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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유엔 ESCAP 가입 60주년

“아휴~ 말 마세요 공적개발 원조 받으려 구걸했죠”

인터뷰 | 초창기 유엔 회의 ‘산증인’ 조이제 동북아경제포럼 의장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아휴~ 말 마세요 공적개발 원조 받으려 구걸했죠”

“아휴~ 말 마세요 공적개발 원조 받으려 구걸했죠”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 150달러를 손에 쥔 채 태국 방콕으로 갔습니다. 홍콩에서 양복 한 벌을 해 입고 며칠 걸려 방콕에 도착했는데, 다들 한국 대표는 거들떠보지 않더군요. 방법이 있나요. 회원국 대표들에게 아는 척하면서 매달릴 수밖에요.”

조이제 동북아경제포럼(NEAEF) 의장(사진)은 1958년 12월 방콕에서 열린 유엔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onomic Commission for Asia and the Far East·ECAFE·ESCAP 전신)에 참석했던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신생국 대표로 유엔 회의에 참석한, 현재 유일한 생존자인 조 의장은 1936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해방 후 부모 고향인 경남 함안으로 건너왔다. 이후 6·25전쟁에 참전하고, 공무원이 돼 유엔의 한국 경제 부흥 지원에 앞장서다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시카고대 교수와 미국 동서문화센터(EWC) 총재를 지내면서 인구통계와 경제 발전에 관한 150여 편의 논문과 저서를 출간한 저명 학자이기도 하다.

“부자나라 대표 만나 주지도 않아”

“우리나라는 1954년 유엔 ECAFE 정식 회원국이 됐지만 당시 회의 참석자들은 모두 돌아가셨죠. 그때 나는 경제기획원 전신인 부흥부에서 정부 통계관으로 일하다 1958년 처음 ECAFE 제2차 통계관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어요.”



유엔과 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고 경제 부흥을 하려면 각종 물가지수 등 통계가 있어야 했지만, 당시 우리나라에는 그런 통계가 없었다. 조 의장은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UNCURK)가 내준 지프를 타고 방직생산협회, 자전차협회 등 각 협회를 다니면서 공업 생산품 통계자료를 수집했는데, 당시로는 획기적인 통계자료인 ‘매월 자전차(거) 생산량 230대’ 같은 기초통계를 만든 이도 조 의장이었다.

“미국은 기술 원조의 하나로 한국 통계 부문 개선을 위해 ‘라이스 사절단’을 파견했어요. 당시 한국에 온 라이스 박사는 미국 루스벨트 정부의 통계제도를 확립하고 전후 일본 통계제도 개혁을 이끈 세계적 석학이었어요. 그분과 함께 일하다 선진국 통계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죠. ECAFE 통계관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는 데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

공무원 해외 출장이 극히 드문 시절, 우리 정부 예산의 50%를 미국이 대던 시절이다. 외화 반출은 대통령 재가사항이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외무부 지연태(2007년 작고) 씨와 서류를 들고 경무대를 찾아 이승만 대통령에게 결재를 받았다. 한 달 평균 월급 25달러이던 시절, 150달러를 출장비로 손에 쥐었다.

“일본과 홍콩을 거쳐 방콕으로 가야 했어요. 도쿄에서 하루 묶은 뒤 홍콩에 들러 25달러를 주고 양복과 드레스셔츠, 구두를 골랐죠. 명색이 국제회의인데 남루한 옷차림으로 가난한 나라의 대표라는 것을 표시할 필요는 없잖아요. 며칠 걸려 방콕 회의에 참석했는데, 참 막막하더군요. 당시 1인당 국민소득 400달러의 말레이시아, 200달러의 필리핀은 ‘부자나라’였어요. 경제력이 곧 국력이다 보니 한국 대표와는 만나려고 하지도 않았죠. 서러움을 많이 느꼈죠.”

“아휴~ 말 마세요 공적개발 원조 받으려 구걸했죠”

1969년 유엔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 인구·가족계획 회의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실 고문으로 참석한 조이제 동북아경제포럼 의장(가운데). 1983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인구통계 회의 참석 당시 조이제 의장 모습(왼쪽부터).

당시 ‘부자나라’ 대표들은 각종 선진 통계기법으로 작성한 통계수치를 소개하며 아시아 지역 경제 발전을 논했지만, 한국 대표는 뚜렷이 내세울 게 없었다. 조 의장은 무조건 선진국 통계기법을 익히면서 각종 자료를 수집했다. 냉전시대가 고착화할 무렵인 만큼 한국 대표단에게는 일본과 인도 등 중립국 대표는 접촉하지 말라는 훈령도 전달됐다.

“지연태 대사는 말렸지만, 이런 좋은 국제회의에서 미국 등 우방국과 자유중국(대만) 대표단만 만나라는 게 이해가 안 됐어요. 그래서 지 대사에게 ‘나를 자르려면 잘라라’ 하고 인도, 일본, 필리핀 대표단 등 가리지 않고 만났죠. 당시 인도 대표였던 아쇽 미트라는 인도 경제 부흥을 총괄 지휘하는 지도자였고, 일본 대표로 나중에 도쿄도지사를 역임한 ‘통계전문가’ 미노베 요기지 박사는 이후 일본 정계, 기업계에서 유명 인사가 됐어요. 그런 사람들과 차를 마시고 여행도 하면서 친분을 쌓았고, 이후 우리나라와 국제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시발점이 됐습니다.”

“아휴~ 말 마세요 공적개발 원조 받으려 구걸했죠”

1958년 12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유엔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 회의에 참석한 조이제 동북아경제포럼 의장.

그가 말한 지연태 대사는 당시 외교부 직원으로, 이후 주이탈리아대사관 대사를 지냈으며, 12, 13대 국회의원도 역임했다. 이어지는 조 의장의 회고.

“당시 한국은 지금의 아프리카 대표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적개발원조(ODA)를 받으려고 ‘구걸하고’ 다녔어요. 그런데 구걸을 해도 한국은 좋은 위치에서 구걸을 했죠. 왜냐, 한국 국민은 교육 열의가 강하고 미국을 좋은 나라라고 생각했으니 ODA를 집행하는 미국 처지에선 나쁠 게 없었죠. 국제회의장에서도 각국 대표를 따로 만나 한국에 대한 원조 필요성을 알렸어요. 이승만 대통령은 유엔을 통해 원조를 하면 원조 공여국(미국) 처지에선 생색이 안 나니까 미국에 직접 달라고 요구합니다.”

조 의장은 1958년 첫 유엔 회의 참석 이후 몇 년 전까지 각종 유엔 회의에 참석했는데, 해마다 달라진 한국 위상을 체감했다고 한다.

해마다 달라지는 한국 위상

“1958년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를 우러러봤던 한국이 지금은 어떻습니까. 필리핀은 한국에 손을 내밀고, 말레이시아는 중국인이 없으면 경제가 돌아가지 않잖아요. 60년 전 유엔 회의에서 구걸하던 한국은 이젠 유엔 회의 주역으로서 큰 구실을 하고 있죠.”

그는 ESCAP 가입 60주년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본의 우경화, 중·일 분쟁, 북한 문제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정치적으로 갈등하고 있습니다. 유엔은 그런 갈등을 중화하는 구실을 하죠. 특정 국가가 미워도 유엔을 통해 간접 원조하는 식이에요. 동북아는 갈등 요인이 많지만 기능적인 경제 협력, 예를 들어 가스 파이프라인을 연결하거나 유라시아 철도를 놓는 식의 실질적인 협력부터 진행하는 실사구시가 필요합니다. 급격히 증가하는 아시아 노령인구 같은 공통의 문제도 함께 풀어가야죠.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됩니다. 룰을 지키면서 남을 도와주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주간동아 959호 (p30~31)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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