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7

2014.07.21

양·한방 ‘S라인 전쟁 중’

양방 향정약품 vs 한방 마황…여름철 다이어트 시장 주도권 놓고 격돌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이근희 인턴기자·원광대 한의대 2학년

    입력2014-07-21 10: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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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휴가철에 친구들이랑 해수욕장에 가려 하는데 뱃살 때문에 고민이에요. 운동할 시간은 없고 야식과 잦은 회식 탓에 음식 조절도 힘들고요.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약물 다이어트를 해보려 합니다. 괜찮을까요?”

    직장인 맹모(26·여) 씨는 바캉스 계절을 맞아 고민에 빠졌다. 노출의 계절인 여름휴가철을 맞아 늘씬한 S라인 몸매를 과시하려는 20대 여성이라면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 터.

    최근 향정신성의약품 등 식욕억제제를 이용하거나 마황(麻黃) 등 한약 제제를 사용한 ‘약물 다이어트’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넷에는 이들 ‘약물’을 이용해 단기간에 살을 빼준다는 광고가 넘쳐난다. 약물을 이용한 다이어트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운동과 식이요법을 할 수 없는 여성 직장인 사이에서 특히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들 약물 다이어트의 핵심 기전은 약물로 식욕을 억제함으로써 음식 섭취량을 최소화하거나 일시적으로 열량 소모를 극대화하는 것. 사실 극단적 식이조절이나 일시적 열량 소모만으로 뺀 살은 적당한 유산소운동이 병행되지 않을 경우 반드시 요요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오히려 다이어트 전보다 살이 더 찔 수 있다는 게 의학계의 공론. 또한 필수 영양성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살찐 빈혈’을 일으킬 개연성이 있으며, 다이어트에 사용하는 약물의 경우 과용하면 큰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단기간 살 빼준다” 약물 넘쳐나



    약물 다이어트를 애용하는 사람이나 이를 처방하는 의사와 한의사도 이런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여름 한철 S라인 몸매를 과시하고 싶은 젊은이의 욕구와 약물 다이어트를 통해 한철 장사를 하려는 양·한방 의료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엄청난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약물 다이어트는 땀을 흘리는 노력이나 먹고 싶은 기본 욕구를 억눌러야 하는 고통 없이 단기간 내 살을 빼주기 때문에 그 유혹을 뿌리치기가 매우 힘들다.

    먼저 양방 다이어트 클리닉에서 처방하는 다이어트 약의 면면을 보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식욕억제제로 쓰는 향정신성의약품은 기본이고 변비약, 간질 치료제, 이뇨제까지 들어간다. 이 중 식욕억제제로 쓰는 약품은 펜디메트라진, 펜터민, 마진돌, 플루옥세틴 등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주로 우울증에 사용된다. 이들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고 체중 감소를 유도하지만 오래 복용하면 신체적, 정신적 의존성이 커진다. 지속적으로 먹으면 중독을 일으킨다는 얘기다. 이들 약품이 메스암페타민(필로폰)처럼 마약류로 분류된 것도 그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우울증 등 신경정신과적 질병 치료에 쓰는 향정신성의약품을 고도비만 치료제로 쓰는 의약계의 관행을 못마땅해하지만 딱히 막을 규정이 없어 복용 기간과 용도만 한정해 권고하고 있다. 권고 내용은 향정신성의약품을 식욕억제제로 사용할 경우 체질량지수(BMI) 30 이상의 비만인 자가 단기간(4주) 복용해 효과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12주까지 처방할 수 있게 한 것.

    이들 약품의 약전을 보면 단기 복용 시 불면증, 구갈, 빈맥, 두통, 현기증, 심계항진, 변비, 불안감, 건전, 오심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장기 복용 시 폐동맥 고혈압, 심장판막 질환 같은 심각한 심장 질환과 우울증, 불안감, 불면증 같은 중추신경계의 이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중독이 심할 경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무서운 의약품이기도 하다.

    한방 약물 다이어트에 쓰는 핵심 약재 ‘마황’은 부신에 저장된 호르몬의 대사를 촉진해 에너지 활용을 극대화하고, 정신과 기분을 북돋워주는 기능을 한다. 3세기 중국 한의학 고전 ‘상한론’에 언급될 정도로 오랫동안 사용한 약재로, 그 강력한 약성은 현대의학에서도 증명된 바 있다. 일본 도쿄대 의학부 나가이 나가요시 교수가 마황에서 에페드린을 발견해 합성한 이후 1923년부터 의약품으로 쓰였다. 그 후 양방에서 주로 천식과 기침 치료제로 사용하다 최근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더 좋은 신약이 개발되면서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김모 한의대 교수는 “한방 다이어트에서 마황은 섭취한 것을 잘 발산하지 못하는 태음인 체질의 사람이 복용하면 피부의 땀구멍을 열어주고 열량 소비를 촉진해 에너지를 발산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약성이 강력한 만큼 과용하거나 남용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이 오지 않으며 손이 떨리고 숨이 차는 등 부작용이 생기게 되므로 정확한 진단하에 정해진 양만 처방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황 속 에페드린 성분

    약물 다이어트 시장이 비대해지면서 양방과 한방 간 마황의 사용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 도화선은 마황 속 성분 가운데 하나인 에페드린이다. 일반 감기약에 들어가는 에페드린은 장기 복용하면 심장 질환을 일으킬 수 있어 건강보조식품에는 사용이 금지돼 있다. 여름휴가철을 앞둔 6월 16일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한특위)는 “마황이 함유된 다이어트 한약에 대해 실태조사를 한 결과, 20개 한의원 중 19곳에서 마황을 처방하고 있고, 대부분의 한의원에서 환자에게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만한 에페드린 용량(일반 감기약 기준 61.4mg 이상)을 무책임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바로 반격에 나섰다. 즉 “전국 한의원과 한방병원에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하루 에페드린 의약품 허용량(150mg), 대한한방비만학회의 에페드린 권고량(전탕액 기준 하루 90~150mg) 이내에서 사용하는 만큼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한특위는 6월 30일 마황 자체를 걸고 넘어졌다. 한특위 측은 “마황의 안전성을 과학적으로 밝혔다는 대한한방비만학회의 논문은 신뢰성이 떨어진다. 마황은 절대 안전한 약이 아니고, 한의사가 처방한다고 해서 부작용이 줄어들거나 안전해지지 않는다. 한의계가 마황의 안전에 관해 공개 토론회를 요구할 경우 언제든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젊은 한의사 모임인 참실련은 성명서를 내고 “한특위가 이미 과학적으로 검증이 끝난 한약재를 폄훼하고 있다. 양의학계가 ‘미국에서 마황 사용이 금지됐다’고 주장하지만 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마황에 대해선 판매 금지 조치가 취해진 적이 없다. 심지어 FDA 규정집을 보면 ‘동아시아 전통의학에서 사용 경험이 길고 식품보조제로 판매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규제 대상이 아니다’라고 나와 있다. 양의학계야말로 다이어트 양약의 무분별한 남발에 대해 성찰하라”고 비판했다.

    식약처 한약정책과 관계자는 “한약 제제와 생약 제제 등 완제품에 대해선 각 재료의 사용량 등을 규제하고 있지만, 한의원의 탕약에 들어가는 마황과 그 성분인 에페드린의 경우 한의사 개인의 의료 행위이기 때문에 의료법 등 그 어떤 규정으로 규제할 수 없다. 또한 탕약에 들어가는 각 약재의 양을 일일이 규제하는 것도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한의사의 양심에 달린 부분”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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