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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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1년 반 … 록 후계자 증명 임박

국카스텐의 두 번째 앨범을 기다리며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4-07-14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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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여곡절 1년 반 … 록 후계자 증명 임박

    록그룹 국카스텐. 왼쪽부터 김기범, 하현우, 전규호, 이정길.

    “넥스트가 아닌,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스타가 나와 구멍을 뚫어주는 게 훨씬 중요하다. 국카스텐 같은 친구들이 쭉쭉 뻗어가야 한다. 그러니까 국카스텐 이 새X들아! 빨리 앨범 내라. 너희가 멈춰 있으면 결국 너희 후배들이 기회를 잃는다.”

    최근 컴백 앨범 ‘Reboot Myself’를 발표한 신해철이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의 말처럼 국카스텐은 2012년 6월 싱글 ‘모자이크’ 이후 신곡을 발표하지 않았다. 2012년 연말 콘서트를 끝으로 이렇다 할 활동도 없다. 지난해 거의 유일한 활동이던 안산밸리록페스티벌 무대에서 그들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오랜만에 공연하니까 그래도 마음이 후련해지네요.” 그들 마음이 후련하지 못했던 이유가 있다. 황금 같은 타이밍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낼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다.

    국카스텐은 황량한 사막에서 갑자기 솟구치는 원유처럼 비상(飛上)해온 밴드다. ‘더 컴’‘뉴언발란스’ 등의 이름으로 무명 중 무명 시절을 보내다, 2005년 보컬 하현우의 제대 이후 국카스텐이란 이름으로 다시 뭉쳤다. 기타리스트 전규호의 형이 운영하던 강원도 한 펜션에서 합숙하며 칼을 갈았다. 밤에는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생활비를 마련했다.

    이들은 2007년 가을 쌈지사운드페스티벌에 ‘숨은 고수’로 출전하면서 조금씩 이름을 알렸다. 인디신 전체에서 주목받게 된 건 2008년 EBS ‘스페이스 공감’의 ‘헬로루키’ 연말 결선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을 제치고 대상을 받았을 때다. 서울 광진구 구천면로 악스코리아를 가득 메운 2000명 관객 대부분은 처음 들었을 ‘거울’의 1절이 끝나자마자 노도 같은 환호성을 질렀다. 기존 팬의 열광이 아닌 ‘발견의 쾌감’이 주는 탄성이었다.

    이후 여러 레이블에서 러브콜이 들어왔고, 그들이 오르는 무대 앞엔 늘 관객이 그득했다. 2009년 발매한 1집은 비평가들의 찬사와 상업적 성공을 모두 거머쥐었다. 국카스텐은 가장 록적인 사운드와 전개로 메인스트림에 한걸음 다가가는 드문 그룹이었다. 발매한 앨범이 단 한 장뿐임에도 국카스텐은 록페스티벌에서 좋은 시간대에 서곤 했다. 뭐랄까, 인디신 전체가, 아니 한국 록음악계 전체가 국카스텐을 메인스트림 록스타 후계자로 만들고자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럴 자격과 능력이 그들에게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 열망이 상처받은 건 2011년 그들이 예당엔터테인먼트(예당)로 소속사를 옮기면서였다. 당시 예당 사정이 좋지 않았고, 소속 가수와 불미스러운 일도 종종 불거졌기 때문에 많은 이가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어쨌든 초창기엔 만족스러운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이듬해 ‘일밤-나는 가수다 Ⅱ’에 출연하며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3년 그들은 미뤄둔 새 앨범 작업을 시작했고 레코딩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해 6월 예당 변두섭 회장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국카스텐은 완성한 음반을 출시하지 못했다. 그들은 전속계약을 파기하고 나오기 위해 조용히 준비했다. 9월 회사 앞으로 내용증명을 보낸 데 이어 연말에는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에 예당은 맞고소로 대응했다. 그러던 7월 9일 법원은 국카스텐 손을 들어줬다.

    성장통으로 치부하기에 1년 반은 그들에게 너무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곧 공개될 국카스텐의 두 번째 앨범과 행보가 다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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