHO는 이번 에볼라 유행으로 감염환자 수가 10월 25까지 1만 명을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10월 14일 WHO는 좀 더 나쁜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브루스 에일워드 WHO 사무부총장은 “12월 첫째 주가 되면 에볼라 감염환자 수가 일주일에 1만 명씩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에볼라 감염환자가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지금까지 7명이 감염돼 1명이 사망했고, 스페인에서는 3명이 감염돼 2명이 사망했다. 독일에서는 3명이 감염돼 이 중 1명이 사망했다.

    WHO는 이번 에볼라 치사율이 50%이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례를 포함하면 70%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올겨울이 에볼라 확산과 차단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공식 치사율 70% 이를 것



    WHO는 현재 개발 중인 백신의 시험용 버전을 내년 1월 발병 국가에서 활동하는 의료요원 2만 명에게 시험 접종할 것이라고 밝혔다. 접종 대상을 2만 명으로 국한한 까닭은 대량생산 시스템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데다, 새로운 백신의 위험성과 효과가 아직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마리 폴 키에니 WHO 부국장은 “큰 임상시험이 될 것”이라 말했다. WHO에서 개발한 백신 외에 러시아에서 개발한 백신도 함께 처방할 예정이다. 아프리카 국민을 대상으로 한 백신 접종은 백신의 안정성과 효과가 입증된 후 진행한다.

    에볼라 확산을 막기 위한 세계적인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일각에선 이전까지 대처에 너무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에볼라 주요 발병국이 아프리카이다 보니 시장논리에 따라 보건당국과 제약사가 에볼라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최근 미국 제약사 맵바이오파마큐티컬은 에볼라 치료제로 알려진 신약 ‘Z맵’의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Z맵은 8월 의료봉사 도중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돼 미국으로 이송된 켄트 브랜틀리 박사가 호전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것으로 알려져 유명해진 약품이다. Z맵은 아직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았다.

    현재 에볼라 감염환자에 대한 치료 방법은 Z맵 투여와 혈청 투여, 두 가지가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Z맵을 환자에게 투여하는 것이 합당하냐는 지적부터 Z맵 효과가 아직 불명확하다는 의견까지 전문가 사이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스페인에서는 에볼라 감염환자 2명이 똑같이 Z맵을 처방받았지만 간호사 테레사 로메로는 회복한 반면 미구엘 파야레스는 사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Z맵이 ‘진짜 치료제’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바이러스 전문가인 정용석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Z맵은 에볼라에 대한 신체 면역능력을 증폭할 뿐이다. 따라서 면역 상태에 따라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사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Z맵은 에볼라 바이러스를 찾아내 면역세포가 쉽게 파괴할 수 있도록 돕는 구실을 하는데, 두 종류 항체를 인체에 집어넣어 면역반응을 증폭한다. 환자 몸 상태가 이미 나빠져 끌어 올릴 면역능력이 남아 있지 않다면 Z맵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또 에볼라 감염환자에겐 Z맵 투여 외에도 다양한 치료방법과 의학적 조치가 수반되기 때문에 몇몇 환자 사례만으로 ‘Z맵=에볼라 특효약’이란 공식을 세우는 건 성급하다는 비판도 있다.

    의료진 보호복 벗다가 감염

    감염자 1만 명…피어볼라(에볼라 공포) 어쩌나

    ‘동아일보’ 유근형 기자가 의료진용 방역복을 착용한 모습.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되고도 살아남은 사람으로부터 획득한 혈청을 환자에게 투여하는 방법도 에볼라 치료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브랜틀리 박사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서아프리카의 한 에볼라 감염환자가 자신의 혈청을 브랜틀리 박사를 치료하는 데 써달라며 보내왔고, 미국 첫 에볼라 사망자인 토머스 에릭 덩컨의 가족은 흑인이란 이유로 혈청을 수혈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병원은 덩컨이 혈청을 수여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정 교수는 “혈청에는 항체 외에도 백혈구 등 면역물질이 다량 들어 있어 치료 효과를 볼 개연성이 높다”면서도 “환자 스스로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외부 물질로 면역반응이 유도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 효과가 줄어드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수혈하다 완전히 무력화되지 않은 바이러스가 함께 옮겨지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에볼라 공포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이런 사회문제를 지칭하는 ‘피어볼라’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공포를 뜻하는 영어 단어 ‘피어(fear)’와 ‘에볼라(ebola)’를 합친 말이다. 외부 공기와 완전히 차단된 보호복을 입은 스페인 의료진이 에볼라에 감염된 사례는 이러한 공포에 불을 붙였다. 의료진이 감염된 건 보호복을 벗는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됐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후에 밝혀졌다.

    우리나라 또한 피어볼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8월 서울에서 세계수학자대회(ICM)가 열릴 당시 아프리카에서 온 참가자들이 숙박을 거부당해 묵을 곳을 찾아 전전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 10월 넷째 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4 ITU(국제전기통신연합) 전권회의’에서는 아프리카 국가 참가를 두고 부산시의회와 의료노동조합이 크게 반발해 결국 서아프리카 3개국은 참가하지 않았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나는 라이베리아 사람이지 바이러스가 아니다(I am Liberian Not a Virus)’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찍은 사진을 올리는 캠페인이 진행 중이다. 캠페인을 주도하는 라이베리아 여성 쇼아나 솔로논은 “라이베리아인을 바이러스와 동일시하는 사회적 낙인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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