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0

2014.10.27

하루 종일 커피 한 잔… 염치 좀 있어라

카페에서 두 번 주문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입력2014-10-27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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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에서 일할 때가 많다. 사무실 없는 이들이 카페를 사무실처럼 이용한다고 해서 코피스(Coffee+Office)족이란 말도 나왔지만, 나는 일하기 좋은 공간이 있어도 종종 카페를 찾는다. 적당한 소음이 주는 몰입감이 창의적 업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카페는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공간이다. 대표적인 게 사랑방 용도다.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수다를 떠는 즐거움도 꽤 크다. 누군가는 카페에서 과외도 하고, 스터디도 한다. 카페가 없으면 사람들은 어디에서 만나고, 식사 후 어디에 가며, 어디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겠는가. 그러니 카페는 몇천 원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인 셈이다.

    통상 카페에는 시간제한이 없다. 그래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사람들 때문에 카페 주인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서울 홍대 근처에 많았던 초기 북카페들이 문을 닫은 것도 커피 한 잔 값으로 장시간 머무는 고객 때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카페는 일종의 자리 임대업 같다. 손님은 절대 왕이 아니다. 손님이나 가게주인 혹은 직원은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관계일 뿐 주종관계가 아니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에티켓이자 염치가 필요하다. 사실 커피 한 잔으로 하루 종일 자리를 점유하는 것도 염치없고, 카페라는 공유 공간을 사적 공간처럼 쓰면서 큰 소리로 소음을 발생시키는 것도 몰염치하며, 커피 한 잔만 시켜놓고 대여섯 명 앉을 공간을 장시간 점유하는 것도 염치없긴 마찬가지다.

    전국에 커피전문점만 4만 개 정도 된다. 가장 만만해 보여 창업을 많이 하는 아이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저렇게 많은 카페가 다 장사가 될까 싶은데, 사실 어려운 곳도 많고, 그러다 보니 숱하게 망하고 생기기를 반복한다. 유명 커피전문점도 상당수는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된다. 자영업자라는 얘기다. 만약 어떤 카페의 모든 손님이 최소 비용으로 최대 시간을 머문다고 생각해보라. 그 카페는 머지않아 망하지 않을까. 상생이나 공생은 정치인만 하는 게 아니다.



    분 단위로 돈 내는 카페

    오늘의 작은 사치는 ‘염치’다. 돈을 아끼는 건 절약이지만 남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부담을 주면서 자기 돈만 아끼는 건 염치없는 짓이다. 염치를 위해 절약할 기회를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작은 사치가 아닐까. 돈으로 살 수 있는 염치라면 사자. 이제는 염치마저 사치가 된 시대인지 모른다. 흥미로운 건 이런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유쾌하면서도 새로운 솔루션으로 문제를 풀어낸다는 것이다.

    분 단위로 요금을 받는 ‘지퍼블랏(Ziferblat)’이란 카페가 있다. 2011년 러시아에서 처음 시작돼 2년 만에 10여 개 매장을 내고, 2013년 12월 영국 런던에도 진출했다. 조만간 미국 뉴욕에도 진출하며, 향후 서울에도 올 가능성이 있다. 지퍼블랏이 아니더라도 이런 방식을 차용한 시간제 카페는 언제든 가시화될 수 있다. 지퍼블랏은 영국 라이프스타일 주간지 ‘타임아웃’에서 1월부터 ‘올해의 최고 신장개업 가게’ 후보로 올려뒀을 정도로 주목받았다. 독특한 운영 방식 때문이다.

    지퍼블랏에서는 커피나 음식이 아닌 시간을 판다. 그것도 1분 단위로. 1분에 5펜스, 1시간이면 3파운드다. 10월 기준으로 1파운드가 1700원 정도니까, 1펜스면 17원 정도다. 1분이면 우리 돈으로 85원 정도니, 1시간이면 대략 5100원이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1시간 미만을 머문다면 여느 카페의 커피 값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돈을 지불하면 커피뿐 아니라 비스킷, 과일, 채소 등 간단한 먹거리도 제공한다.

    성질 급한 사람은 커피와 비스킷을 5분 안에 후딱 먹고 나가면서 25펜스(425원)만 내면 된다. 반대로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다 두세 시간을 훌쩍 넘기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비싼 커피다. 하루 종일 있어도 상관없다. 돈만 내면 된다. 지퍼블랏은 슈퍼센테네리언(110세 이상 노인)에게는 3펜스의 할인 요금을 적용한다고 써 붙여놨다. 일종의 조크다. 110세 넘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할인 요금은 없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하여간 코피스족 처지에서도 이런 운영 방식이 나쁘진 않다. 정당한 대가를 내고 머무니 눈치 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기존 카페에서도 장시간 머물 경우 2~3시간 단위로 추가 주문하는 게 매너다. 그래 봤자 몇천 원 더 쓰는 거다. 요즘 단골이 된 ‘폴바셋’에서는 따끈한 카페라테를 마시고, 나중에 추가로 밀크아이스크림을 주문해 먹는 코스를 즐긴다. 커피 한 잔 값으로 두 시간 정도 공간과 커피를 누렸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일종의 연장 요금 개념으로 추가 주문을 한다. 그때 주로 선택하는 건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 생수 등이다. 만약 하루 종일 카페에서 있을 생각이라면 오전과 오후로 나눠 카페 두 곳을 가고 오전에 두 번, 오후에 두 번해서 총 네 번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뒀다. 아직 그렇게 오래 있을 일은 없어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적어도 2시간이 넘어가면 추가 주문을 한다.

    카페에서 일할 때는 나만의 룰이 있다. 1~2인용 테이블보다 가로로 길고 넓으면서 높은 테이블이 좋다. 대개 이런 테이블은 의자도 일하기 좋은 것으로 세팅돼 있다. 물론 테이블 귀퉁이에 앉는 원칙을 늘 지킨다. 가운데 딱 자리 잡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앉기에 애매하기 때문이다. 귀퉁이는 그게 편하다. 적어도 넓은 테이블 한쪽 끝부분만 점유하니 다른 자리에는 부담 없이 누구든 앉아도 된다는 메시지 같으니까. 그리고 대여섯 명 이상이 단체로 들어오면 과감히 자리를 비켜준다. 커피 한 잔 값으로 잠시 공간을 빌려 쓰는 거다.

    대화 금지 카페도 등장

    서울 구로구 신도림 디큐브시티에 있는 ‘카페큐브’는 일별 시간제, 월간 회원제, 2시간 시간제, 3시간 시간제 등 시간 및 기간 단위로 이용할 수 있다. 시간 단위 이용권을 끊으면 커피나 음료가 무료다. 여기서도 커피가 아닌 시간을 파는 셈이다. 500여 권의 전문서적과 신간이 비치돼 있고, 테이블마다 개인 컵 홀더와 전기 콘센트가 제공된다. 와이파이 사용도 무료다. 단 이곳에서는 대화와 전화통화가 금지다. 여느 카페처럼 시끄럽게 수다를 떨 수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타인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타인과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을 위한 조용한 카페다.

    사실 여기가 별난 곳은 아니다. 요즘 대화금지를 내걸거나, 암묵적으로 조용한 카페를 지향하는 곳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팔거나 침묵의 공간을 파는 것도 비즈니스가 된 것이다. 염치없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염치를 아는 것도 사치가 돼버렸다. 그만큼 우리는 남의 눈치를 보면서 과시하고 멋지게 보이기 위한 사치는 잘하면서, 정작 남에 대한 배려나 존중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염치를 돈으로 사서라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카페 주인 처지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카페가 사라지면 불편하고 아쉬운 건 우리 아닌가. 염치는 일종의 배려이자 함께 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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