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3

2014.09.01

얼음물 샤워…뜨거운 기부 릴레이

‘아이스 버킷 챌린지’ 한국에도 상륙, 각계각층으로 확산

  • 인지현 문화일보 기자 loveofall@munhwa.com

    입력2014-09-01 13: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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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음물 샤워…뜨거운 기부 릴레이

    8월 28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두산 칸투, 니퍼트, 탤런트 류승수, 홍성흔이 우천 세리머니로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하고 있다.

    올여름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는 ‘바이러스’가 등장해 주목받았다. 바이러스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확산한다는 의미에서 AP통신 등이 “역사상 가장 전염성이 강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자선 캠페인”이라고 평가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가 그것.

    미국에서 처음 시작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이미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팝스타 레이디 가가에 이르기까지 미국 유명 인사들을 매료했다. “자기과시용 퍼포먼스다” “자원 낭비다” 등 만만치 않은 비판 속에서도 미국을 넘어 중국, 인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전 세계로 확산 중이다. 진짜 바이러스처럼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가며 진화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전 세계적 열풍의 한가운데에 있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루게릭병이라고 부르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ALS)에 대한 치료법 연구와 환자 지원을 위해 마련한 캠페인으로, 기존 자선활동에 비해 놀이 요소가 강조된 점이 특징이다. 참가자는 24시간 내에 얼음물을 뒤집어쓴 사진 혹은 영상을 SNS에 올리거나 100달러(약 10만 원)를 미국ALS협회 등 관련 단체에 기부하면 된다. 얼음물을 선택한 참가자는 뒤이어 도전할 참가자 3명을 지목한다. 누구를 지목할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다. 미국 팝계의 악동 저스틴 비버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지목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재미있는 기부’ 이색적인 참가자

    누가 언제 처음으로 이 캠페인을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주장이 엇갈린다. 다만 아이스 버킷 챌린지라는 이름이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6월 30일 미국 골프채널의 아침방송 ‘모닝 드라이브’에서 진행자들이 얼음물을 뒤집어쓰면서부터다. 당시 이들은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SNS에서 유행하는 캠페인이라고 소개하고 얼음물을 뒤집어쓴 뒤 각자 원하는 단체에 기부했다. 이후 우연히 캠페인을 접한 루게릭병 환자 가족과 친구들이 이를 주변에 알리기 시작하면서 루게릭병 환자에게 초점을 맞춘 캠페인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보스턴대 야구선수로 활동하다 루게릭병을 진단받고 투병생활을 해온 피트 프레이츠와 친구들이 공개한 챌린지 영상이 SNS상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올여름 본격적인 인기에 불을 지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배우 톰 크루즈 등 미국 유명 인사가 캠페인에 동참하면서 열풍은 점차 확산됐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힘은 숫자로도 증명된다. 미국ALS협회에 따르면 7월 29일부터 8월 25일까지 모금한 돈은 797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모인 250만 달러에 비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32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특히 올해에는 새로운 기부자 170만 명이 미국ALS협회에 손을 내밀기도 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6월 1일부터 8월 13일까지 두 달가량 페이스북에서 공유된 아이스 버킷 챌린지 관련 영상은 120만 개, 7월 29일부터 8월 17일까지 트위터에서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언급된 횟수는 220만 번이나 된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향후 미국 자선재단의 모금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예측도 이어진다. 미국에서는 현재 3만여 명이 루게릭병을 앓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자기 과시용 퍼포먼스나 홍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일었지만 이 역시 캠페인의 인기를 반증하는 현상일 뿐이다.

    미국을 넘어 유럽, 중국, 인도 등 세계 각지에서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연못 뛰어들기 같은 이색적인 참가 방법이 경쟁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물론, 각 지역 환경에 맞는 맞춤형 캠페인도 등장하고 있다. 최근 인도에서는 바구니에 물 대신 쌀을 담아 굶주린 이들에게 선물하는 ‘라이스 버킷 챌린지(Rice Bucket Challenge)’가 확산 중이다. 식수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인도에서 주식으로 흔히 이용하는 쌀을 이용해 빈곤층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이 캠페인은 인도 TV에 등장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한편 팔레스타인에서는 돌무더기와 흙먼지를 이용한 ‘러블 버킷 챌린지(Rubble Bucket Challenge)’가 등장했다. 한 팔레스타인 언론인이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의 참상을 알리려고 얼음물 대신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를 자기 머리 위에 쏟아붓는 영상을 인터넷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 올린 게 계기였다. 7월 8일부터 시작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에서는 2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도로는 물론 아파트와 쇼핑센터, 공원이 무너져 내려 시민의 생활 터전이 파괴된 상태다.

    국내의 첫 번째 아이스 버킷 챌린지 주자는 미국인 친구로부터 도전자로 지목받은 가수 팀으로 알려졌다. 이후 지드래곤, 유재석, 최민식 등 연예인 참가자가 속속 등장했으며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야구선수 류현진 등 스포츠 스타도 인증샷을 올려 이목을 끌었다. 재계 인사 중에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두산그룹 회장이 처음으로 캠페인에 참여했고, 정치권에서는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을 시작으로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 등 중견급 정치인이 잇달아 도전 의사를 밝혔다.

    국내 루게릭병 관심 제고의 기회

    얼음물 샤워…뜨거운 기부 릴레이

    루게릭병으로 투병하고 있는 박승일 전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 코치가 8월 19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 자택에서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동참했다.

    이 같은 열풍에 관련 국내 단체들은 루게릭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기회라며 반기고 있다. 한국ALS협회 조광희 사무국장은 “루게릭병에 대해 알려고 협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사람이 매일 1만 명이 넘는다”며 쏟아지는 관심에 감사하다고 말했고, 한국ALS협회 김종일 재무이사는 “그동안 협회 기부자가 한 해 100명 이하였지만 올해에는 10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내 루게릭병 환자는 2500여 명이다.

    미국에서 촉발한 열풍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국내 루게릭병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 관련 협회의 재원, 국가적 지원 시스템 등이 선진국에 비해 열악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미국보다 더 진지하게 캠페인을 발전시킬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승일희망재단 박성자 상임이사는 “이번 기회를 통해 루게릭병 환자를 위한 전문병원 건립 등 실질적인 목표가 달성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루게릭병에만 쏟아지는 관심 범위를 각종 희귀병으로 넓혀 고통 받는 환자들의 의료 현실을 조명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최근 칼럼을 통해 루게릭병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이보다 발병률이 높은 여러 질병이 존재한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아이스 버킷 챌린지 열풍으로 기타 희귀병 협회에 돌아가는 기부 자원이 분산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김종일 재무이사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 같은 자선 활동의 바람이 확대돼 다른 사회적 약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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