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5

2014.07.07

잘나가던 시의원 상상 초월 ‘엽기 행각’

김형식, 살인교사로 잡히고도 발뺌…“죽은 재력가는 스폰서” 형량 낮추기 발버둥

  • 강은지 동아일보 기자 kej09@donga.com

    입력2014-07-07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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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나가던 시의원 상상 초월 ‘엽기 행각’

    7월 3일 서울 강서경찰서는 김형식 서울시의회 의원을 살인교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의정활동을 굉장히 열심히 해 촉망받는 의원이었어요. 한마디로 ‘좋은 친구’라고 불렸죠.”(서울시의회 A의원)

    “성격도 좋고, 주변 의원들과 마찰도 없었어요. 굉장히 서글서글하고 깨끗한 친구라고 생각했죠. 근데 진짜예요?”(서울시의회 B의원)

    6월 30일 기자가 서울시의회 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렸는데 의원들의 평가는 한결같았다. 성실하고 예의 바르며 일 잘하는 의원. 이른바 ‘강서구 재력가 살인사건’의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된 김형식(44) 서울시의회 의원(강서 제2선거구)에 대한 얘기다. 김 의원은 3월 3일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S빌딩에서 둔기에 맞아 숨진 송모(67) 씨를 살해하라고 교사한 혐의로 6월 26일 구속 수감됐다. 김 의원에게 부탁받고 송씨를 살해한 뒤 중국으로 도주한 팽모(44) 씨도 중국 공안에 잡혀 24일 한국으로 신병이 인도된 뒤 살해 혐의로 구속됐다.

    김 의원은 한신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노무현 대선후보 캠프 기획의원과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을 지냈다. 10년 동안 민주당 신기남 의원의 보좌관을 지내다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회 의원에 당선한 뒤 이번 6·4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간 도시계획관리위원회와 운영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101건의 조례 개정안을 낼 정도로 의정활동도 활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었지만 체포 직후 탈당했다.

    “사람 한 명만 죽여달라”



    잘나가던 시의원 상상 초월 ‘엽기 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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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빌려준 7000만 원 안 갚아도 되니까, 사람 한 명만 죽여줄 수 있을까.”

    2012년 12월 경기 부천의 한 식당. 촉망받는 정치인이던 김 의원은 10년 지기 팽씨에게 엄청난 말을 꺼냈다. 김 의원은 “송 사장(송모 씨)에게 5억 원 정도 빌렸는데, 자꾸 갚으라는 압박이 커 괴롭다”고 친구에게 호소했다. 팽씨는 2007년 김 의원에게 사업자금으로 7000만 원을 빌렸지만 다음 해 부도가 났고 중국을 오가며 보따리 장사를 하던 차였다.

    김 의원의 압박은 계속됐다. 팽씨 지인은 “팽씨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수시로 전화했고 ‘서울로 올라오라’고 했다”고 전했다. “너 나한테 빚 있잖아” “한 번만 도와줘라” “네 가족은 내가 책임질게”란 말을 계속 들었다고 했다. 기자가 만난 팽씨 부인 A씨는 “거의 세뇌 수준으로 ‘죽여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팽씨는 ‘잘나가는 시의원 친구’ 김 의원을 자랑스럽게 여겨 평소에도 주변에 자주 이야기하고, 자다가도 김 의원 전화라면 벌떡 일어나 받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1월부터 팽씨는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위장약을 달고 살면서 담배만 늘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A씨는 ‘사업이 잘 안 돼 저렇게 괴로워하나 보다’고 짐작하며 남편을 안쓰러워했다.

    잘나가던 시의원 상상 초월 ‘엽기 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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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3일 오후 8시쯤 팽씨는 인천의 한 사우나에 갈아입을 옷을 맡겨둔 채 택시를 두 번 갈아타고 서울 강서구 S빌딩으로 갔다. 두 시간 전 김 의원과 통화한 이후였다. 그 뒤 0시쯤 S빌딩에 들어갔지만 그냥 되돌아 나왔다. 팽씨는 “송씨를 죽이려고 갔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3월 2일 오후 8시쯤 김 의원은 팽씨에게 전화해 “이번이 마지막이다. 꼭 죽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똑같은 방식으로 S빌딩에 들어간 팽씨는 3일 0시 40분쯤 3층 사무실에 들어오는 송씨에게 손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마음이 약해진 팽씨는 도끼날 부분이 아닌 뒷부분으로 송씨를 공격했다. 팽씨가 망설인 정황은 송씨 부검 결과 밝혀진 10여 개의 주저흔(흉기로 찌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망설여 치명상을 가하지 못한 상처)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후 팽씨는 김 의원이 일러준 대로 폐쇄회로(CC)TV가 없는 골목길을 돌아 택시를 4번 갈아타고 인천의 사우나로 돌아간 뒤 다시 택시를 두 번 갈아타고 인천 연수구의 산에 가서 피 묻은 옷 등을 불태웠다. 김 의원에겐 사전에 살인이 성공할 경우 문자메세지로 보내기로 한 암호인 ‘!’를 보냈다. 실패할 경우엔 ‘?’를 보내기로 했었다. 그리고 사흘 뒤 중국으로 출국했다.

    치밀하게 준비한 탓에 사고 발생 초기 경찰은 용의자 파악에 난항을 겪었다. 서울 강서경찰서 강력계 형사 35명은 3개월여 동안 주말을 반납하고 CCTV 1500여 대와 서울, 인천의 택시 3만여 대를 추적했다. 보름 만에 극적으로 팽씨 신원을 확인했지만 이미 중국으로 출국한 뒤였다. 바로 인터폴 적색 수배를 요청하고 팽씨 주변을 캐기 시작했다.

    3개월간 CCTV 1500개 분석

    곧 통화기록에서 김 의원이 특정됐고, 송씨의 금고에서 나온 5억2000만 원 차용증에 김 의원의 지장이 찍혀 있는 걸 확인했다. 경찰이 김 의원에 대한 내사에 착수한 사이, 김 의원은 선거운동을 했고 시의원에 재선됐다. 경찰은 강서경찰서 바로 앞에 차린 김 의원의 선거운동 사무실을 바라만 봐야 했다. 강서경찰서 장성원 형사과장의 체중은 그동안 5kg이 줄었다.

    팽씨는 5월 22일 중국 선양에서 체포되고 약 한 달 후인 6월 24일 한국으로 신병이 인도됐다. 팽씨와 김 의원은 강서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 처음 팽씨를 유치장에서 만난 김 의원은 “친구야, 미안하다”고 말을 건넸다. 중국 공안에 체포됐을 당시 팽씨와 전화 연결이 될 때마다 “죽어달라” “네가 죽지 않으면 나도 죽는다”고 매달려 팽씨가 대여섯 차례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했고 이후 한국에 압송된 터였다. 팽씨와 김 의원이 구속되면서 수사는 속도를 냈다.

    경찰은 숨진 송씨가 김 의원에게 자기 소유 토지의 용도를 변경해달라며 돈을 건넸고, 김 의원이 이를 처리하지 못하다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강서구는 2012년 발산역 인근을 일반주거지역에서 상업지역으로 용도 변경하는 안을 입안했으나 무산된 바 있다. 장 형사과장은 7월 1일 “김 의원이 2010∼2011년 돈을 받고 용도 변경을 신경 쓰다 부탁을 못 들어주게 됐고,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물러설 곳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특히 송씨가 용도 변경을 확신하고 미리 자신의 건물 증축 설계까지 진행한 정황도 파악됐다. 경찰에 따르면 2012년 송씨는 잘 아는 건축사에게 “상업지역으로 전환되면 건물을 증축할 테니 설계도면을 그려보라”고 주문했다. 이 건축사가 “일반주거지역이라 곤란하다”고 하자 송씨는 “김형식 의원이 해주기로 했다. 2014년 5월(6·4 지방선거 전)까지 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는 것.

    하지만 김 의원은 여전히 범행의 모든 책임을 팽씨에게 돌리고 있다. 김 의원 측 변호인 의견서에 따르면 김 의원은 “시의원으로서 의리는 있으나 깡패인 팽씨와의 만남을 가급적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고 했고 또 “팽씨와 술자리를 갖는 걸 아내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대포폰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또 김 의원은 “팽씨가 송씨를 상대로 강도짓을 하려다 살인한 것”이라고 몰아갔지만 송씨 사무실에 침입한 팽씨가 수백만 원이 든 돈 가방을 발견하고도 돈은 그냥 둔 채 서류봉투만 빼내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 팽씨는 “김 의원이 찾아오라고 한 차용증을 찾으려고 서류만 뒤졌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 의원과 숨진 송씨만 아는 차용증의 존재를 팽씨가 안다는 것 자체가 살인교사의 정황이라고 보고 있다.

    조사 계속하자 묵비권 행사

    그러자 김 의원은 자신의 도덕성을 스스로 깎아내렸다.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 송씨를 ‘스폰서’라며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 영수증 처리를 해주고 지역 행사 후원을 부탁하면 들어주는 사이”라고 소개했다. 변호인 의견서에 ‘정치인들은 흔히 후원을 받으면서 정치자금법 위반을 회피하려고 차용증을 작성한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살인교사를 인정하기보다 차라리 스폰서에게 접대받는 정치인임을 인정하는 게 형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영장실질심사에선 팽씨와 대포폰으로 통화한 이유에 대해 “팽씨와 단둘이 룸살롱 등 은밀한 곳에 가기 위해”라고 황당한 답변을 하기도 했다.

    6월 24일 경찰에 체포된 뒤 적극적으로 자신을 방어하던 김 의원은 6월 30일 오후부터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경찰은 차용증과 통화기록, 팽씨의 일관된 진술을 토대로 김 의원을 살인교사 혐의로 7월 4일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송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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