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3

2014.06.23

‘비와 로맨스’ 우산을 펴면 당신도 주인공

우산의 숨은 매력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입력2014-06-23 11:4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비와 로맨스’ 우산을 펴면 당신도 주인공
    영화 ‘셸부르의 우산’(The Umbrellas Of Cherbourg·1964)을 기억하는 이가 많다. 직접 영화를 보지 못한 2030세대라도 최소한 영화 제목은 알 것이다. 이 고전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카트린 드뇌브 분)은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항구도시 셸부르에 사는 우산 상인의 딸이다.

    사실 ‘셸부르의 우산’은 영화가 나오기 전부터 있던 우산 브랜드로, 1800년부터 우산제조 가업을 승계해온 이본(Yvon)가에서 이와 같은 이름(Le Veritable Cherbourg·셸부르의 우산)의 우산을 만든다. 100년 된 천연나무로 손잡이와 대를 만들고, 골프채에 사용하는 최고급 카본 스틸로 프레임을 만들며, 브랜드를 자수로 새겨넣고 제품별로 일련번호를 관리하는 명품이다. 프랑스 엘리제궁에서 대통령 국빈 선물로 선정하기도 했고, 사르코지 전 대통령 임기 때는 이본가가 대통령궁에 근접 경호를 위한 방탄용 우산을 납품한 적도 있다. 시속 100km 강풍에도 충분히 견딘다는 이 브랜드 광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예전엔 프랑스에 다녀오면서 이 우산을 사오는 사람이 꽤 있었는데, 최근 한국에서도 팔기 시작했다.

    집중호우에 우산도 달라져

    ‘비와 로맨스’ 우산을 펴면 당신도 주인공
    사실 편의점에서 파는 3000원짜리 일회용 우산도 비를 피하는 데는 꽤 유용하다. 다만 우산을 든 사람이 느끼는 만족도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작은 사치’는 우리가 모두 갖고 있는 일상적인 물건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태도에서 출발하는데, 우산은 그렇게 하기에 적당한 물건이다. 집집마다 있는 우산이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통해 특별한 매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6월 하순에서 7월 중순 사이 장마가 오고, 태풍도 수차례 지나간다. 한 해 내릴 비의 절반 이상이 여름에 오는 데다, 시간당 100mm씩 쏟아지는 국지성 집중호우도 최근 크게 늘어 우리나라 기후가 온대에서 아열대로 바뀌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렇게 기후가 달라지다 보니 우산도 좀 달라졌다. 길고 큰 장우산의 인기가 높아진 것이다. 물론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대비하려면 가방 안에 넣기 편한 작은 우산도 여전히 필요하다. 어쩌면 이제는 비가 작정하고 내리는 날에 쓸 장우산과 애매하게 내리는 날 쓸 2단 우산, 그리고 맑은 날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대비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접이식 우산까지 3개 정도는 갖춰야 할 때가 됐는지도 모른다.



    우산은 직접 사기보다 기념품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우리 집에도 세어보니 장우산 4개, 접이식 우산 8개가 있다. 그중 돈 주고 산 건 3개뿐이다. 우산이 흔한 기념품인 게 분명하다. 그런데 공짜로 받은 우산은 비를 피하는 데는 요긴해도 비 오는 날 낭만을 느끼기엔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비와 로맨스’ 우산을 펴면 당신도 주인공

    영화 ‘셸부르의 우산(왼쪽)’과 ‘사랑은 비를 타고’ 포스터.

    내가 좋아하는 우산은 유명 디자이너 티보 칼맨(Tibor Kalman)이 만든 하늘 우산(Sky Umbrella)이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파는 이 우산은 비 오는 날에도 파란 하늘을 보게 해준다. 우산을 펼치면 한가득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보이기 때문이다. 외피는 검은색이라 남들 눈엔 그냥 검은색 우산처럼 보이지만, 내피는 파란 하늘이어서 쓴 사람만 비 오는 날의 파란 하늘을 독점적으로 만끽할 수 있다. 이 우산은 ‘짝퉁’이 꽤 많이 돌아다니는데, 진짜와 가짜는 하늘빛이 참 다르다. 우산 하나에도 일상의 작은 사치가 녹아 있는 셈이다.

    영국 신사의 소지품에서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 바로 우산이다. 맑은 날엔 지팡이 구실을 하는 이 우산은 비가 오면 본색을 드러낸다. 사실 영국 신사는 자신뿐 아니라 숙녀를 위해 상시적으로 우산을 갖고 다녔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워낙 비가 자주 내리다 보니 영국인들은 가랑비 정도에는 우산을 잘 쓰지 않는다. 옷깃을 세우거나 후드티셔츠 모자를 쓰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 게 보통이다. 그럼에도 우산을 써야 할 때가 있다. 말 그대로 비가 제대로 올 때다.

    비 오는 날 우아함과 여유

    ‘비와 로맨스’ 우산을 펴면 당신도 주인공

    6월 10일 서울 중구 소공로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있는 디자인 스토어 ‘모마숍’에 예술작품을 모티프로 한 ‘모마 우산’ 매장이 들어섰다.

    비와 깊은 인연이 있는 나라인 만큼, 영국에는 우산만 전문적으로 파는 매장이 많고, 명품 우산 브랜드도 많다. 그중 ‘블런트(Blunt)’라는 브랜드의 우산은 시속 117km 강풍을 견뎌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압력을 효과적으로 분산하는 디자인을 적용해 웬만한 태풍에도 뒤집어지거나 부러지지 않는다. 한두 번만 털면 물기가 다 제거되는 것도 특징이다.

    요즘 우리나라 소비자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오스트리아의 도플러(Doppler)는 접이식 우산으로 유명하다. 알루미늄이나 유리섬유 등 초경량 소재로 우산살을 만들어 휴대하기 좋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산 브랜드인 협립우산도 1953년 설립된 전통 명가다. 모든 국민이 살면서 한 번씩은 이 우산을 써보지 않았을까 싶은데, 외국 명품 우산도 많지만 우리나라 우산도 충분히 사치할 대상이 된다.

    우산의 매력이 잘 드러난 영화로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1952)도 있다. 주인공이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뛰면서 춤추던 장면은 영화 역사상 손꼽히는 명장면 중 하나다. 때마침 지금 서울에서 이 작품의 뮤지컬 버전이 공연 중이다. 장마철을 겨냥해 비와 로맨스를 매력적으로 보여주려 한 듯하다.

    그러고 보면 우산은 참 로맨틱한 도구이기도 하다. 우산을 쓰면 그 공간은 온전히 자기 것이 된다. 여기에 남녀가 같이 들어가면 둘만의 특별한 공간이 된다. 이 매력적인 공간을 위해 자기만의 특별한 우산을 하나 가져보는 건 어떨까. 좋은 우산이 하나 있으면 비 오는 날에도 우아함과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아마 장마나 국지성 호우도 결코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잊었던 로맨스나 설렘을 다시 찾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우산은 그저 비만 피하는 도구가 아닌 거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