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2

2014.08.25

“전기자극으로 치매 치료 새로운 길 열린다”

와이브레인 윤경식 대표&김승연 최고운영책임자 “뇌공학 분야 시장성 무궁무진”

  • 정호재 채널A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14-08-25 1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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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자극으로 치매 치료 새로운 길 열린다”

    와이브레인 윤경식 대표(오른쪽)와 김승연 최고운영책임자.

    초기 벤처기업을 뜻하는 스타트업은 적은 자본과 젊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사업 모델이다. 개인용 컴퓨터(PC) 기반의 웹(Web)보다 모바일 앱(App)이 중심인 것도 특징이다. 혹자는 스타트업을 3가지로 구분한다.

    첫 번째는 ‘앱 경제’ 모델이다. 모바일 응용프로그램인 앱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 간 정보 공유와 거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빈 방을 공유하는 에어비앤비(airbnb.com), 개인 자동차를 택시처럼 쓰는 우버(uber.com),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요기요(yogiyo.co.kr) 등이 대표적인 앱 경제 모델이다.

    두 번째는 우리에게 익숙한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모델이다. 카카오톡, 밴드 등 모바일 메신저와 애니팡 같은 모바일 게임이 대표적이다. 24시간 휴대할 수 있는 스마트폰은 소통 틀을 바꿔놓았다. 이렇게 늘어난 콘텐츠 소비 덕에 다양한 미디어 스타트업이 탄생할 수 있게 됐다.

    세 번째는 ‘기술 스타트업’이다. 저렴해진 컴퓨팅 기술과 3D(3차원) 프린팅 제조기술 등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정보통신기술(ICT)과 로봇 제품을 선보이는 분야다. 이 분야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가장 취약하다. 기술 인력과 자본이 미국 실리콘밸리 같은 선진국 수준에 크게 뒤처지기 때문이다.

    ‘뇌’ 사업 분야의 스타트업



    최근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 컴퓨팅 분야에서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이 등장해 벤처 업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주인공은 KAIST(한국과학기술원)와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출신인 윤경식(29) 대표가 이끄는 와이브레인(ybrain.com).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뇌’를 사업 분야로 다루는 스타트업이다. 그는 10여 명의 KAIST 동료, 선후배와 힘을 합쳐 수술이나 약물이 아닌 전기자극을 통해 치매를 치료하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첫 상용제품인 와이밴드는 다음 달 출시를 앞뒀다.

    머리에 밴드처럼 쓰는 간단한 기계가 고치기 힘든 치매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조금은 당혹스럽게 느껴진다. 신기술이면서도 신약 제조와 무관치 않은 분야인 셈인데, 신약 개발은 스타트업 수준의 작은 기업에서 다루기 어려운 분야가 아니던가. 윤 대표는 “창업 이후 방대한 자료를 들고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를 찾아 수없이 많은 토론을 하고 임상실험 결과를 분석해왔다”면서 “이제 식약처는 물론 치매 전문 병원에서도 서로 임상실험을 하고 싶다고 제의를 해올 정도”라고 말했다. 와이브레인은 삼성서울병원과 손잡고 가벼운 인지장애가 있는 치매 환자 200명에게 임상실험을 진행 중이다. 실험 결과는 연말께 나온다.

    한성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2002년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에 입학,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윤 대표는 25세에 동대학원에서 ‘감정과 이성의 상호작용의 신경메커니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런 이력을 소개하면 “KAIST에 뇌공학과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는 2002년 국내 최초로 개설된 바이오및뇌공학과 1기 입학생이자 졸업생이다. 2001년 한국 벤처 업계 대부인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이 전 재산을 KAIST에 기부하면서 “앞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릴 텐데 우리도 바이오와 정보가 결합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야 한다”며 지정 기부를 해 탄생한 학과다. 창과 당시 교수진 반대가 많았고, 심지어 학생들도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KAIST 생물학부에 입학한 그는 미래 가치가 높은 영역인 뇌 연구에 사로잡혔고, 1년 후 전공을 결정할 때 주저 없이 뇌공학을 골랐다. 이후 석·박사 과정을 밟고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도 오직 한 우물만 팠다.

    “쉽게 얘기해 뇌에서 나오는 파동의 의미를 찾고 질병에 걸린 뇌를 어떻게 치료하는지에 대한 연구입니다. 전기자극을 통해 뇌의 연결성을 강화할 수 있는지가 연구 인생에서 화두입니다.”

    윤 대표는 피부 바깥에서 전기를 쏴 뇌의 깊숙한 부분을 적확히 자극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해 ‘네이처’지에도 실렸다. 그는 이 기술을 치매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고 보고 KAIST 출신 동료를 모아 지난해 2월 와이브레인을 창업했으며, 뇌 기능 측정과 조절이 동시에 가능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개발했다. 현재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매 치료를 위한 임상실험을 진행 중인데, 이는 웨어러블 의료기기를 활용한 세계 최초의 알츠하이머병 원격 치료 사례로 꼽힌다.

    “전기자극으로 치매 치료 새로운 길 열린다”
    치매 치료는 뇌과학의 최첨단 분야

    와이브레인은 신경과학 분야 박사 4명, 석사 2명을 비롯해 멤버 10여 명으로 이뤄져 있다. 이기원 최고기술경영자(CTO)는 KAIST 신소재공학과 출신으로 삼성 모바일에서 칩(chip) 디자인을 한 경력이 있고, KAIST에서 신경과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김승연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구글, 인모비 등 글로벌 인터넷 기업에서 활동한 경영자 출신으로 모바일 비즈니스 분야에 대한 경험이 많다.

    치매 환자 75%는 이른바 알츠하이머형 치매로, 아직까지 이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았다. 매년 50만 명을 고통스럽게 하는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려고 세계적으로 매년 200조 원 가까운 비용을 쓴다. 와이브레인이 내놓은 와이밴드가 이 시장을 어느 정도 점유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 5년간 모바일이 주요 화두였다면, 앞으로 5년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웨어러블 컴퓨팅이 화두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뇌공학 분야의 시장성은 무궁무진하죠.”

    김승연 COO의 말이다. 치매 치료는 뇌과학의 최첨단 분야이자 다양한 임상실험 데이터가 결합해야 하는 빅데이터 산업이다. 와이브레인이 와이밴드라는 소비재 산업에 나선 것도 바로 이 때문. 그는 “단순히 의학 기술을 파는 기업이 아닌, 수많은 사용자의 뇌파 데이터를 활용해 치매 치료 이상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비전을 밝혔다.

    취재를 마칠 때쯤 왜 실리콘밸리가 아닌 국내에서 이 시장에 뛰어들었는지 궁금해졌다. 이들은 “오히려 한국에서 첨단 산업에 도전하기에 유리한 점이 있다”고 답했다. 한국 스타트업 미래도 밝게 전망했다. 국내 스타트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앱이나 게임 같은 소프트한 산업보다 핵심 기술을 활용한 제조 산업으로 경쟁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한국의 의료 산업은 세계적 수준입니다. 특히 최근 의료계에서 ICT를 적극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요. 제조업 수준이나 의료 행정가들의 사고도 빠르게 열리고 있고요. 가까운 시일 내 와이브레인을 비롯해 다양한 성공 사례가 국내에서 나오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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