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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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 지키려고 정치권에 칼날 겨눴나?

검찰 정피아 수사 마무리 분위기…현역 의원 비리 첩보 많아 언제든 재개 가능성

  • 최우열 동아일보 기자 dnsp@donga.com

    입력2014-08-29 17: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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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장 지키려고 정치권에 칼날 겨눴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검거 실패를 두고 한때 퇴진 여론이 일었던 김진태 검찰총장.

    “검찰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을 찾아놓고도 그의 검거를 위해 시간을 낭비한 것은 분명히 김진태 검찰총장에 대한 경질 사안이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김 전 총장을 경질하지 않은 이유는 8월 대사정 정국 때문이다.”(7월 말 여권 핵심 관계자)

    7월 말부터 ‘8월 대사정설’의 연기는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치권에선 “이성한 경찰청장은 유병언 검거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검찰은 단순히 변사 지휘를 했을 뿐이기 때문에 김 총장이 책임을 지는 건 어렵지 않느냐”는 논리의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이런 ‘방어막’ 플레이가 이어지며 대사정설은 계속됐다.

    아니나 다를까, 8월이 시작되자마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별수사1부(부장 김후곤)의 ‘철피아’(철도+마피아) 비리 수사에서 새누리당 조현룡(69) 의원이 1억6000만 원 금품을 수수한 혐의가 포착되면서 대사정설은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도망 다니는 국회의원들

    기존에 진행하던 인천지방검찰청 해운비리 특별수사팀(팀장 송인택 1차장) 내부에서 ‘불구속 수사’ 의견이 대세였던 새누리당 박상은(65) 의원도 구속 수사로 돌아섰고,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2부(부장 임관혁)에서도 서울종합예술직업학교(SAC) 입법 로비 의혹 관련 비리로 3선 이상 야당 중진 4명이 무더기로 걸려들었다. 대사정 정국은 8월 내내 계속됐고 그 결과는 ‘불체포 특권’을 둘러싼 검찰과 정치권의 치열한 기 싸움으로 이어졌다.



    국회 회기 중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이 적용되는 7월 임시국회 회기가 종료된 8월 19일 검찰은 비리 혐의를 받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적으로 일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이날 회기 종료를 3시간 앞둔 저녁 9시쯤 SAC로부터 로비를 받고 입법을 해준 혐의(뇌물수수)로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60), 김재윤(49), 신학용 의원(62)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해운 분야의 민관 유착비리를 수사 중인 인천지검 해운비리특별수사팀도 기업체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는 등 11가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박상은 의원에게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때마침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선 철도 납품업체 AVT로부터 5500만 원을 받았다는 새누리당 송광호(72) 의원의 혐의도 터져 나왔다. 조현룡 의원을 포함해 여당 의원 3명, 야당 의원 3명이 비리 혐의로 구속 위기에 처한 것이다.

    사실 현역 의원들을 잡아들이기 위한 검찰의 이런 전략은 정치권이 자초한 일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대치 때문에 8월 임시국회 일정조차 정하지 못했고, 이날 종료된 7월 임시국회와 새로 시작하는 8월 임시국회 사이에 발생한 회기 공백 때문에 짧은 기간이나마 ‘회기 중 불체포 특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됐다. 검찰은 이 틈을 타 ‘현역 의원 체포작전’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의원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새정치연합은 사실상의 ‘방탄국회’인 8월 19일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밤 11시 44분 국회 사무처에 제출했고, 국회는 11시 59분 임시국회 소집 공고를 냈다. 소집 전 공고기간이 공고 시작 일을 포함해 사흘이어서 불체포 특권이 적용되지 않는 기간은 21일 밤 12시까지로 단 48시간. 이미 철도 비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간 조현룡 의원에 대해선 48시간 동안 국회 동의 절차가 필요 없게 돼 법원은 19일 영장이 청구된 4명과 함께 영장 심사 기일을 잡았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의원 5명보다 수사 진도가 더딘 송광호 의원에 대해선 8월 임시국회 회기 시작 이후 체포동의안 표결을 거쳐 구속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법원은 곧바로 비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여야 국회의원 5명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 실질 심사) 기일을 8월 21일로 지정했다고 20일 밝혔다. 현역 국회의원에게 불체포 특권이 적용되는 8월 임시국회가 22일 시작되는 만큼 그 전날로 한꺼번에 심사 기일을 잡은 것이다. 이날 국회에선 “방탄국회를 소집한 마당에 야당 의원들은 법원에 출석하지 않을 것이다” “하루만 숨어 있으면 된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잠적한 의원들, 강제 구인 나선 검찰

    총장 지키려고 정치권에 칼날 겨눴나?

    법원에 구속된 새누리당 조현룡, 박상은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김재윤 의원(왼쪽부터).

    우려했던 일은 현실이 됐다. 법원의 영장 심사가 잡혔던 8월 21일 여야 의원 5명은 ‘국회 회기 중 불체포 특권’을 악용해 법원의 영장 심사에 불응했다. 선거 때마다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던 정치권이 강제구인에 나선 검찰과 하루 종일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벌이는 촌극도 벌어졌다.

    8월 21일 오전 일찍부터 의원들은 일제히 법원에 심사 기일 연기를 요청했다. 이튿날부터 8월 국회가 시작되기 때문에 영장 심사를 연기해달라는 것은 구속 자체를 피하겠다는 의미였다. 검찰은 의원들이 사실상 도주했다고 판단했다. 조현룡 의원은 20일 사용하던 차명 휴대전화를 갑자기 꺼놓고 사라졌고 신계륜, 김재윤, 박상은 의원도 연락이 끊겼다. 검찰이 자신의 동선을 파악하는 것을 막으려고 휴대전화를 의원회관에 두고 나간 의원이 있는가 하면, 운전기사가 의원의 휴대전화를 들고 차로 계속 이동한 경우도 있었다.

    검찰은 전날 저녁부터 해당 의원들의 동선 파악에 나섰으며, 8월 21일 오전 불출석 의사를 확인한 직후 이들의 자택과 친인척 집,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등으로 검사 3명과 수사관 40명을 보내 대대적인 강제구인에 나섰다. 오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있던 신학용 의원은 검찰이 들이닥치자 변호인과 협의 후 자진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처음으로 밝혔고 이후 야당 의원 3명도 잇따라 자진 출석을 하기로 했다.

    야당이 소집한 방탄국회를 앞두고 여당 의원들만 도주한 상황이 되자 새누리당은 혼비백산했다. 당 차원에서 박상은, 조현룡 의원의 소재 파악에 나섰고, 얼마 뒤 두 의원도 검찰에 자진 출석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법원은 조현룡, 김재윤, 박상은 의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지만 신계륜, 신학용 의원에 대한 영장은 기각했다.

    현재까지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국회의원은 6명이지만, 첩보를 확인 중인 인사까지 포함하면 수사 대상에 오른 전·현직 의원은 1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은 지난달부터 검찰과 정치권 안팎에서 철피아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소문이 나돌다가 본격적인 수사 대상이 되자 정치권이 경악했다. 소문에는 전·현직 여당 실세 또는 핵심 의원의 이름까지 거론됐기 때문에 대사정 정국이 크게 확대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때마침 이전 정부에서 여당 대표를 지낸 전직 의원 A씨는 권 모 전 부대변인의 소개로 철도 납품업체 AVT로부터 수천만 원의 고문료를 받아온 사실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고문료를 받은 시기가 정계에서 물러난 뒤고, 청탁이나 알선 등에 직접 개입한 흔적이 없어 일단 수사를 중단했다.

    검찰의 기류는 일단 정치권을 겨냥한 사정은 일단 마무리한다는 것. 검찰 핵심 관계자는 “여당 실세 B의원이나 C광역단체장 등 이름은 파다하게 나오지만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에 대한 별다른 단서가 나온 게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유병언 사건으로 ‘목이 떨어졌지만 갖다 붙여놓은’ 김진태 검찰총장에 대한 사퇴론이 8월 대사정 정국으로 쑥 들어가버린 소기의 성과도 다 거둔 상태. 정치권 관계자는 “김 총장 사퇴론이 불거져 나오는 고비마다 의원 한두 명의 비리가 툭툭 언론에 보도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면서 8월 대사정 의도를 의심했다.

    하지만 철피아 수사에서 아직 몇몇 납품업체에 대한 수사가 끝나지 않았고, 일선 지검과 지청이 갖고 있는 현역 의원들에 대한 비리 첩보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정치권을 향한 검찰 칼날이 언제 어떻게 누구를 자를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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