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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실 정치에 불만 우리는 ‘대역’에 열광한다

민의 읽지 못하는 정치 비판, 탈일상의 도구로 자리매김

  • 조재휘 영화평론가 jegalhwy@hanmail.net

현실 정치에 불만 우리는 ‘대역’에 열광한다

현실 정치에 불만 우리는 ‘대역’에 열광한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폭군 광해를 대신해 잠시 임금 자리에 앉은 광대 하선의 이야기를 다룬다.

마크 트웨인이 ‘왕자와 거지’를 쓴 이래 평범한 사람이 높은 신분의 ‘대역’이 되는 이야기는 많은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왕자와 거지’에서 왕자 에드워드 튜더는 자신과 닮은 거지 톰 캔디와 옷을 바꿔 입고 궁궐 밖으로 나간다. 처지가 바뀐 두 사람은 그때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서로의 삶을 체험한다. 사실 이 작품은 북유럽의 전승 설화를 16세기 영국에 맞게 각색한 것이었으니, 이야기 원형은 훨씬 오래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전혀 다른 신분과 계급의 인물로 변신한다는 대역 모티프는 히틀러나 빈라덴의 대역이 있었다는 식의 음모론으로 번지는 등 현대에 와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있다. 개봉을 앞둔 영화 ‘나의 독재자’는 남북 정상회담 리허설을 위해 김일성의 대역을 맡았던 남자가 주인공이다. 천만 관객 흥행을 기록한 ‘광해, 왕이 된 남자’(광해·2012)는 폭군 광해를 대신해 잠시 임금 자리에 앉은 광대 하선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를 제외하고도 ‘왕자와 거지’를 세종대왕 이야기로 번안한 ‘나는 왕이로소이다’(2012)가 있고, 일본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사극 대작 ‘카게무샤’(1980)에서 영주의 죽음을 감추고자 3년간 그를 닮은 도둑을 대역으로 내세우는 설정을 보여준 바 있다.

변화하는 대역의 정체성

현실 정치에 불만 우리는 ‘대역’에 열광한다

영화 ‘데이브’의 주인공 데이브는 소시민에서 하루아침에 미국 대통령 역을 맡게 되는 인물이다.

현대극을 보자. 이반 라이트만 감독은 ‘데이브’(1993)를 통해 미국 대통령의 대역을 맡게 된 남자 이야기를 그렸고,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존 말코비치 되기’(1999)는 유명 배우 존 말코비치의 몸을 빌려 원하는 삶을 꾸리려는 인간들의 다양한 욕망을 보여줬다. 이처럼 대역의 인생을 사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창작자의 영감과 대중의 흥미를 자극해왔다. 이와 같이 반복되는 이야기에는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삶을 가상의 세계에서나마 살아보고 싶은 대중의 갈망이 녹아들어 있다.



‘광해’의 하선은 본래 광대 신분에 지나지 않았지만 왕의 대역을 맡으면서부터 점차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풍모를 갖추게 되고, ‘카게무샤’의 도둑 역시 영주 구실을 떠맡으면서 “영주님의 혼이 옮겨온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만큼 몰입하게 된다. ‘데이브’의 주인공 역시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소시민이었지만 백악관에 들어가 정치의 장에 익숙해지자 자신만의 정책을 입안해 실행하는 등 유능한 정치인으로 돌변한다.

기계라는 단어를 들으면 금속성의 부속들로 이뤄진 정교한 공업용 설비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는 통념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를 기계에 부여한다. 두 사람은 어떤 관계, 어떤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흐름을 이어가는지에 따라 다른 용법, 다른 구실과 정체성을 지니게 되는 존재를 ‘기계’라 부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 역시 기계의 일종일 수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일상적으로 다양한 변신을 실천하는 기계다. 가정에서는 ‘부모’ ‘자녀’라는 기계고, 이성과의 만남에선 ‘연인’이라는 기계가 되며, 사무실에서는 ‘회사원’이라는 기계가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본질이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한 인간이 어떠한 사회적 관계에 처해 있는지, 어떤 공간과 맥락에 접속해 있는지다. 어떤 이름이 주어지고 어떤 자리에 배치되느냐에 따라 의식 역시 그에 맞춰 변하기 때문이다. ‘왕자와 거지’에서 거지 톰이 궁궐이라는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왕자’가 되고, 거리를 방랑하는 것만으로 왕자 에드워드가 ‘부랑아’가 된 것처럼.

대중의 ‘갈망’ 투영

현실 정치에 불만 우리는 ‘대역’에 열광한다

영화 ‘나의 독재자’에서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의 대역인 성근 역을 맡은 배우 설경구.

궁궐 밖 현실을 체험한 왕자 에드워드는 궁궐 안으로 돌아와 백성의 처지를 이해하는 현명한 왕이 되고, 왕자의 대역 노릇을 한 톰은 그동안 선행을 베푼 공을 인정받아 관리로 발탁된다. ‘왕자와 거지’에서 두 사람은 자신이 생활하던 일상의 영역을 벗어나 다른 지형(terrain)에서의 탈일상적 체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갖게 되고 인격적, 지성적으로 좀 더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광해’와 ‘데이브’의 두 주인공, 하선과 데이브 역시 마찬가지다. 서민 출신인 두 주인공은 서민의 고충을 몸소 경험했기에 정치 지도자 위치에서도 서민을 위한 정치를 펼 수 있었다. 상반된 두 개의 삶, 서민으로서의 하류 인생과 혜택 받은 특권층의 삶을 한 몸으로 경험하면서 하선과 데이브는 궁궐 혹은 백악관이라는 틀 안에서 권력투쟁에만 골몰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없던 정치적 비전을 갖게 됐다.

하선은 대동법을 시행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백성을 돕고, 데이브는 집 잃은 서민을 위한 복지대책을 내놓아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다. 서민에게는 정책을 실행할 권력이 없고, 정치인에게는 서민의 처지를 헤아리는 역지사지 안목이 부족하다. 하선과 데이브는 양쪽 세계에 한 발씩 걸침으로써 양측의 단점을 보완하고 훌륭한 정치인으로 우뚝 선다. 평범한 서민으로서의 삶이 정치에 반영되는 상호 교환적 피드백이 이뤄진 것이다.

민의를 읽지 못하는 정치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심심찮게 인터넷을 떠돈다. 대역 모티프를 다루는 많은 영화가 대역으로 하여금 임금, 영주, 대통령 위치를 떠맡게 하는 데는 올바른 정치를 바라는 대중의 갈망이 투영돼 있는 건 아닐까. 서민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고 그에 맞춘 정책을 내놓을 수 있는 자질과 덕성을 겸비한 지도자를 바라는 메시아적 열망이 ‘광해’의 천만 흥행을 낳은 것은 아닐까. 영화는 시대의 증언이다. 대역의 서사가 대중에게 호응을 얻고 유행하는 데 담긴 정치적 함의를 결코 가볍게 넘겨선 안 될 것이다.



주간동아 959호 (p58~59)

조재휘 영화평론가 jegalhw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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