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김용섭의 작은 사치

브랜드 넘어선 기부 한 켤레 친환경 한 켤레

당신의 신발

브랜드 넘어선 기부 한 켤레 친환경 한 켤레

브랜드 넘어선 기부 한 켤레 친환경 한 켤레

프랑스 신발 브랜드 베자(VEJA).

요즘 나는 베자(VEJA)라는 신발을 자주 신고 다닌다. 브라질어로 ‘바라보다’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 브랜드인데 신발을 만드는 천, 가죽, 고무 등 모든 재료를 브라질산 천연재료로만 쓴다. 많은 신발 회사가 플라스틱 섬유나 인조가죽, 합성고무 등을 사용해 좀 더 싸고, 쉽게 잘 닳지 않는 신발을 만든다. 그러나 베자 제조회사는 신발에 유기농 천연섬유와 고무나무에서 천천히 수확한 천연고무 등을 쓰고, 브라질 장인과 노동자에게 선진국 수준만큼의 급여를 지급하는 등 노동의 대가를 좀 더 정당하게 지급한다. 환경과 노동 측면에서 이른바 착한 신발이다. 물론 천연고무 바닥이라 좀 더 잘 닳고, 가격도 좀 더 비싸다.

그럼에도 이 신발을 선택한 건 윤리적 소비를 보편적으로 받아들인 시대에 사는 사람의 지극히 보편적인 소비행태다. 솔직히 우리가 아는 글로벌 신발 브랜드 중에는 환경과 노동 문제에서 당당하지 못한 곳이 꽤 많다.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제3세계에서 암묵적으로 노동 착취도 해왔다. 물론 ‘신발을 어떻게 만들던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냥 예쁘고 멋지고 내 발에 편하고 기능적이면 되지’라는 생각을 가진 소비자라면 이런 문제가 전혀 상관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비자가 달라졌다. 내 발에만 좋은 신발을 신을 것인가. 발에도 좋고, 세상에도 좀 더 좋은 신발을 신을 것인가.

오늘의 작은 사치는 신발이다. 우리는 하루라도 신발을 신지 않고 생활할 수 없다. 도시는 맨발로 다니기엔 너무 위험하고, 맨발로 돌아다니면 수많은 이의 시선을 아주 강렬하게 받아야 할 정도로 신발을 신지 않는 사람은 현대인이 아니란 고정관념도 견고하다. 집에서 나오는 순간 우리는 더는 맨발이 아니다. 심지어 집 안에서 슬리퍼를 신는 경우도 많다. 신발 없는 일상은 상상도 못 한다. 이미 신발은 일상의 필수도구가 됐다.

내 발에만 좋은 신발은 ‘No’

브랜드 넘어선 기부 한 켤레 친환경 한 켤레
어떤 신발을 신느냐는 그 사람을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오죽하면 구두는 남자의 인격을 드러낸다는 얘기까지 있겠는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떤 신발을 신느냐는 중요하다. TPO(시간, 장소, 상황)에 맞는 패션과 그에 따른 신발을 신는 걸 중요시하기에 신발만 보고도 무슨 옷을 입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패션에 민감한 사람은 옷과 신발의 소재와 컬러까지 ‘깔맞춤’하거나 조화를 고려한다. 유희열이 작사하고, 김연우가 부른 노래 ‘연인’에는 ‘내 옷장에 입을 옷이 왜 이리 없나요’라는 가사가 나온다. 모든 여자가 절대 공감하는 얘기란다. 사실 요즘 남자들도 꽤 공감한다. 구두나 운동화 등 상황에 맞는 신발 몇 켤레면 충분하다 여겼을 과거 세대와 달리, 요즘엔 지네도 아닌데 신발이 수십 켤레씩 필요하다는 사람도 많다. 가까이에는 우리 집에도 그런 사람이 한 명 있다. 하여간 패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신발이다. 아무리 멋진 옷을 입어도 신발이 그에 어울리지 않으면 보기 싫다.



남자 대부분이 그러겠지만, 나도 슈트를 입고 타이를 맬 때는 꼭 클래식한 구두를 신는다. 명품 브랜드 구두를 선호하는 건 아니지만 여러 켤레 갖고 있다. 비싼 구두의 장점은 소재가 좀 더 좋다는 것이다. 디자인은 멀리서 보면 큰 차이를 모를 수 있지만 소재는 다르다. 이건 신는 사람부터가 느낀다.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선 그에 맞게 차려입고 차려 신는다. 비즈니스맨에게 슈트와 구두는 일종의 전투복이자 전투화다.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당당하게 드러낼 구두를 잘 선택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나는 ‘게으름뱅이들의 신발’이라는 로퍼(loafer)도 즐겨 신는다. 좀 더 편한 자리에 갈 때 주로 선택한다. 로퍼는 양말 없이 신는 신발이다. 맨발이 찝찝해 양말을 신겠다면 발바닥만 살짝 덮는 양말(덧신)이 있다. 적어도 남들 눈에는 양말을 신지 않은 듯 보여야 더 멋진 신발이 바로 로퍼다. 구겨 신을 수도 있고, 청바지나 면바지, 캐주얼한 재킷에도 잘 어울리는 게 로퍼다. 멋 낸 듯, 멋 안 낸 듯, 무심한 듯 세련된 척하기에도 좋은 아이템이다. 중후하게 나이 든 이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신발이다.

개인적으론, 운동화의 원조격인 캔버스화(캔버스천으로 만든 운동화)도 좋아한다. 몇만 원이면 살 수 있는 캔버스화는 아주 세련되고 고급스럽진 않아도 적당히 투박한 듯 소박하고 멋스럽다. 가격이 싼 캔버스화를 신고 사치를 누린다는 건 어불성설일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비싸지 않은 신발 하나로도 꽤나 기분 좋은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캔버스화가 캔버스천을 써서 붙은 이름이라면, 고무 밑창의 특성 때문에 붙은 말이 스니커즈다. 고무 밑창이 구두와 달리 걸을 때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Sneaker’(살금살금 걷는 사람)라는 말에서 따왔다. 특히 구두와 운동화를 적당히 결합한 듯한 스니커즈는 중년 남자도 많이 도전할 정도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캐주얼한 재킷이나 심지어 모던한 슈트 차림에 스니커즈를 신기도 한다. 비싼 신발을 신는 것만 사치가 아니다. 일상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 과감한 소비에 도전하는 것도 마음의 사치다.

욕망을 달래줄 수 있는 물건

브랜드 넘어선 기부 한 켤레 친환경 한 켤레

미국 신발 브랜드 탐스(Toms).

신발은 이름 하나로 통칭하기엔 세부적인 이름이 무척 많다. 모두 형태나 용도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이 말은 곧 각기 다 필요할 수 있다는 뜻이고, 신발을 탐내는 사람은 종류별로 사기도 한다. 누군가는 탭댄스용 구두를, 발레용 토슈즈를 산다. 직접 그 신발을 신고 뭔가를 하지 않아도 그냥 갖고 싶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산다. 이런 게 어쩌면 최고의 사치다. 실용적이진 않아도 욕망을 달래줄 수 있으니까.

신발에서의 새로운 욕망도 있다. 대표적인 게 탐스(Toms) 슈즈다. 신발 한 켤레를 사면 다른 한 켤레를 제3세계에 기부하는 마케팅으로 유명한데, 물론 두 켤레 값은 소비자가 다 낸다. 탐스를 신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신발을 기부했다는 의미가 된다. 나를 위해서만이 아닌 남도 위하는 소비라는 측면에서, 돈은 좀 더 들겠지만 마음은 편하고 즐겁다. 종이로 만든 신발 브랜드 언스티치드 유틸리티(Unstitched Utilities)도 있다. 미국 듀폰에서 만든 특수 종이 타이벡(Tyvek)으로 제작하는데, 아주 가볍지만 찢어지진 않고 방수도 된다. 땅속에 묻어도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고 100% 재활용도 가능한 친환경 코드를 담은 신발이다. 나이키도 타이벡을 활용해 가방을 만든 적이 있고, 여러 곳에서 타이벡으로 종이 신발을 만든다.

이런 일련의 시도에서 핵심 이슈는 친환경이다. 소비자가 신발이 가진 본원적 속성, 즉 발에 편하거나 멋진 디자인만이 아닌 기부와 친환경 같은 이슈에 주목하는 건 과거와는 확실히 다른 점이다. 그만큼 신발로 누릴 수 있는 사치가 더 다양해진 셈이다.



주간동아 2014.09.29 956호 (p68~69)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4

제 1214호

2019.11.15

윤석열 대망론이 나오는 이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