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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발질하다, 또 자살골

축구협회, 감독 모셔오기 협상 카드 공개로 아마추어 행정력 드러나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헛발질하다, 또 자살골

헛발질하다, 또 자살골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8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차기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로 꼽혔던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감독과의 협상 결렬과 관련해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아마추어 행정력’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6월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무너진 가운데 한국 축구가 여전히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축구협회)의 무능 탓이다.

축구협회는 월드컵 참패 이후 들끓는 여론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한 채 타이밍을 놓쳐 한국 축구의 큰 자산이라 할 수 있는 홍명보 전 감독을 잃었다. 월드컵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홍 전 감독은 당초 일찌감치 사퇴 결심을 했지만, 축구협회 수뇌부는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만류했다. 어렵게 ‘계속하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홍 전 감독은 월드컵 참패 후 술자리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공개된 뒤 결국 심리적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사퇴 형식을 밟아 대표팀을 떠났다.

얻은 것 하나 없는 ‘중간 브리핑’

정몽규 축구협회 회장은 홍 전 감독이 자진사퇴를 발표한 자리에서 머리를 숙이며 대국민성명을 발표했지만 뒤늦은 사과에 여론은 냉랭했다. 홍 전 감독이 대표팀을 떠나는 과정에서 일처리가 매끄럽지 못했던 축구협회는 홍 전 감독의 빈자리를 메울 새 감독 선임 과정에서 또다시 행정 난맥상을 노출하며 비난을 자초했다.

이용수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7월 31일 △월드컵 대륙별 예선 경험 △월드컵 16강 이상 성적 △클럽팀 지도자 경력 △지도자 교육 및 유소년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능력 등 새 감독이 갖춰야 할 조건을 나열한 뒤 “기술위원회 논의를 거쳐 외국인 감독 3명으로 후보를 압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홍 전 감독이 ‘엔트으리’ 논란을 일으키며 선수 구성 단계부터 오해를 샀다는 점에서 외국인 감독 선임으로 1차 방향을 잡은 것은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결정이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이후 축구협회의 헛발질이 다시 나왔다. 이 위원장은 8월 7일 갑자기 베르트 판마르베이크(62·네덜란드) 감독과의 협상 과정을 중간 브리핑했다. 판마르베이크 감독과의 협상 사실이 한 언론에 의해 공개되자 ‘기다렸다는 듯’ 직접 기자회견을 자청해 순진하게(?) 사실을 인정했다. 계약 협상이 완료된 상태가 아니라, 한창 협상 중이란 사실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파격이었다.

이 위원장은 당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직접 건너가 판마르베이크 감독과 한국 국가대표팀 사령탑 부임 문제를 놓고 논의했다. 연봉과 여러 조건에 대해 구체적인 얘기를 나눴다”며 “판마르베이크 감독이 며칠 더 생각해보고 답을 주겠다고 했다. 앞으로 일주일 내 답이 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판마르베이크 감독이 한국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겠다고 결심이 서면 계약 조건에 대한 세부 조율이 남아 있지만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도 덧붙이며 중간 브리핑을 ‘공개 구애’로 만들어버렸다. “이렇게 중간에 브리핑을 한다는 것을 판마르베이크 감독은 모르고 있다”고 밝혀 협상 파트너의 사전 동의 없이 공개적으로 협상 내용을 소개하는 결례를 범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중간 브리핑을 통해 “나머지 2명의 다른 후보와는 접촉조차 하지 않았다”며 판마르베이크 감독의 영입에 ‘올인’한 모양새를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일주일 내 (긍정적) 답이 올 것”이란 그의 기대는 완전히 어긋났다. 정확히 열흘이 흐른 뒤인 8월 17일 축구협회는 ‘협상 결렬’을 공식 발표했다. 양측 협상이 틀어진 것은 세금 문제를 포함한 연봉 및 계약 조건과 ‘주 활동 무대’에 대한 이견 때문이었다.

헛발질하다, 또 자살골

네덜란드 언론이 8월 6일(한국시간) 한국 대한축구협회와 협상에 돌입했다고 보도한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감독.

새 후보군과 동시다발적 협상

계약 협상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든 깨질 수 있다. 최종 도장을 찍을 때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협상이자 계약이다. 중간 브리핑 때 “어느 정도 교감이 끝났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계약 성사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봐달라”고 했던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의 안일한 현실 인식은 축구협회 행정력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셈이다.

중간 브리핑은 결과적으로 향후 협상 과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공식 발표를 통해 축구협회는 판마르베이크 감독을 최우선으로 영입하려 했다는 사실은 물론, 감독 연봉(20억 원+α)을 비롯한 기본 협상 조건까지 상당 부분 공개했다. 이는 추후 다른 후보와의 협상에서 부메랑으로 돌아올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스스로 공개했던 우선협상 대상자와의 계약에 실패한 만큼 향후 접촉할 2, 3순위 후보가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누가 됐든 차기 국가대표팀 사령탑은 끝까지 ‘최적임자’가 아닌, ‘2순위 감독’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계약 조건을 상당 부분 공개하면서 협상 주도권을 일찌감치 상대방에게 넘겨주게 됐다는 사실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내년 1월 호주에서 열릴 2015 아시안컵 전까진 새 사령탑을 선임해야 하는 상황에서 판마르베이크 감독과의 협상 결렬로 시간만 지체한 꼴이 됐다. 향후 협상에서 초조함이라는 달갑지 않은 손님까지 맞이하게 된 셈이다.

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새 감독과의 협상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키로 했다. 감독 후보 2~3명과 동시에 접촉하면서 영입 작업을 할 예정이다. 7월 31일 밝혔던 3명 중 판마르베이크 감독을 제외한 2명의 후보 명단에도 변화가 있다. 판마르베이크 감독과 협상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감독 후보로 꼽힌 인물 가운데 다른 대표팀이나 클럽 팀과 계약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축구계에서는 축구협회가 새롭게 접촉할 후보군으로 2010 남아공월드컵 당시 가나를 8강으로 이끈 밀로반 라예바치(60·세르비아) 감독,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그리스를 16강에 올린 페르난두 산투스(60·포르투갈) 감독을 꼽는다. 한때 한국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핌 베어벡(58·네덜란드) 감독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축구협회는 당장 9월 5일(베네수엘라/ 부천)과 8일(우루과이/ 고양)로 다가온 A매치는 국내파 코치진(신태용, 박건하, 김봉수) 체제로 치를 예정이다. 연달아 헛발질을 해대며 팬들을 실망시키는 축구협회가 이번에는 제대로 된 슛을 날릴 수 있을까. “최대한 빨리 새 사령탑을 영입하겠다”는 이 위원장의 바람처럼 축구협회가 ‘제대로 된 사령탑’을 제대로 ‘모셔올지’ 주목된다.



주간동아 952호 (p60~61)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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