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6

2014.07.14

밥으로 채울 수 없는 ‘마음의 허기’ 어디서 달래나

노숙인들, 안락한 쉼터 나와 거리로…의식주 해결 못지않게 마음 상처 치유를

  • 이근희 인턴기자·원광대 한의대 2학년

    입력2014-07-14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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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으로 채울 수 없는 ‘마음의 허기’ 어디서 달래나

    서울역 지하도 응급대피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노숙인들.

    7월 7일 새벽 5시 서울역 인근의 한 지하도 입구.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지하철 첫차가 도착하기도 전 노숙인들은 역무원의 출근 발자국에 놀라 눈을 뜬다. 지하철 역 바닥의 한기에 천근만근이 된 몸을 일으킨 이유는 단 한 가지, 밥을 먹기 위해서였다. 조금만 늦으면 남는 음식이 없기 때문이다.

    도시가 기지개를 켜기 전인 새벽 5시 30분. 서울 중구 청파로에 위치한 (사)참좋은친구들의 무료급식소는 불빛이 환했다. 서로 잘 아는 얼굴일 테지만 식탁 앞에 마주앉은 그들은 눈인사 한 번 하지 않는다. 교회 측이 틀어놓은 찬송가만 적막을 깬다. 목사님의 주도로 예배가 시작됐지만 노숙인은 쉴 새 없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예배가 끝나고 배식이 시작되자 뭐가 그리 바쁜지 허겁지겁 밥을 입에 떠 넣는다. ‘LTE’급 속도가 따로 없다.

    급식소와 가까운 곳에 몰려

    “여름에는 일이 없어. 6시 30분 넘어 용역사무실에 가면 이미 꽝이지. 일은 적고, 하려는 사람은 많고. 이젠 노임마저 칼질을 하는구먼.”

    바쁘게 밥 두 그릇을 비운 한 노숙인은 그렇게 말하곤 바삐 급식소를 나선다. 20년 전 서울역 지하도에서 노숙인 무료급식을 시작한 참좋은친구들의 주요한 목사는 무료급식소 운영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이곳을 찾는 노숙인이 하루 100명 정도 되는데, 노숙인 중에는 쪽방이나 고시원에 사는 분도 있죠. 신분이 불명확한 분들은 일을 얻기 힘들 거든요. 한 달에 많이 벌어 봤자 30만~40만 원인데 그중 주거비가 20만 원 넘게 드니 식사를 이곳에서 해결하는 거죠. 만약 무료급식소가 없다면 그분들 다 거리로 나왔을 겁니다. 문제는 시 지원이 적다는 거죠. 90%가 후원입니다.”

    2014년 5월 1일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서울 지역 노숙인은 4265명으로 그중 3521명이 50개 노숙인 시설에 들어가 있고, 나머지 744명이 거리 노숙 중이다. 서울시는 예산 235억 원(2013)을 들여 노숙인 주거시설(쉼터)을 위탁운영하고 있지만 실제 그곳에 들어가지 않는 노숙인도 적지 않다. 견딜 수 없는 더위에도 이들이 쉼터를 찾지 않고 거리로 나가는 이유는 많다. 시설 내에서 지켜야 하는 각종 규범이 싫은 데다 낙후된 시설도 한몫하고 노숙인 간 알력다툼도 문제다.

    오후 2시, 서울역 인근에서 노숙인 시설을 운영하는 서울특별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서울역 희망지원센터를 찾았다. 도착하자마자 직원들이 뛰쳐나간다. 서울역 3번 출구 쪽에 노숙인이 쓰러져 있다는 전화가 위기대응콜(1600-9582)로 걸려왔기 때문이다. 희망지원센터는 서울역사와 광장, 지하도 등에 기거하는 노숙인의 생활을 돌보고 있다. 희망지원센터 이종만 실장은 “여름에는 한 달에 몸무게가 6~7kg은 빠질 정도로 힘들다. 하지만 위험에 처한 노숙인분들을 돕고, 사회로 돌아가는 이들을 보면 보람이 크다. ‘노숙인은 왜 다 저러느냐’는 식의 접근으로는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가 좀 더 그들을 이해하고 다가가려 해야 노숙인 복지가 활성화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오후 3시, 혹서기와 혹한기에 일시적으로 열리는 서울역 지하도의 응급대피소에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노숙인 20명 정도가 무더위를 피해 들어와 있었다. 시큼털털한 냄새가 에어컨을 따라 방에 깔려 있었다. 군대 내무반처럼 생긴 긴 방에서 노숙인들은 맥 빠진 얼굴로 누워 있었다. 내일이 그려지지 않는 현실에 낙담한 이들의 한숨이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곳에서 만난 권모(35) 씨는 노숙인의 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년 정도 노숙 생활을 하다 지금은 고시촌에 정착한 사람이었다.

    “특히 여름과 겨울이 일자리가 적죠. 아침에 용역사무실에서 일을 구하지 못하면 폐지를 줍거나 종교단체에서 200~300원씩 주는 용돈(일명 ‘짤짤이’)을 받으러 하루 종일 돌아다닙니다.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죠. 술을 입에 대면 끝이에요. 저도 지난달까지는 공공근로를 하며 월 70만 원 정도를 벌었지만 지금은 기한이 끝나 쉬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다시 못 구하면 언제든 거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죠.”

    밥으로 채울 수 없는 ‘마음의 허기’ 어디서 달래나

    서울역에서 성경을 필사 중인 노숙인 정모 씨.

    오후 4시 30분. 불볕더위가 서울역 광장을 삼킬 듯 위협하던 시각, 인근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노숙인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양이 차지 않았는지 음식물 쓰레기통 거름망에 놓인 면을 자기 컵라면 용기에 가져다 담았다. 안 된 마음에 삼각김밥과 우유를 사드렸지만 “나 거지 아니야”라며 도리어 화를 냈다. 갑자기 내민 손이 부끄러워졌다.

    허둥지둥 도망치듯 편의점을 빠져나오는 순간, 일방적인 지원만으론 노숙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많은 종교단체의 무료급식 봉사, 노숙인 1인당 1000만 원이 넘는 서울시 지원, 서울시내 전체 노숙 인원을 수용하고도 남을 노숙인 시설, 많은 사회복지사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노숙인의 수가 줄지 않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모든 지원이 너무 의식주 해결에만 몰려 있는 나머지 그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치료하는 데는 아직 행정력이 미치지 않고 있었다. 더위 탓인지 양손에 들고 있는 삼각김밥과 우유가 메스껍게 느껴졌다.

    노숙인 78.6%가 정신질환 앓아

    “신기하죠? 이걸 쓰기 시작한 다음에는 마음이 편하다니까요. 한때 나도 술만 먹고 난동을 피웠지만 그런 사람은 노숙인 중 소수예요. 중국집 하다 망하고 노숙 생활 10년째인데 온갖 노숙인을 다 만나봤어요. 노숙인이 되고 싶어 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모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죠. 색안경 끼지 말고 우리가 다가가면 도망가지 말아주세요. 자꾸 밀어내니까 우리끼리 모이는 거예요. 약간의 관심만 주세요.”

    편의점을 빠져나와 마주친 노숙인 정모(68) 씨는 바닥에 ‘마태복음’을 펴놓고 공책에 옮겨 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 속에 어쩌면 노숙인 문제를 해결할 근본 대책이 담겨 있는 듯했다.

    저녁 8시, 해는 졌지만 더위가 아직 빠져나가지 않은 지하철 종각역. 서울시 노숙인 정신보건전문상담팀을 만났다. 상담원 7명이 주 2회 야간에 길거리로 직접 나와 알코올질환과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노숙인을 대상으로 상담과 진료를 병행하고 있었다. 필요한 경우는 바로 병원에 입원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노숙인의 78.6%가 정신질환을 갖고 있지만 직접 거리로 나와 제대로 된 정신 상담과 치료를 해주는 단체는 이곳밖에 없다는 점. 상담팀을 따라 거리에서 노숙인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만 반복했다. 반면, 상담팀의 홍일점 이인선 정신보건 간호사는 아주 친숙하게 웃으며 안부를 묻고 대화를 시도했다.

    “갑자기 말을 걸고 다가가면 방어적인 반응을 보이며 무서워해요. 자주 만나면서 얘기를 해야지 그나마 말이라도 받아주죠.”

    밤 11시 지하철 을지로입구역. 상담팀의 촉탁의인 노정균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지하도에서 종이박스로 집을 짓고 사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숙인이 올려다보지 않도록 자세를 낮춘 채 말을 거는 모양새가 이미 이 세계의 베테랑이었다.

    “물론 의식주 제공이 가장 시급한 문제죠.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그것을 얻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일도 중요합니다. 정신질환이 있는 노숙인을 치료해 자립하게 해주는 게 우리 임무죠. 우리 팀이 서울시 전체를 감당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불평하는 건 아니지만 더 많은 상담팀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지하도를 지나가는 시민들이 노숙인에게 낮은 자세로 말을 거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힐끔힐끔 상담팀을 쳐다봤다. 그들의 눈빛은 다름 아닌 어제까지 노숙인을 바라보던 내 눈빛이었다. 갑자기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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