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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박영선 잠적 소동 후폭풍

역할 끝난 친노, 금배지 아우성

2선 후퇴 이후에도 당 지도부 지속 압박…소임 아닌 세대교체 대상

  • 이종훈 정치평론가·정치학 박사 rheehoon@naver.com

역할 끝난 친노, 금배지 아우성

역할 끝난 친노, 금배지 아우성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8월 9일 청와대에서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을 비롯한 8인의 임명장 수여식을 갖고 환담장으로 이동하면서 문재인 비서실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흘간 잠적했던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당무에 복귀하던 날,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가 국회를 찾았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좌(左)희정, 우(右)광재로 불리던 이들이다. 이른바 친노(친노무현)계 원조다.

새정치연합은 현재 그들 표현대로 지리멸렬한 상태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선거에 패할 때마다 지리멸렬한 상태였고, 반성론이 꼬리를 물었으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곤 했다. 물론 혁신론도 함께 내놓았다.

2007년 대통령선거(대선)에서 패배했을 때 안 지사는 이런 글을 남겼다.

“민주 개혁 세력이라 칭해져 왔던 우리 세력이 우리 대에 이르러 사실상 사분오열, 지리멸렬의 결말을 보게 했으니 우리가 어찌 이 책임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친노라고 표현되어 온 우리는 폐족(廢族)입니다. 죄 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폐족이던 그들 야당 내 귀족



그로부터 7년 뒤, 다시 야당은 지리멸렬한 상태에 빠졌고, 그 원인이 친노계라는 데 이견이 없다. 한때 폐족이던 그들은 여전히 야당 내 귀족이다. 수적인 면에서 다수일 뿐 아니라 목소리도 가장 드세다. 무엇보다 귀족 신분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

2012년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연이은 선거 패배로 야당 지지 세력 사이에서 비판론이 거세지자 그들은 잠시 당권을 내려놓는 겸허함을 보였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다. 이런 속에서도 당권 재장악 기회를 엿봤고 지속적으로 당 지도부를 흔들었다. 복귀에 필요한 명분 쌓기다.

명분이 충분히 쌓였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뒤에서 흔들지 말고 차라리 전면에 나서라는 말이 나올 만한 환경은 만들어냈다. 절반 정도는 분위기를 익힌 셈이다. 다소 설익긴 했지만, 지금 전면에 나설 것인가 말 것인가. 친노계는 기로에 섰다.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역시 여론이다. 잇따른 선거 패배가 여전히 그들 탓이라는 시각이다. 전략적으로 2선으로 물러난 후에도 당 지도부를 지속적으로 압박해 운동권 논리로 선거에 임하게 했다는 시각 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들도 딱히 변명 거리가 없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은 물론, 7·30 재·보궐선거까지도 ‘정권심판론’으로 일관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부담은 부담일 뿐이다. 무엇보다 시간이 별로 없다. 2016년 총선에서 다시 공천받아 재당선하려면 이번에 무조건 당권을 재장악해야 한다. 솔직히 2016년 총선거 승리 여부도 중요치 않다. 일단 내 당선이, 우리의 당선이 중요하다. 그래야 2017년 대선에 우리 후보를 낼 수 있다. 제2의 친노 정부 창출 기회도 엿볼 수 있다.

친노계의 당권 재장악 시나리오는 이제 환경 조성 단계를 넘어 실행 단계로 접어들었다. 환경 조성 단계에서는 안철수를 무력화하는 의외의 성과도 거뒀다. 자신들의 공세에 안 전 대표의 실책이 더해진 덕분이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처음부터 강적이 아니었을뿐더러, 대리인 성격이 강했다.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내세울 수 있는 여러 대리인 가운데 한 명이었을 뿐이다. 비상대책위원장을 외부에서 영입해 친노계를 정리하려는 무모한 시도를 했지만, 그것도 정리 단계다.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혁신형’에서 ‘관리형’으로 머물게 하는 데도 성공했다.

역할 끝난 친노, 금배지 아우성

2009년 5월 29일 서울 경복궁 뜰에서 엄수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당시 민주당 이광재 의원, 안희정 최고위원, 이강철 전 대통령특보, 민주당 백원우 의원,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왼쪽부터) 등이 침통한 표정으로 슬픔을 달래고 있다.

관리형 비대위가 감히 혁신형 비대위 흉내를 내지 않는 한, 그들은 조만간 전당대회에서 ‘우리 후보’를 대표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대표가 문재인 의원일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아 보이지만, 다른 대안도 함께 고려 중일 것이다. 문 의원의 엉거주춤한 행보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도, 지금도 문 의원의 그런 행보는 권력 의지를 의심케 한다.

바로 그 틈을 노리는 것이 안 지사다. 특히 안 지사가 문 의원의 대안으로 자주 거론되는데, 당장 현직인 그를 당대표로 앉힐 수 없다는 점이 친노계로선 안타깝다. 역시 그는 당권도 대권도 차차기다. 안 지사 외에도 이미 대표를 거쳤지만 정동영, 한명숙, 문희상, 그리고 대표를 거치지 않은 천정배, 유인태, 원혜영도 틈을 노리긴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친노계의 대안은 의외로 풍부하다.

친노계에게 반문한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합니까.’ 안 지사가 폐족임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야당을 주도하고 또다시 당권을 쥐는 것이 온당한가라는 질문이다. 국민 여론이 어떤지, 특히 지지 세력 내에서 여론이 어떤지는 잘 알 것이다. 부인하고 싶지만 부인할 수 없는 선거 결과도 잘 알 것이다. 이것이 국민 생각이자 그들의 성적표다.

친노계에 대한 판정은 이미 2007년에 내려졌지만 탁월한 정치 투쟁 능력 덕에 생존에 성공했다. 그 점은 높이 살 만하다. 다만 아무리 좋은 쟁기도 잘못 쓰면 흉기일 뿐이다. 당을 분열하고 지지 세력을 분란에 휩싸이게 하는 흉기이자 습관적 선거 패배를 부르는 흉기 말이다.

그런 점에서 친노계 측에 차기 당권 포기를 권한다. 2016년 총선 출마를 포기하라는 뜻이다. 이제 친노계의 역사적 소임은 끝났다. 제2의 친노 정부도 필요치 않다. 아직 우리의 소임이 남았다고 부르짖고 싶을 것이다. 개인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 그것은 국민 판단에 맡길 문제다. 안 지사처럼 친노를 파하고 독자 행보를 걷다 보면 국민이 다시 기회를 줄 것이다.

친노 깃발 들고 재선에 몰입

친노계의 역사적 소임이 끝났다고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목적과 수단의 전도 현상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민주화를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의 완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친노계는 사명감보다 금배지에 더 목을 매고 있을 뿐이다. 사명감을 상실한 이들에게 소임을 맡길 수는 없다. 그래서 그들은 세대교체 대상이다.

박영선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복귀하던 날 국회를 찾은 원조 친노 이광재 전 지사는 “중간층이 어떻게 생각하고 얼마만큼 합리적이며 구체적인 정책이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라는 말을 남겼다. 원조 친노가 당 밖에서 변화를 꾀하며 친노 색깔을 지워가는 동안, 당내 주변의 친노는 친노 깃발에 기대 재선에 몰입하는 역설적 현상!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야당 침몰, 여당에게 약일까 독일까

민생법안 중심 국정 주도권…일방 독주 땐 부담될 수도


역할 끝난 친노, 금배지 아우성
새정치민주연합의 좌초는 여당에게 약(藥)이 될까, 아니면 정국운영 책임을 떠안으면서 독(毒)이 될까.

4월 세월호 참사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전반에 경고등이 켜졌고, 여야 대치 국면에서 대통령의 부정평가는 더욱 높아졌지만, 새정치연합의 자중지란(自中之亂)은 오히려 새누리당 측에 기회를 줬다. 새누리당이 민생법안을 중심으로 국정운영 주도권을 잡을 수 있게 해줬고, 대통령 지지율은 다시 50%를 웃돌고 있다. 새누리당 지지율은 새정치연합의 2배에 달한다(그래프1 참조). 앞으로 상당 기간 선거가 없으므로 야당은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는 계기가 없다. 2015년 초로 예정된 전당대회 역시 답보 상태인 정당 지지율과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장의 좌초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20년 전 정국이 지금과 닮았다는 점. 박근혜 정부와 김영삼(YS)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보수 대결집을 통한 집권과 집권 후 국가 전체를 바로잡겠다는 국정 방향이 닮은꼴이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에 버금가는, 1994년 10월 서울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국민을 놀라게 했다. 당시 사고 원인은 부실공사로 밝혀졌고, 안전불감증에 대해 많은 국민이 분노했다. 당시 이영덕 국무총리가 사퇴했고, 이원종 서울시장은 경질됐다. YS는 신속하게 조치를 취했지만 민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 국면에서 이기택 총재가 이끄는 야당인 민주당이 당내 혁신을 통해 여당인 민주자유당을 압도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총재 개인의 인기만 올라갔을 뿐, 야당의 근본적인 혁신을 통한 정당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그래프2 참조).

오히려 당내 중심 세력인 동교동계와 갈등을 빚으면서 분당 사태를 맞았고, 1996년 4월 총선에서 제1 야당 자리를 새정치국민회의에 넘겨주고 만다. 당시 김대중 총재가 주도하던 새정치국민회의 역시 수도권에서 민주당과 표가 갈리면서 79석을 얻는 데 그쳤다(신한국당 139석, 자유민주연합 50석, 통합민주당 15석). 새정치연합 역시 당 구심점이 없다는 점, 당의 간판과 중심 세력(친노무현계)이 갈등을 빚는다는 점, 야권의 어설픈 대응으로 국가 위기 국면에서 여권이 기사회생했다는 점에서 20년 전과 닮은꼴이다.

반대로 보수 정당 민자당은 1995년 말 ‘새로운 한국’이라는 의미의 신한국당으로 변신에 성공했고, 총선에서도 승리했다. 20년 전 한국 정치와 현재를 비교해봐도 야당의 침몰은 여권에 약이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대권 쟁취, 궁극적인 목표가 집권이라면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현재 새정치연합 지지율은 10%대로 떨어질 공산이 크고, 당의 ‘간판스타’였던 안철수, 문재인 두 의원의 정치적 입지도 예전 같지 못하다. 안 의원은 올해 초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부동의 1위였지만, ‘기초선거 무공천’이라는 새 정치 행보가 당내 반발에 부딪혀 좌초하다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를 거치면서 침몰했다. 1996년 총선 직후 야권 모습과 닮아 있다.

당시 신한국당은 야권 분열로 정치 혁신이나 국정운영 잘못에 대한 반성 없이 한 해를 보냈고, 이 과정에서 자유민주연합 의원들을 대거 빼갔으며, 당내 유력 인사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여당 대선후보가 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군웅할거 시대’였다. YS의 일방적인 국정운영은 결국 외환위기의 불씨가 됐다.

이때 밑바닥에서 철저하게 개혁 의지를 드러낸 사람이 김대중 총재였다. 1996년 신한국당의 실책이 야권에 약이 되면서 새정치국민회의 지지율은 신한국당에 육박했다(그래프3 참조).

만약 지금의 새누리당이 야당 침몰을 즐기면서 일방 독주를 할 경우 1996년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의 통치 영향력이 강한 상황에서 일방 독주 현상이 지속된다면 더욱 그렇다. 20년 전 한국 현대사는 여당에게는 보수 혁신을, 야당에게는 당내 혁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물론 최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혁신위원장으로 내정한 새누리당이 혁신의 고삐를 죈다면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 수도 있다. 세월호 특별법으로 촉발한 새정치연합의 내홍이 단기적으로는 새누리당에게 약이 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jcbae@randr.co.kr




주간동아 955호 (p20~21)

이종훈 정치평론가·정치학 박사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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