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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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이 깡패…구타·괴롭히기 여전”

좌담회 최근 전역자 군 가혹행위 실태 토로…말로만 호들갑 떨면 비극적 사건 재발

  • 이근희 인턴기자·원광대 한의대 2학년

    입력2014-08-11 0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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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급이 깡패…구타·괴롭히기 여전”

    최근 전역한 20대 청년 4인은 “비극적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가혹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있어선 안 될 일이 일어났다. 4월 7일 경기 연천군 육군 28사단 포병대대에서 윤모(20) 일병이 선임병들의 무차별 구타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한 윤 일병의 몸은 온통 멍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군 조사 결과 구타 외에도 성추행, 잠 안 재우고 기마자세 세우기, 치약 한 통 먹이기 등 온갖 가혹행위가 자행됐다. 병력 관리에 책임 있는 간부까지 가혹행위에 가담했다는 사실과 군 수뇌부의 안일한 대처에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구시대 악습을 탈피해 밝은 병영을 만들었다’던 요즘 군대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군복무 중이거나 군복무 전인 아들을 둔 부모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일각에서는 입영 거부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간동아’는 군 가혹행위 실태를 알아보고 대안을 모색하려고 8월 6일 서울 충무로 한 카페에서 전역한 지 6개월 이내 전역자들을 모아 ‘군 가혹행위와 윤 일병 사망 사건’이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참석자는 신모(25·육군 7사단), 고모(24·육군 9사단), 강모(23·육군 공병여단), 이모(23·해병 1사단) 씨. 사회는 이근희 인턴기자가 맡았다.

    안 보이는 곳에서 은밀하게 벌어져

    ▼ 군 생활을 하면서 실제로 가혹행위를 당했거나 당하는 걸 본 적 있습니까.



    신 : “저는 간부가 많이 있는 본부중대 소속이라 덜했지만 전투중대에서는 부조리와 폭행이 있었습니다. 심한 인격 모독은 없었어도 몸통이나 다리를 때리는 경우는 빈번했습니다. 구시대 악습을 없애고 장병 인권과 생활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병영문화선진화’가 도입된 이후 가혹행위가 좀 줄어드는 듯했지만, 안 보이는 곳에서는 여전했습니다.”

    고 : “알게 모르게 뒤에서는 가혹행위가 있었습니다. 제가 분대장이었을 때 후임병이 근무 중 부사수를 폭행해 군법무부에서까지 나와 조사한 일이 있습니다. 사단 내 군법무부에 피해자가 직접 고발한 것입니다.”

    강 : “같은 계급 혹은 동기끼리 생활관을 사용하는 동기생활관이 생기기 전에는 가혹행위가 심했습니다. 선임이 주말에 하루 종일 관물대만 바라보게 한 적도 있습니다.”

    이 : “저도 윤 일병처럼 한 선임의 횡포로 힘든 군 생활을 보낸 시기가 있습니다. 선임이 근무를 나갈 때마다 깨우고, 못 일어나면 때렸습니다. 처음에만 그러겠지 했지만 그 선임이 전역할 때까지 1년 동안 시달렸습니다. 움직이는 소리만 들려도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게 버릇이 돼 아직도 불면증과 몽유병이 남아 있습니다. 그 선임은 또 저에 대해 작은 꼬투리만 잡아도 선임병들 사이에 퍼뜨려 제가 마치 문제 있는 사람인 양 분위기를 조장했습니다. 이번 윤 일병 같은 상황에 빠지면 얼마나 헤어나오기 힘든지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무척 공감했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 본인이 복무 중일 때 부대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땠습니까.

    고 : “저는 본부대대 소속이라 사단사령부 내에서 근무했습니다. 주위에 고위급 참모가 많았고 사단 내 군법무부, 감찰부 등 주요 기관이 다 있어 가혹행위가 적었습니다. 가혹행위는 규모가 작고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부대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신 : “동기생활관이 생기면서 부조리와 폭행 등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선임병의 횡포가 많이 줄어 전역하기 2달 전부터 오히려 후임들 눈치를 보다 나왔을 정도니까요. 그래도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을 주위에 알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이 싫었고, 신고한 사실이 알려지는 것도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또 익명으로 신고한다고 해도 어차피 조사 과정에서 드러나고, 조사 문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행정병이 보면 금방 퍼지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더 관심 가졌더라면…

    “계급이 깡패…구타·괴롭히기 여전”

    좌담 참석자 신모 씨는 병영환경을 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대안으로 모병제를 꼽았다. 사진은 군 내무반 풍경.

    ▼ 윤 일병 가혹행위 같은 사태가 벌어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이 : “이런 집단 따돌림의 경우 주위에 있는 부사관과 지휘관의 방관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들 알면서 병(兵)들은 불똥이 튈까 봐 쉬쉬하고, 간부들은 일이 커지면 귀찮아질까 봐 모른 척하는 것입니다.”

    강 : “전문하사의 경우는 병 출신이라 병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데 초급 간부의 경우 이등병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초급 간부는 군 경험이 이등병과 같은데 계급만 높으니까 병 사이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분위기에 휩쓸릴 개연성이 높습니다. 윤 일병 사건에서 유모(23) 하사의 경우도 하사 혼자 대대와 떨어져 의무반을 책임지니 병들과 유착해 가혹행위를 방조한 것입니다.”

    ▼ 해당 사단장이 보직 해임되고 권오성 육군참모총장까지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이제 사건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까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처벌 범위는 어디까지로 해야 한다고 봅니까.

    이 : “우리 대대의 경우 사건이 터지면 해당자는 물론이고 관련된 중대, 대대 병부터 간부까지 모두 공동책임을 지는 식이었습니다. 병들은 포상휴가 제한, 간부들은 감봉, 인사고가 반영 등으로 책임을 물었습니다. 그래서 사건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솔직히 해당 대대장은 3개월 정직이고 연대장도 견책 정도인데 왜 육군참모총장 같은 사람이 물러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실제 그 부대 사람들한테는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그냥 ‘어,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네’ 정도죠.”

    강 : “너무 확대 해석하지 말고 대대장 정도까지만 처벌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질적으로 밑의 병들에게 관심을 갖고 대대 간부들을 통제하는 게 대대장까지 아닙니까. 너무 위까지 올라가면 그냥 보여주기식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치면 대통령도 물러나야 하나요? 사건이 터지면 항상 이런 식이니까 답답하죠.”

    ▼ 이번 윤 일병 가혹행위 같은 사태가 재발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봅니까.

    고 : “군대를 독립적으로 내버려두지 말고 사회와 상호작용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외부와 소통하지 못하는 부대는 어떻게든 그 안에서 악습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신 :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거라고 보지만, 모병제로 바꾸는 것도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업군인이 되는 것이니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감도 커지리라 봅니다. 지금처럼 나이가 찼으니 무조건 군대에 가야 한다는 구조와는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강 : “중대마다 혹은 최소한 대대까지는 상담 전문 간부가 한 명씩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임원사나 행정보급관은 다른 업무도 있으니 상담까지 신경 쓰기는 역부족이죠. 제가 분대장일 때 후임들끼리 폭행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모든 분대원과 일일이 상담하면서 서로 진심을 털어놓고 풀었더니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윗사람이 조금만 관심을 갖고 다가서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금방 알 수 있고 해결도 할 수 있습니다.”

    이 : “일벌백계를 확실히 해 가혹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건이 터진 부대의 경우 부대원 전체를 확실히 처벌해야 합니다. 너무 안타까운 것은 윤 일병 사건은 한 명이라도 미리 얘기했으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점입니다. 윤 일병도 서울 소재 대학에서 과대표를 했을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이었으니 군 생활도 잘하고 싶고 열심히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누군가 도와줬다면 충분히 극복했을 것입니다.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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