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8

2014.07.28

한국만 ‘공기청정기’ 작동하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연기 가능성…재계 국제 상황 감안 탄력 시행 요구

  • 이지훈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경제학 박사 mygopher@naver.com

    입력2014-07-28 1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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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정대로라면 2015년 1월 1일부터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를 사고파는 시대가 시작될 터였다. 이에 대해 요즘 여기저기서 말이 많다. 한쪽에서는 일상화한 기상이변의 주범인 기후변화를 억제하는 효율적인 수단을 도입하는 일이라며 적극 찬성하는 분위기다. 다른 한편에서는 산업계의 과도한 부담을 우려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의 시행이 시기상조라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연기되거나 대폭 수정될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적은 비용으로 감축 목표 달성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정확히 말하면 온실가스 자체가 아니라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사고파는 것이다. 배출권은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 1t을 1년 동안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한 일종의 유가증권에 해당한다. 배출권 거래는 주식이나 채권처럼 한국거래소나 장외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정책 당국이 배출 총량을 정하고 이에 상당하는 배출권을 기업들에게 할당하면, 기업들이 할당량의 잉여분과 부족분을 거래하는 제도다.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이러한 배출권 거래제 도입을 추진해왔다. 2009년 11월 이명박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전망치(Business As Usual·BAU) 대비 30% 줄이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여기서 BAU는 앞으로 추가 감축 노력이 없다는 전제하에, 다시 말해 현재의 배출 추세가 미래에도 계속된다는 가정하에 전망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뜻한다.

    정부는 다른 정책 수단도 많을 텐데 왜 굳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통해 국가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 하는 것일까. 그것은 목표로 정한 감축 총량을 가장 적은 비용으로 달성하는, 이른바 비용 효율적인 감축 수단이 바로 배출권 거래제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배출권 가격은 기업들이 온실가스를 추가로 배출하는 데 따른 기회비용에 해당한다.



    따라서 각 기업은 배출권 가격과 한계 감축 비용(Marginal Abatement Cost·MAC·온실가스 1t을 줄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일치하는 수준에서 배출량을 결정하려 할 것이다. 이에 따라 모든 기업의 한계 감축 비용이 동일해지면서 목표 감축량이 최소 비용으로 달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비용 효율성은 배출권 할당의 형평성과는 상관없이 충족된다고 한다. 어느 기업에게 얼마만큼의 배출권이 할당되느냐와는 무관하게, 극단적으로 특정 기업에게 전체 배출권이 모두 할당된다 해도 거래를 통해 가장 적은 비용으로 목표 감축량이 달성되는 것이다.

    한국만 ‘공기청정기’ 작동하나

    최경환 경제부총리(왼쪽)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2012년 5월 29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열린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법률 산업계 설명회.

    그렇다면 배출권 거래제는 다른 정책 수단에 비해 어느 정도 온실가스 감축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까. 2009년 삼성경제연구소는 이에 대해 주목할 만한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배출권 거래제의 온실가스 감축 비용이 직접규제의 40%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책당국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고 산업계를 대상으로 배출권 거래제와 직접규제를 시행하는 경우의 감축 비용을 동태적 연산균형모형을 활용해 비교한 결과다.

    동태적 연산균형모형은 가계의 효용 극대화와 기업의 이윤 극대화 같은 경제 주체의 최적화 행위에 기초해 정부의 정책 변화 같은 외생적 충격이 경제 내에서 시간 흐름에 따라 산업별 또는 소득계층별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하는 모형이다. 그리고 직접규제라는 것은 정책당국이 산업별로 온실가스를 할당하고 각 산업이 자체적으로 이를 준수하는 방식인데, 2012년부터 에너지기업 등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온실가스 목표관리제가 이에 해당한다. 온실가스 목표관리제는 내년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되면 자동 폐지될 예정이다.

    대규모 정책 불응 사태 우려도

    그런데 이러한 제도상의 효율성에도, 내년부터 시행하는 배출권 거래제는 설계상 몇 가지 문제점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 정부가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 여력을 고려하지 않고 감축 목표를 지나치게 높게 잡았다.

    미국 미디어그룹 블룸버그는 한국이 국가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기업들이 2020년 온실가스를 2억500만t 줄여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외국의 배출권 거래제에 비해 과도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배출권 거래제의 의무 감축량은 우리와 여건이 비슷한 미국 캘리포니아 주(4600만t)의 4배가 훌쩍 넘는다. 유럽연합(1억2200만t)이나 호주(1억2600만t)의 배출권 거래제에 비해서도 60% 이상 많다.

    호주의 경우 2015년 7월 도입할 예정인 배출권 거래제를 대상으로 추정한 의무 감축량이다. 호주는 2012년 7월부터 시행 중인 탄소세를 배출권 거래제로 전환해 시행할 계획이었으나, 7월 17일 탄소세를 폐지하는 법안이 상원을 통과함으로써 배출권 거래제 시행이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경제 규모를 감안해 의무 감축량을 외국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 커진다. 우리나라의 2020년 국내총생산(GDP) 전망치 대비 의무 감축량 수준은 0.147로 유럽연합(0.007)의 20배가 넘고, 호주(0.113)에 비해서는 30% 이상 많다. GDP 전망치와 의무 감축량의 단위는 각각 1000달러(2005년 가격 기준)와 톤(t)이다.

    그런데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 여력은 이러한 의무 감축량을 크게 밑돌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들이 이미 확보한 기술을 통해 줄일 수 있는 온실가스 양을 감축 잠재량이라 한다. 이미 확보한 기술이라는 말은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는 연료로 전환하는 기술 등을 말한다. 그런데 2020년 감축 잠재량은 의무 감축량의 80%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의무 감축량의 20% 정도는 너무 많은 것이다. 만약 우리 기업이 이 의무 감축량 목표를 달성하려면 2020년까지 확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CCS(Carbon Capture and Storage) 같은 기술을 미국이나 유럽으로부터 들여와야 한다. CCS는 온실가스가 대기로 배출되기 전 잡아 모아 땅속이나 바닷속에 저장하는 기술을 말한다.

    한국만 ‘공기청정기’ 작동하나

    영국 런던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소 모습(위). 2013년 7월 1일 미국 몬태나 주 콜스트립의 석탄화력발전소인 콜스트립 스팀 발전소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20년까지 지구온난화 원인인 화력발전소의 탄소 배출량을 최대 30%까지 줄이는 방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그런데 CCS를 활용해 온실가스를 줄이면 t당 비용이 최대 44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가격은 당연히 비용을 반영하기 때문에 배출권 가격이 t당 최대 44만 원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보유한 배출권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부과되는 과징금의 최대 수준이 t당 10만 원으로 책정돼 있다. 더욱이 정부는 산업계의 부담을 완화하는 차원에서 과징금의 최대 한도를 t당 3만 원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기업은 대부분 44만 원을 들여 온실가스를 줄이는 대신 그냥 배출하고 과징금을 내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기업들의 감축 여력을 감안하지 않고 의무 감축량이 결정되는 경우, 배출권 가격이 과징금 최대 수준을 상회하면서 대규모 정책 불응(Policy Noncompliance) 사태가 발생할 개연성도 배제하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7위

    내년부터 시행하는 배출권 거래제와 관련해 지적되는 또 다른 문제점은 이른바 배출량 상쇄(Offsets)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점이다. 상쇄는 기업들이 자기 사업장이 아닌 외부 사업장에 기술과 자본을 지원해 온실가스를 줄이는 경우 그 줄인 양만큼을 자신들의 감축량으로 인정해주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투자해 중소기업의 온실가스를 100t 줄이면, 그것을 대기업의 감축량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자체적으로 감축 비용이 많이 드는 기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감축 실적을 확보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인 셈이다.

    그런데 상쇄의 최대 한도를 배출량의 10%로 제한할 뿐 아니라, 해외 상쇄는 2020년까지 아예 금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상쇄의 최대 한도를 규정한 사례는 전무하다. 다만, 호주 등에서 해외 상쇄의 비중을 국내 상쇄의 절반으로 제한하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배출권 거래제와 관련해 가장 많이 제기되는 문제점은 배출권 시장의 제3자 참여 제한에 대한 것이다. 관련법(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은 배출권 시장의 안정적 형성이라는 명목으로 4개 공적 금융기관(한국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정책금융공사) 외에 제3자의 배출권 거래를 2020년까지 금지하고 있다. 투기 세력의 배출권 시장 진입을 차단하겠다는 명분인데, 이는 오히려 배출권의 적정 가격 형성에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민간 금융기관이나 일반 투자자의 참여 없이 배출권 시장이 폐쇄적으로 운용될 경우 유동성 부족, 소수 대량 배출(또는 감축) 기업의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및 담함 등으로 정상적인 시장 가격 형성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실 배출권 시장에 투기 세력이 진입한 사례도, 제3자의 시장 참여를 제한한 사례도 전 세계적으로 없다.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5억6300만t(2010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일본, 독일에 이어 일곱 번째로 많다. 일견, 하루빨리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해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배출 비중은 전체의 1.9%에 불과하고, 우리나라보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 가운데 배출권 거래제를 국가 단위로 시행하는 나라는 유럽연합 차원의 배출권 거래제(EU Emission Trading System)에 참여하는 독일이 유일하다. 전 세계 온실가스의 4분의 1 정도(24.0%)를 내뿜는 중국이나 미국(배출 비중 17.7%)에서도 시행하지 않는 국가 차원의 배출권 거래제를 우리만 시행하는 것은 오염물질을 뿜어대는 공장에서 공기청정기를 트는 격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정부는 배출권 거래제 도입의 국제적인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내년 1월부터 시행하도록 명시한 관련법이라도 고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시간상 어렵다면 지적되는 문제점을 보완해 산업계의 부담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기업 처지에서는 배출권 거래제 시행에 대비해 무엇보다 온실가스 감축 여력을 확대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인수합병(M·A)을 비롯해 전략적 제휴나 공동연구 등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해 CCS 같은 차세대 온실가스 감축 기술을 조기에 확보하는 것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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