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2

2014.08.25

난, 큰 혹 2개 달린 여자다

가슴 큰 여성 ‘글래머 스트레스’…브래지어 구매부터 어깨 통증까지 말 못 할 고민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4-08-25 10: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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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델은 D컵 없나요?” “죄송합니다. 그 모델은 C컵까지밖에 안 나와요.”

    솔직히 여자에게 큰 가슴은 DNA의 축복인 줄 알았다. 이성과의 만남까지 굳이 가지 않아도, 동성 무리에서도 소위 ‘글래머’는 경탄의 대상이 되지 않는가. 그러나 이번에 취재하면서 만난 ‘글래머’들은 “남모를 고민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직장인 이지형(31) 씨의 브래지어 사이즈는 75E. 흔히 말하는 ‘글래머러스’ 몸매다. “고등학생 때는 가슴을 가리려고 교복 위에 늘 겉옷을 걸쳤다”는 그는 “요즘에도 상의는 무조건 한 치수 크게 입는다”고 했다. 평소에도 타이트한 옷보다 루스한 셔츠를 즐겨 입는다.

    “제 가슴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어릴 때 속옷 매장에 맞는 사이즈가 없는 걸 보고 알았어요. 국내에서는 맞는 속옷을 찾기 힘들어 친척이나 부모님이 외국에 나갈 때면 빅사이즈 속옷을 부탁하곤 했죠. 속옷 브랜드에서는 대부분 예쁜 속옷이 C컵까지밖에 안 나오거든요. 제 속옷 역시 살구색 아니면 검은색이에요.”

    무조건 한 치수 크게 입는 옷



    실제로 D컵 이상 제품을 구하기 어려운지 백화점과 대형마트 속옷 매장 5군데를 돌아봤다. F컵까지 나오는 몇몇 제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C컵까지밖에 나오지 않았다. 특히 ‘이거 예쁜데’라는 생각이 드는 제품은 어김없이 큰 사이즈가 없었다. 온라인 쇼핑몰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나마 구매 가능한 D~F컵 제품은 디자인이 다소 촌스럽고 트렌드에 뒤떨어졌다.

    가슴이 큰 여성의 공통점은 허리와 어깨에 통증이 있다는 것. 가슴이 처지는 것도 문제지만, 브래지어 호크나 셔츠 앞단추가 풀려 민망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젊은 시절 무용가를 꿈꿨지만 큰 가슴 때문에 꿈을 접은 이씨의 어머니는 지금처럼 속옷 브랜드가 많던 시절도 아니어서 맞는 속옷을 입는 건 포기해야 했다고. 이씨의 어머니는 지난해 가슴 축소술을 받고 E컵에서 C컵이 됐다.

    75E컵인 주부 유모(35) 씨는 “살이 안 쪄서 고민이라는 사람에게 다이어터 대다수가 공감하지 못하는 거랑 비슷할 수 있지만, 당사자는 가슴에 큰 혹 2개를 달고 다니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백화점 세일 때도 할인을 거의 받지 못한다. 홈쇼핑에서라도 빅사이즈 제품을 팔면 좋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여성에게 브래지어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가슴 처짐을 막아주고 옷 입을 때 예쁜 실루엣을 만들어서다. 유씨는 국내 브랜드에 맞는 속옷이 없어 일본산 ‘뽕브래지어’에서 뽕을 빼고 착용하기도 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는 “수유기에 가슴이 더 커지는데 맞는 수유 브래지어를 찾지 못해 가뜩이나 처진 가슴이 더 처지는 걸 피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직장인 정모(26) 씨는 “가슴이 큰 여자를 ‘글래머’라며 긍정적으로 봐주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남녀 불문하고 노골적으로 훑는 시선이 싫었는데, 이제는 포기한 상태다. 지나가던 초등학생이 다짜고짜 ‘왕가슴이다’라고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 지른 적도 있다”고 했다. 그의 브래지어 사이즈는 80D다.

    “원피스를 즐겨 입는데 가슴둘레에 맞춰 옷을 사면 어깨랑 허리가 크고, 그렇다고 다른 부분에 맞추면 옷태가 우스꽝스러워요. 울며 겨자 먹기로 옷을 수선하거나 조금 안 예뻐도 그냥 입어요.”

    기자가 만난 여성들은 “속옷 할인행사에서 D컵 이상 제품이 제외되는 게 불만이다. 디자인 선택 폭도 넓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속옷 브랜드 관계자들에게도 그 나름의 속사정은 있다. 국내에서 압도적으로 잘 팔리는 사이즈가 ‘75A’이기 때문. D컵 이상은 수요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수라도 누군가에겐 속옷 고르는 게 평생의 숙제다.

    속옷 전문업체 남영비비안과 신영와코루에 확인한 결과 “브래지어 사이즈별로 가격 차이는 있지만 할인행사에서 제외되지는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 남영비비안 홍보팀 관계자는 “큰 사이즈가 나오는 모델이 많지 않다. 따라서 행사장 할인매대에 나가는 제품이 적어 할인이 안 된다고 느꼈을 수 있다. 컵이 큰 브래지어는 가슴 무게를 지탱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깨끈이 넓고 호크도 견고하게 만들어 상대적으로 단조로운 디자인이 많다”고 말했다. 신영와코루 홍보팀 관계자는 “통계를 정확히 내기는 어렵지만 B~C컵 비율이 과거보다 높아진 건 사실이다. 가슴이 큰 고객 중에는 나이가 있는 분이 많아 화려함보다 착용감을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그런 제품이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가슴 확대술만큼 가슴 축소술도

    난, 큰 혹 2개 달린 여자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브래지어 사이즈는 75A다. 국내 속옷 브랜드에서 답을 찾지 못한 글래머들은 해외 직구나 수입 브랜드를 찾아 헤맨다.

    국내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빅사이즈 브래지어를 수입 판매하는 브랜드도 인기다. 2001년부터 빅사이즈 브래지어를 수입 판매해온 로라 박영글 대표는 “국내에서는 C컵 이상 제품의 경우 10만 원대에 칙칙하고 올드한 디자인 일색이었는데, 외국에서는 심플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4만 원대에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해외 직구도 있고 홈쇼핑, 빅사이즈 전문 쇼핑몰이 늘었지만 당시에는 제가 처음이라 소수의 글래머 여성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죠. 특히 주인장인 제가 같은 빅사이즈라 쇼핑몰 게시판에서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었어요. 이 사업을 하면서 좋은 점은 매출이라는 보상과 보람찬 일을 한다는 감정적인 보상, 두 가지 소득이 있다는 점이에요.”

    20년 넘게 가슴성형을 전문으로 해온 이안나 옵티마성형외과 원장은 “가슴이 큰 여성은 어깨끈 때문에 어깨에 파인 자국이 생기고, 땀띠로 가슴 밑 피부색이 변해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가슴 확대술만큼이나 축소술을 원하는 환자도 많다. 실제로 가슴 축소술을 받으려고 병원을 찾는 환자의 60%가 미혼 여성”이라고 말했다.

    가슴은 흔히 체중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유선(乳腺)형 가슴과, 살이 빠지면 같이 빠지는 지방형 가슴, 그리고 이 둘이 혼합된 혼합형 가슴으로 나뉜다.

    그렇다면 큰 가슴은 타고나는 걸까. 이 원장은 “함께 찾아온 모녀 중에는 어머니가 ‘내가 딸한테 안 좋은 걸 물려줘서 고생한다’며 자책하는 경우도 있는데, 자매 중에도 한 명은 가슴이 크고 한 명은 작기도 하다. 유전보다 식생활의 영향을 더 많이 받으니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가슴 축소술이 확대술보다 위험하다는 항간의 속설에 대해서는 “위험성보다 난도의 문제”라고 했다.

    “정석으로 가슴 축소술을 받을 경우 수술 후 가슴 모양이 예쁘지 않을 수 있어요. 축소 후 예쁜 모양을 만드는 게 관건이라 난도가 높고 확대술에 비해 시간도 오래 걸리죠. 축소술 후 가슴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재수술하는 경우도 있으니, 가슴 수술 경험이 많은 전문의에게 상담받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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