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6

2014.09.29

누가 ‘이승우’에 태클을 거는가

한국 축구 새로운 천재 벌써 흔들기 시작…훈계와 윽박지르기 고질병 고쳐야

  •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14-09-29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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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이승우’에 태클을 거는가

    16세 이하 축구 국가대표 이승우.

    어느 시대에나 천재는 있었다. 밤하늘에 갑자기 터진 축포처럼 종종 천재가 등장했다. 그리하여 어찌됐는가. 세상 모든 에너지를 제 몸 안에 흡수했던 천재는, 그러나 한순간 밤하늘을 벌겋게 밝힌 후 사라져버렸다. 지금도 하나 둘씩 기운을 잃고 있다. 왜 그런가. 천재라서? 천재라 게을러서? 흔히들 그렇게 말한다. 천재는 자기 재주만 믿고 훈련도 게을리하고 튀는 행동을 하다 자멸한다고. 그래서 새로운 천재가 나타났을 때 곧바로 이런 주문을 한다. 튀지 말라고, 행동 조심하라고. 나는 이러한 판단과 주문에 단호히 반대한다.

    왜 그런가. 오래전 축구선수 김종부가 있었다. 선수의 의사 존중, 합리적인 계약, 상생하는 프로 문화 등이 씨앗도 내리기 전이던 1980년대 중반, 이 천재는 축구화를 오래 신지 못했다. 83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4강 신화의 주역이던 김종부는 2년여를 끈 스카우트 파동 끝에 포철, 대우, 일화 등을 전전하다 은퇴했다.

    AFC U-16에서 실력 확인

    김병수라는 천재도 있었다. 같이 그라운드를 뛰던 서정원, 노정윤, 신태용 등이 199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후 지도자의 길을 우직하게 걷는 것과 달리 천재 김병수의 선수 생활은 너무 일찍 마감됐다. 바로 그 천재성 때문에 어릴 때부터 거의 모든 경기에서 혹사당하며 뛰고 또 뛰었다. 그러다 부상 후유증과 슬럼프로 26세에 축구화를 벗었다. 데트마르 크라머 당시 올림픽대표팀 총감독이 “축구 인생 50년 만에 만난 천재”라고 극찬한 김병수는 결코 튀는 행동을 하다 쫓겨난 게 아니다.

    이렇게 기억하는 순간 고종수, 이관우, 이천수도 떠오른다. 그들의 성장기를 함께했던 감독들은 한결같이 노력형 천재라고 증언한다. 김호 전 월드컵대표팀 감독은 고종수를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최고 테크니션”이라고 평가했고,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은 “이천수나 고종수처럼 욕먹어도 자기 표현하는 선수가 좋다”고 하면서 “이런 독창성을 어렸을 때부터 인정하고 살려줘야 하는데 한국 문화는 어떤 틀 안에 집어넣으려 한다”고 통탄했다. 여기에 문제 핵심이 있다.



    이제 이승우 얘기를 해보자. 그에 대한 소문은 진작부터 지구 반대편에서 들려왔다. 뛰어난 선수가 스페인에 진출했는데, 그 유명한 FC바르셀로나의 유스팀에서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태국 방콕에서 열린 AFC U-16 챔피언십 대회는 그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는 대회였다. 이승우는 5경기에서 5골 5도움을 기록했다. 16세 이하 대표팀은 준우승을 했고 이승우는 최우수선수상과 득점상을 받았다. 이 기록만으로도 눈을 비비고 다시 살펴볼 만한 선수다.

    경기 전개 과정은 기록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중원에서 어슬렁거리는 듯싶더니 순식간에 빈 공간으로 달려간다. 그곳으로 공이 투입되면 이승우는 마치 갓난아기를 보듬듯 공을 쓰다듬으면서 좀 더 전진한다. 수비수 두어 명이 가로막을 경우 몸을 한두 차례 흔들며 희미하게 보이는 빈틈을 거세게 찢어버리면서 전진한다. 그다음은? 슛! 그리고 골이다.

    이 탁월한 개인 기량은 경기 전체를 읽는 눈과 결합하면서 팀 전체의 공격 속도를 높이고 다양한 전술 변용을 가져온다. FC바르셀로나 유스팀에서 함께 성장하는 장결희까지 결합하면 상대 수비수는 제 풀에 지쳐 공간을 내주게 된다.

    그런데 이승우가 공을 다룰 때는 환호하던 사람들이 다른 모습을 보고는 갑자기 한두 마디 거들기 시작한다. 북한과의 결승전 후반전이 시작될 때 이승우는 공을 건네주는 주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에 건방지다는 훈수가 터져 나왔다.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후 혼잣말로 거친 말을 내뱉으면 튀는 행동을 자제하라는 말이 잇따른다. 인터뷰에서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면 어린 선수가 자만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승우와 1박 2일을 보낸 것도 아닌데, 어찌 그리도 과감하게 인격적 판단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

    이승우는 안전하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다. 스페인 축구 문화 말이다. 스페인은 세계 전역의 축구 유망주가 모여드는 곳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중국에 이어 북한도 유망주를 대거 보내고 있다. 바르셀로나 지역클럽인 마르셀 재단에서는 북한 유망주 20여 명이 미래를 꿈꾸고 있다. 그들이 이번에 우승을 일궜다.

    이승우는 FC바르셀로나의 단계별 유스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인 ‘후베닐 A’에 속해 있다. 20세기의 전설 요한 크루이프가 주도해 창설한 바르셀로나 유스 시스템을 ‘라 마시아’(La Masia·스페인어로 ‘농장’이란 뜻)라고 부른다. 메시, 사비, 이니에스타 등이 이 ‘농장’에서 자랐다. 7~8세 프레벤하민부터 16~18세 후베닐 A까지 15등급으로 구분된다.

    이 ‘농장’에서는 축구가 전부가 아니다. 반드시 학교 교육을 병행한다.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기숙사에서 보충수업도 받는다. 운동선수라고 열외가 아니기 때문에 성장기 유망주들은 열심히 공부한다. 유급하면 한 학년을 더 다녀야 한다.

    누가 ‘이승우’에 태클을 거는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명문 FC바르셀로나에서 기량을 쌓고 있는 장결희(왼쪽)와 이승우.

    줄 세우기 스포츠 문화 여전

    이렇게 학교공부를 시키는 이유는 무엇보다 16세 이하 어린 소년들을 아직 ‘직업 선수’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축구 기술만 집중적으로 가르쳐 팀 자원으로 쓰거나 다른 팀에 비싼 값으로 파는, 그런 ‘상품’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다양한 공부를 통해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기본적인 인권, 즉 학습권 관점에서도 공부는 필수다. 그리고 다양한 공부가 축구를 더 풍부하게 상상하도록 만든다는 점을 그들은 철저히 신뢰한다.

    연령별로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축구 연습도 주 4회로 제한하며 그마저도 하루 훈련 시간이 1시간 30분을 넘지 않는다. 우격다짐으로, 악으로 깡으로, ‘안 되면 되게 하라’ 외치며 운동장을 열 바퀴 돌고 하루에 수백 번씩 슈팅을 하는, 그런 전근대적 훈육이 아니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소년들은 소신 있게 행동하고 원활하게 의사 표현을 한다. 그것이 창의적인 선수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당연히 그 나이에는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런 시스템에서 축구선수로 성장하는 장결희는 “코치님과 함께 어떤 축구를 해야 하는지 자주 대화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고질적인 권위주의, 서열주의 스포츠 관행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중고교 대회가 열리는 운동장에 가보라. 관중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지도자와 학부모의 생생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많은 욕설과 다그침을 말이다. 우리 소년들은 흡사 전쟁에 나선 병사처럼 굳은 표정으로 뛰고 또 뛴다.

    고쳐야 할 것은 이승우가 아니라 우리의 억압적인 스포츠 문화다.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의 고질적인 서열 문화다. 조금이라도 활달하게 행동하면 튀지 말라고, 교만하지 말라고, 게으른 천재가 되지 말라고 훈계하는 것은 줄 세우고 윽박지르는 데 익숙한 우리의 낡은 관행일 뿐이다.

    이승우와 장결희는, 그리고 국내에서 선수의 꿈을 키우는 모든 소년은 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내가 만약 그런 축구 학교 책임자라면 역설적 의미에서, 1990년대 위대한 스타 에리크 캉토나가 했던 명언을 교문 위에 큼직하게 써 붙이고 싶다.

    “축구선수라고 해서 타의 모범이 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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