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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김원곤 교수의 외국어 도전기

첫날 망친 청취와 작문 독해와 회화서 멋있게 만회

수험생에게 작은 낙서용 메모지 제공…프랑세즈 직접 방문 합격증 수령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첫날 망친 청취와 작문 독해와 회화서 멋있게 만회

첫날 망친 청취와 작문 독해와 회화서 멋있게 만회

중국어, 일본어 능력 평가시험에 이어 세 번째로 프랑스어 델프(DELF) 시험에 합격한 김원곤 교수(왼쪽)와 그가 프랑스어 독해시험 준비에 사용했던 교재들.

이모저모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나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 프랑스어 델프(DELF) B1 시험일이 드디어 다가왔다. 첫날 필기시험은 2011년 11월 12일(토) 오후 1시 40분 시작됐다. 구두시험은 필기시험과 별도로 그다음 날인 일요일 오전 9시 30분으로 시간이 정해졌다.

시험 장소는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오산고였다. 시험 시간이 오후라 비교적 여유 있게 집을 나서 지하철을 탔다. 6호선 이태원역에서 하차해 보광동 주민센터행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학교 근처까지 갔다. 시험장은 학교 정문에서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길을 300m 정도 올라가니 나타났다.

시험장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30분. 입실 시간인 1시 20분까지는 상당한 여유가 있었다. 학교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다 건물 현관에 들어선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현관 한쪽 벽에 고(故) 박영석 산악대장의 기념품들을 전시한 대형 유리 진열장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박 대장이 이 학교 출신이었다는 것은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그는 당시 얼마 전인 10월 18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등정하다 조난사고로 연락이 두절됐고, 결국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었다.

생전 그가 모교에 기증한 소장품들을 보면서 아련한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특히 평소 그의 좌우명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진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는 구절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주의사항 전달 후 드디어 시험 시작



첫날 망친 청취와 작문 독해와 회화서 멋있게 만회

프랑스어 델프(DELF) B1 합격증.

오후 1시 20분 입실이 완료됐다. 본관 건물 3층 끝 시험장 안에 앉아 있는 수험생 수를 헤아려 보니 모두 28명이었다. 이전 일본어 능력 평가시험과 달리 결시생은 보이지 않았다. 시험감독관이 주의사항을 전달한 뒤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수험표 검사를 해가며 시험지를 배부했다.

드디어 1시 40분 시험이 시작됐다. 필기시험은 크게 청취, 독해, 작문 세 영역으로 나뉘는데 모든 시험을 중간 휴식시간 없이 3시 25분까지 1시간 45분 동안 치르게 돼 있었다. 수험생들에게 작은 메모지(Brouillon)를 하나씩 나눠주고 시험 중 활용할 수 있게 한 점이 흥미로웠다. 이 낙서용 메모지는 나중에 시험답안지와 함께 수거해갔다.

시험은 청취부터 시작했다. 평소 청취 영역이 취약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역시 어려웠다. 모두 3문제가 출제됐는데 ① 공연장에서 남녀 간 대화 ② 제대로 된 학위 없이도 자수성가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 ③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였다. 그런데 두 번씩 들려주는데도 그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답을 쓰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이러다 자칫 25점 만점에서 과락 대상 기준점인 5점도 못 얻는 불상사가 생기는 건 아닌가’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어질 시험을 생각하며 마음을 추슬렀고, 그다음 독해시험에 들어갔다. 독해는 나뿐 아니라 우리나라 수험생 대부분이 비교적 자신하는 부분이다. 모두 2문제가 나왔는데 무난한 편으로, 어떻게 보면 쉽다는 느낌마저 있었다. 정신없이 시험을 보는 와중에 문득 청취에서 부족한 점수를 독해에서 상당 부분 보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작문시험은 ‘자기 나라에서 벌어지는 문화 또는 스포츠 행사에 관해 소개하는 글’을 프랑스 신문에 투고한다는 가정하에 쓰는 것이었다. 어려운 주제는 아니었지만 긴장한 탓인지 금방 적절한 주제가 떠오르지 않았다. 우물쭈물하다 아까운 시간만 흘러갔다. 이러다간 자칫 지난 중국어 능력 평가시험처럼 규정된 최소 분량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면서 약간 초조해졌다. 다급하게 주제를 ‘장애인의 날 행사’로 정했다. 그런데 글을 써 내려가면서도 과연 출제자가 요구하는 문화 또는 스포츠 행사에 합당한 주제인지 스스로도 반신반의했다. 그렇지만 이미 시간상 엎질러진 물이었다.

일단 작문을 마치고 2~3분 시간이 남아 내용을 다시 한 번 훑어보는 도중에 문득 주제 단어인 ‘장애인’의 프랑스어 단어 철자가 의심스러웠다. 처음에는 모두 ‘handicape、’라고 썼는데 갑자기 ‘handicappe、’로 ‘p’가 두 개 들어가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 단어인 만큼 철자 오류는 곤란하다고 생각해 부랴부랴 해당 단어를 모두 찾아내 ‘p’를 하나씩 더 추가했다.

그런데 시험장에서 나오자마자 갖고 갔던 전자사전으로 확인해보니 원래 썼던 철자가 맞는 것이 아닌가! 학교 언덕길을 내려오는 길이 그렇게 씁쓸할 수 없었다.

두 번째 날 구두시험 시간이 다가왔다. 9시 30분 시험시간을 감안해 택시를 타고 일찌감치 학교에 도착했다. 시험 대기장에 들어가니 주위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돋보이게(?) 나이가 많은 내가 신기했는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힐긋힐긋 쳐다봤다.

일대일로 진행된 구두시험에서 시험관은 젊은 프랑스 남성이었다. 간략한 자기소개와 함께 시험관과의 대화가 이어졌는데, 그동안 구두시험 준비를 많이 한 덕분인지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역을 정해서 하는 대화시험이었는데, 나는 ‘룸메이트가 방을 제대로 치우지 않고 어지럽히기만 하는 행위에 대해 항의하는’ 역이었다. 이 또한 웬만큼 원하는 표현을 해나갔다. 마지막 시험인 주제 발표는 ‘여성의 취업기회’에 관한 것이었다. 발표를 마치고 이어지는 몇 가지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하자 시험관 반응이 꽤 좋아 보였다.

예상외 회화 성적에 만족

그럭저럭 시험을 마치고 한 달쯤 후로 예정된 시험 결과 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12월 5일(월) 5시 알리앙스 프랑세즈 홈페이지에서 ‘합격’(Admis)이란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합격 점수는 71점으로 합격점인 50점을 무난히 넘어섰다. 세부 영역별 점수가 궁금했지만 알리앙스 프랑세즈로 직접 방문해 합격증을 수령해야만 알 수 있다고 했다. 얼마 후 직접 수령한 합격증에는 각 영역 25점 만점에 독해 24.50점, 작문 12.50점, 청취 10.00점, 구두 24.00점이 기록돼 있었다.

독해는 예상 점수와 큰 차이가 없었으나 작문은 약간 저조한 편이었다. 아무래도 주제 선정에 문제가 있었던 데다 주제어인 ‘handicape、’의 철자 오류가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그런데 구두시험에서는 나도 놀랄 정도로 좋은 점수를 획득했다. 전체적으로 별 막힘없이 자신 있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태도를 시험관이 좋게 평가해준 듯했다. 청취 영역은 예상대로 점수가 가장 좋지 않았지만 과락까지 걱정할 정도로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40% 득점으로도 불만은 없었다.

이렇게 고비가 될 것으로 생각했던 프랑스어 시험마저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점수로 합격하고 나니 그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만 이 때문에 마지막 스페인어 시험에 대한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주간동아 948호 (p68~69)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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