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0

2014.10.27

수능 문제 오류 피해자 구제해야

  • 남성원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4-10-27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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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 문제 오류 피해자 구제해야

    2013년 11월 26일 성태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오른쪽)과 김경성 수능채점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 서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채점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13년 11월 시행된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직후 정답을 2번으로 해 출제된 ‘세계지리’ 8번 문항에 대해 오류가 있다는 이의가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대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측은 오류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리학회 2곳에서도 오류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 그대로 수능 결과가 발표된 후 대학별로 입학 사정 절차가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수험생 몇 명이 위 문항에 오류가 있음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12월 선고된 1심 판결은 평가원 측 손을 들어준 바 있다. 그로부터 1년 가까이 지난 최근 해당 문항에 오류가 있음을 확인하는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판결이 있었다.

    해당 문항은 ‘ㄱ’ ‘ㄴ’ ‘ㄷ’ ‘ㄹ’ 4개 명제를 주고 옳은 것으로 묶인 지문을 고르라는 합답형 문제인데, ‘ㄱ’은 옳고 ‘ㄴ’과 ‘ㄹ’이 틀린 내용임에는 의문이 없다. 그런데 “2012년 기준 EU는 NAFTA보다 총생산액 규모가 크다”는 ‘ㄷ’ 내용이 문제였다. 2007년까지는 당연히 EU의 총생산액이 NAFTA보다 컸는데, 그 후 격차가 줄어들고 유럽 재정위기까지 겹쳐 2012년에는 NAFTA의 총생산액이 EU를 추월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과서와 EBS 교재에는 2012년 이전을 기준으로 EU의 총생산액이 NAFTA보다 큰 것으로 기술돼 있어 평가원은 ‘ㄷ’을 옳은 것으로 보고 ‘ㄱ, ㄷ’으로 묶인 2번 지문을 정답으로 처리한 것이다. ‘ㄱ’만으로 제시된 지문이 없기 때문에 틀린 것을 공제해가는 방법으로 하면 ‘ㄱ, ㄷ’의 2번 지문이 상대적으로 정답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평가원 측 논리. 그러나 수능 지문에서 옳고 그름에 정도 차이가 있을 수 없다. ‘ㄷ’이 틀린 내용이라면 ‘ㄴ’과 ‘ㄹ’의 내용이 틀린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위 8번 문항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 항소심의 판단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세계지리’를 응시해 위 8번 문항이 틀린 것으로 채점된 1만9000명 수험생들의 구제 문제다. 이들은 오류가 정정되지 않은 수능 점수를 근거로 각자 대학에 응시해 합격 또는 불합격된 지 1년이 지났다. 대학 입학 사정은 수능 성적과 등급을 한 요소로 해 수시 및 정시의 수십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일단 이번 판결에서 취소될 대상은 평가원의 소송 제기자 4명에 대한 ‘세계지리’ 과목 등급처분뿐이다.



    일부 수험생은 과목의 부당한 등급처분으로 수능 최저등급기준에 미달해 수시 자격을 박탈당했거나, 불리한 위치에서 수시전형에 응시해야 했을 터. 정시에서는 수능 점수가 부족해 불합격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소송을 통한 권리구제에는 일정 형식이 요구된다. 국공립대에 대해서는 해당자에 대한 불합격 처분 취소소송을 생각할 수 있지만 이미 소송 제기 기간(6개월)이 경과했다. 그 밖에는 해당 대학을 상대로 지난 입학 사정에서 합격자의 지위에 있음을 확인하는 소송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입학 사정은 수능 결과뿐 아니라 내신, 논술, 면접 등 여러 요소를 종합해 진행한다. 지금에 와서 대학별로 변경된 수능 점수를 근거로 1만9000명에 대해 다시 입학 사정을 한다는 것도 여의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성사실이라도, 잘못됐다면 그것으로 피해를 입은 소수자를 구제해주는 것이 선진 국가의 자세다. ‘구제받을 소송 방법이 마땅치 않으니 그대로 있어라’는 태도는 당초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지금까지 끌고 온 잘못을 되풀이하는 셈이다. 각 대학의 입학 사정은 전형별로 각 요소를 계량화해 점수로 진행한다. 기존 합격자를 그대로 두고 정정된 수능 점수를 다시 대입해 재사정을 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상고심 판단을 보고 그저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기다려 위자료 명목의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은 정말로 구태다.

    수능 문제 오류 피해자 구제해야

    2013년 12월 16일 서울행정법원이 “2014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항에 오류가 없다”는 판결을 내리자 소송을 제기한 재수생들이 “판결이 부당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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