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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여성 주교님 어서 오소서!

영국성공회 관련 법안 마침내 통과…이르면 내년 초 여성 주교 탄생할 듯

  • 유시경 스테반 신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사제·관구본부 총무국장 08skyoo@naver.com

여성 주교님 어서 오소서!

7월 14일 영국성공회 전국의회(General Synod)에서 수년간 보류돼온 여성 주교 관련 법안이 통과됐다. 이로써 1992년 교회법이 개정돼 94년 영국 브리스틀 대성당에서 첫 여성 사제가 서품된 지 20년 만에 영국성공회에서도 여성 주교가 탄생하게 됐다. 성공회 교회 운영의 중심 단위인 교구 최고지도자이자 책임자인 주교직에 여성이 선출되게 된 것이다. 현재 영국성공회 안에는 주교 선출을 앞둔 교구가 몇 개 있어, 이르면 내년 초 여성 주교가 탄생할 전망이다.

이에 앞서 5월 3일 영국 런던에서 여성 사제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을 때 시민 3000명이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을 출발해 성바울로 대성당까지 축하 행진을 한 바 있다. 이날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1994년 서품된 여성 사제 32명을 비롯해 1000명 가까운 여성 사제와 함께 드린 감사예배 설교에서 “여성 서품에 이르기까지 영국성공회가 수많은 여성에게 상처를 준 것을 교회 일원으로 사과한다”며 “오늘 이렇게 기쁨을 나눌 수 있기까지 여성의 많은 상처와 고귀한 충성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지금은 만족할 때가 아니라 더 긴 여행을 해야 한다”고 말해 여성 주교 의안 성립을 예견한 바 있다.

국교회적 성격을 지닌 영국성공회의 경우, 현직 주교 가운데 상당수가 자동직 상하원의원으로 참여하고 모든 주교는 교회 내의 규범적, 상징적 중심인 동시에 담당 지역, 나아가 정부에서 행정적,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다. 그런 점에서 “종교 최고위직에서 남녀차별이 사라졌다”는 건 교회 내 남녀평등의 진전을 넘어, 한 여성 사제가 ‘우주적 변화’로 표현한 것처럼 사회·문화적 의미가 큰 경사라 할 것이다.

사실 성공회 여성 사제의 역사는 진통의 역사였다. 첫 여성 성직자의 기록은 1862년 최초의 여성 부제(deaconess)인 영국 엘리자베스 캐서린 페라르드였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나 1944년 홍콩성공회에서 시무하던 플로렌스 리 팀오이가 최초 여성 사제로 서품됐지만, 전체 교회의 승인과 합의라는 절차를 통한 것이라기보다 한 지역 주교의 결심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이 때문에 플로렌스 리 팀오이는 홍콩을 떠나야 했다.

‘빛과 소금’으로 보살피고 섬기는 소임



그러나 1970년대 격론을 거치면서 이제는 세계적으로 여성 사제가 일반화하고 있다. 현재 세계 성공회 38개 관구 중 3분의 1 이상인 홍콩, 미국, 캐나다, 케냐, 우간다, 뉴질랜드, 아일랜드,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필리핀, 일본, 한국 등이 여성 사제를 배출했다. 또 1988년 미국성공회가 최초의 여성 주교를 배출한 이래 89년 뉴질랜드성공회, 95년 캐나다성공회 등에서 여성 주교가 탄생했고, 스코틀랜드성공회도 여성 주교 의안을 승인한 상태다. 미국성공회의 경우 180개 교구로 구성되는 전국총회의 수장 캐서린 제퍼츠 쇼리 대주교가 10년째 의장직(Presiding Bishop)을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성공회의 여성 주교 의안 통과가 주목받는 이유는 영국성공회가 교리와 제도 면에서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세계 성공회 일치를 위해 매우 신중한 태도를 지녀온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주교를 뜻하는 ‘에피스코포스(epskopos)’라는 말은 에피(epi·높은 곳에서 멀리)와 스코프(scope·바라보며 살핀다)를 합친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의 눈길을 지니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빛과 소금’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보살피고 섬기는 일이 주교의 소임이다. 이 일에 남녀 구분이 있을 수 없음은 시대의 상식이지만 교리와 문화, 제도의 벽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예수 수난의 현장을 끝까지 지킨 것도 여성이요, 부활 현장에 최초로 달려간 것도 여성이었음을 기록한 복음서가 우리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런 초대 교회 여성들의 족적이 여성 사제·주교직을 통해 더욱 확장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양성평등 시대를 열어가기를 기대한다.



주간동아 948호 (p54~54)

유시경 스테반 신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사제·관구본부 총무국장 08sky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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