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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유병언 총기 알려고 하지 말라?

검찰 총기 감식 둘러싼 납득 못 할 행보로 “사기극” 비난 쏟아져

유병언 총기 알려고 하지 말라?

유병언 총기 알려고 하지 말라?

인천지방검찰청 특별수사팀이 8월 12일 ‘김엄마’의 친척집에서 발견한 총기 5정을 공개하고 있다. 검찰은 이때도 총기를 맨손으로 만져 증거 훼손 의혹을 사고 있다.

검찰이 유병언(73·사망) 전 세모그룹 회장 소유로 추정되는 총기에 대해 전문가들에게 정밀 감식을 의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 정밀 감식에선 사용 흔적 등 총기와 관련한 전반적인 내용은 파악하지 않고 진짜 총인지 장난감 총인지 여부만 확인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또한 정밀 감식 전 증거 훼손으로 총기에 묻은 지문을 확인하는 데도 실패해 실제 사용자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이는 검찰이 총기를 확보한 후 수사관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맨손으로 만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학수사와는 동떨어진 상식 이하의 수사를 거듭하면서 검찰이 총기와 관련해 ‘뭔가’를 감추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 전 회장의 비리를 수사하는 인천지방검찰청(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헌상 2차장)은 8월 9일 유 전 회장 측근인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신도 ‘김엄마’ 김명숙(59) 씨의 친척 A씨 집을 압수수색해 총기 5정을 확보했다. 1정은 4.5mm 사격선수용 공기권총, 2정은 구식 권총, 2정은 가스총이었다. 검찰은 공기권총 탄환으로 쓸 수 있는 작은 쇠구슬과 길쭉한 납덩어리 수십 개도 발견했다.

지문 감식 전 여럿이 맨손으로 만져

검찰은 이틀 뒤인 8월 11일 오전 11시 30분쯤 경찰청 산하 특수법인인 총포화약안전기술협회(총포협회)에 수사관들을 보내 총기 감식을 비공식 의뢰했다. 하지만 감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말을 듣고 총기를 수거해 되돌아갔다. 총포협회 관계자는 “하루아침에 감정 결과를 도출하긴 힘들다고 했더니 위에 보고해보겠다며 그냥 돌아갔다”면서 “20~30분 총기 외형만 본 뒤 공기총, 가스총 등 총기 종류만 간단하게 알려줬다”고 말했다.



검찰이 총기 정밀 감식을 공식 의뢰하지 않고 되돌아간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과의 공조 실패와 관련한 논란까지 일었다. 당시 유 전 회장 검거와 관련해 검찰이 경찰에 정보를 주지 않아 유 전 회장 검거에 번번이 실패하자 “검경 불협화음” “공에 눈먼 검찰”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검찰은 이런 여론을 감안해 8월 13일 경찰청을 통해 총포협회에 총기 정밀 감식을 정식 의뢰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검찰 측 행보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총포협회에 정밀 감식을 맡겼다고 했으면서도 총기는 보내지 않고 총기 사진 등 관련 서류만 보냈던 것. 법조계 안팎에서 “총기 감식을 하지 말라는 얘기”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검찰은 문제가 불거지자 그제야 “총기도 총포협회에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총기 정밀 감식 진행 과정과 결과도 의문투성이다. 총포협회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총기 사용 흔적, 총기 재질, 살상 및 파괴력, 탄환 재질과 크기 등 총기에 대한 주요 내용은 전혀 감정하지 않았다. 총포협회 관계자는 “가스총, 공기총 등 총기 종류와 실제 총인지 장난감 총인지만 판단해 검찰에 통보했다”면서 “총기 사용 여부 등은 감정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구식 권총 2정은 오래된 총이라 실탄이 나가는지 안 나가는지 자체를 모를뿐더러 장식용인지 진짜로 사용할 수 있는 총인지도 실험 결과가 없어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공기총도 실제 사용 가능 여부 등에 대해선 모른다”고 덧붙였다.

가스총 2정은 일반인도 소지할 수 있는 ‘가스 분사기’로 판명 났다. 가스총은 가스분사기와 가스 발사총 등 두 종류가 있다. 전자는 호신용으로 경찰청 허가를 받으면 일반인도 소지할 수 있다. 후자는 일반인은 소지할 수 없고 경찰, 경호원, 국가정보원 요원, 군 헌병, 법무부 교도관 등만 휴대할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총기 정밀 감식 의뢰 당시 “총포협회에 문의했더니 총기 감정에 상당 기간이 걸린다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이 밝힌 ‘상당 기간’ 총포협회에선 진짜 총인지 가짜 총인지만 판명한 뒤 검찰에 통보한 셈이다. 법조계 일각에선 총포협회가 검찰의 비협조나 무언의 압력으로 총기 실체를 밝히지 못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유병언 총기 알려고 하지 말라?

이헌상 인천지방검찰청 2차장 검사가 8월 12일 인천지방검 찰청에서 유병언 일가 비리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검찰은 총기 지문 감식 의뢰도 총기 확보 사흘 뒤에야 했다. 검찰은 “총기 5정에 대해 지문 감식 의뢰는 하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다 일부 언론에서 총기 지문 감식을 하지 않은 데 대해 문제 제기를 하려 하자 8월 12일 밤 부랴부랴 경찰청에 지문 감식을 요청했다. 경찰청은 유 전 회장 변사 사건을 총괄하는 전남경찰청에 검찰을 지원하라고 했다. 13일 오후 전남경찰청, 순천경찰서, 인천경찰청 등 과학수사계 지문 채취 요원 5명이 인천지검에 급파됐다. 이들은 8~9시간 만에 총기 5정에서 지문 2개를 힘들게 채취한 뒤 이튿날 경찰청에 보내 신원 확인을 요청했다. 경찰청은 지문 감정 요원 8명을 동원해 감정에 착수했다.

검찰이 뒤늦게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이미 여러 사람이 총기를 맨손으로 만져 증거로서의 가치가 훼손된 뒤였다. 총포협회 관계자는 “8월 11일 검찰 수사관들이 총기를 가져왔을 때 맨손으로 꺼내고 옮겼다”면서 “원래 총기를 다룰 땐 스크래치가 나지 않도록 장갑을 껴야 하는데 수사관들도 맨손으로 만지고 당시는 영문도 모른 채 보게 돼 총포협회 측 2명도 장갑을 끼지 않고 그냥 만졌다”고 말했다. 검찰은 언론 브리핑 때도 총기를 맨손으로 다뤘다.

각종 의혹에도 서둘러 결론 내려

지문 감식은 싱겁게 끝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감정 당일 기준 미달로 신원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감식 결과를 검찰에 통보했다. 감정 가능한 지문 형태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문 채취 요원은 현장에서 융선(지문의 선)이 어느 정도만 보이면 채취하는 반면, 지문 감정 요원은 신원을 특정해야 한다. 지문 위치, 각도 등 특징점이 최소 10개는 돼야 비교 분석을 통해 동일인이라고 판정할 수 있다. 10개 미만이면 판별할 수 없어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들이 총기를 맨손으로 다뤄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지문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과학수사에 정통한 경찰 관계자는 “여러 사람이 맨손으로 만졌다면 지문을 제대로 뜰 수 없어 증거로서의 가치가 없어지고, 최초로 만진 사람도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증거물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은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다른 관계자는 “중첩된 지문을 분리하는 기술이 있긴 하지만 지문을 하나하나 뚜렷하게 채취할 수 있을 때만 감별할 수 있을 뿐”이라면서 “지문이 중첩되면 채취도 힘들다”고 말했다.

총기 발견 당시 구식 권총과 사격선수용 공기권총이 문제가 됐다. 개인 소지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구식 권총은 밀수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권총에 일련번호가 찍혀 있는 게 단초가 됐다. 경찰 관계자는 “총기 일련번호가 있으면 밀수한 것이고 없으면 군 또는 경찰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총포협회 관계자도 “1989년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에 근거해 총포협회에서 검사를 시작한 뒤 선수용이나 사격장에 납품하는 것을 제외하곤 개인 용도로 수입된 건 없다”고 강조했다. 공기권총은 사격장 무기고 등에 보관돼 있고 개인 유출이 금지돼 밀반출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유 전 회장의 사인이 밝혀지지 않아 타살설이 제기되는 가운데 총기가 발견돼 유 전 회장 사망과 총기 연관성 등 온갖 의혹도 증폭됐다.

하지만 검찰은 유 전 회장 측근들의 진술만 듣고 “총기는 유 전 회장이 사용했던 것”이라고 서둘러 결론 내린 뒤 총기가 여론화되지 않는 데만 애를 썼다. 검찰의 석연찮은 행태로 총기를 둘러싼 진실은 미궁 속에 빠졌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총기 5정 가운데 1정에서라도 발사 흔적이 있다고 판명 나면 수사 흐름이 바뀔 수 있고, 지문 감식을 통해 제3자의 지문이 확인되면 수사 방향도 바뀔 수 있다”며 “부실 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간동아 2014.09.29 956호 (p36~37)

  • 김승훈 서울신문 기자 hun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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