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3

2014.06.23

北, 관광객 3번째 억류 미국 압박 ‘인질 작전’?

대북 원칙론 오바마 행정부에 경고 및 협상 카드로 활용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4-06-23 10: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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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미국인을 또 억류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금까지 북한이 억류하고 있는 미국인은 모두 3명으로 늘었다. 4월 29일 방북한 관광객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56) 씨가 관광 목적에 맞지 않은 위법한 행동으로 해당 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전했다. 일본 교도통신은 파울 씨가 5월 중순 호텔 체크아웃 과정에서 객실에 성경을 남겨둔 채 나왔는데 북한이 이 때문에 그를 억류했다고 보도했다. 파울 씨 부인은 변호인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남편이 북한에 간 목적은 전도가 아니라 관광이었다고 밝혔다.

    북한이 억류하고 있는 또 다른 미국인 2명은 2012년 11월 체포된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 씨와 4월 붙잡힌 밀러 매슈 토드 씨다. 케네스 배 씨는 15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1년 8개월째 억류 중이다. 종교 활동을 통한 국가전복 혐의가 적용됐다. 토드 씨는 관광증을 훼손한 혐의 등으로 체포됐다고 언론에 보도됐다. 북한은 한국인도 1명 억류하고 있다. 개신교 선교사 김정욱 씨가 현재 9개월째 억류된 상태다. 북한은 5월 31일 김씨에게 무기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3번째 미국인이 북한에 억류된 사실이 공개되자 미국 정부는 “억류나 체포 위험이 있기 때문에 미국 시민은 북한을 여행하지 말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고 밝혔다. 앞서 5월 하순에도 미국 정부는 “북한 당국이 미국 시민을 임의로 구금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북한 여행을 자제하라”는 경보를 발령했다.

    거물급 인사 방북 협상 카드?

    北, 관광객 3번째 억류 미국 압박 ‘인질 작전’?

    2012년 11월 북한 나선시에 관광 차 입국했다 억류된 케네스 배 씨.

    북한이 미국인을 잇따라 3명이나 억류하고 이를 발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북한이 최근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꽤 열을 올리는 상황인 것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식으로 억류하면 외국인의 북한 관광 발길은 당연히 위축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이렇듯 ‘인질 전략’이라는 무리수를 두는 까닭은 대북 원칙론을 강조하는 오바마 행정부를 더욱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억류 중인 케네스 배 씨의 석방 문제를 논의하려고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 파견 의사를 수차례 밝혔지만, 북한은 그의 방북을 거부하고 있다. 과거 전례를 살펴보면 북한은 ‘로버트 킹’ 정도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북한은 2009년 북·중 국경 지대를 취재하던 미국 여기자 2명을 억류했을 때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찾아오자 이들을 석방했다. 또 2010년 아이잘론 말리 곰즈 씨를 억류했다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찾아오자 풀어줬다. 전직 대통령이 와서야 비로소 선심 쓰듯 억류자들을 풀어준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은 최근 자신의 회고록 ‘어려운 선택들’(Hard Choices)에서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비화를 공개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고위급 특사단이 방북하면 두 미국 여기자의 석방이 가능하다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언급했다는 말을 들었다. 김정일 위원장이 마음에 두고 있는 인물은 놀랍게도 남편인 빌 클린턴이었다. 그런데 빌 클린턴의 방북 계획에 대해 백악관의 일부 참모는 반대했다. 미국 전직 대통령의 방북이 김정일 위원장의 잘못된 행동을 보상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고, 동맹국들에 우려를 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남편의 방북 의사를 적극 피력하자 오바마 역시 이에 흔쾌히 동의하면서 남편의 방북이 추진됐다. 북한 입장에서는 전직 미국 대통령이 나선 구출 작전을 통해 국제적 관심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이러한 전례에 비쳐보면 미국인을 3명이나 ‘인질’로 잡아두고 있는 북한은 ‘거물급’이 와서 자신들과 협상해야만 이들을 내줄 것이라고 짐작 할 수 있다.

    관광객 억류 사실이 알려진 이후에도 미국인의 북한 관광 발길은 여전히 끊기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이 추가로 미국인을 억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오바마 행정부에게는 북한의 잇따른 미국인 억류 문제가 자칫 선거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북한은 이러한 미국 정치권의 흐름을 읽고 미국 압박과 협상용 카드로 ‘인질 작전’을 펼칠 개연성이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김정은 체제의 북한과 2012년 2월 첫 공식 회담을 가진 뒤 공식·비공식 회담을 2년 이상 계속해오고 있다. 필자는 오바마 정부와 김정은 체제 북한의 첫 공식 회담을 취재했다. 먼저 북·미 간 가장 최근 만남부터 살펴보자. 최근 만남은 북한이 3번째 미국인을 억류한 직후인 5월 하순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이뤄졌다.

    5월 하순 북·미 몽골 회동

    北, 관광객 3번째 억류 미국 압박 ‘인질 작전’?

    2012년 2월 24일 오바마 행정부를 대표해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과 첫 공식 회담을 열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용호 외무성 부상 등 정부 측 인사가, 미국에서는 민간인 신분의 인사가 나왔다. 양측은 북핵 문제 등 다양한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몽골 회동에 대해 미국 측 참여 인사들이 민간인 신분이란 점을 들어 민간 채널의 만남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을 듯하다. 민간 채널이라고는 하지만 참석자가 비중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미국 측 참석자 가운데 로버트 아인혼이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아인혼은 1년 전인 지난해 5월까지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보를 맡았던 인물로 북한과 이란 등에 대한 제재를 주도하기도 했다. 또 다른 미국 측 참여 인사는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초빙교수와 로버트 칼린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연구원 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몽골 회동에서 북·미 인사들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가시적 성과를 도출해내지는 못한 것으로 관측된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과 오바마 행정부의 미국이 처음 공식 회담을 한 것은 2012년 2월 하순 중국 베이징에서다. 북한에서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대표단이, 미국에서는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이끄는 대표단이 참가했다. 당초 이 회담은 바로 전해인 2011년 12월 예정돼 있었다. ‘김정일 사망’이라는 돌발 사태가 발생하면서 북한의 모든 일정이 중단돼 두 달 정도 늦춰진 것이다.

    당시 회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첫 북·미 간 회담, 김정은 체제의 첫 공개적 외교 무대라는 상징성 때문에 큰 관심의 대상이었다. 한국은 물론 중국 등 6자회담 당사국은 회담 진행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우리 정부 관계자들도 베이징에 도착해 회담 동향 파악에 적극 나섰고, 서울의 외교통상부 출입 기자 상당수도 베이징에 도착했다.

    2월 23일 시작한 회담은 하루 더 연장해 그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회담은 베이징의 북한대사관과 미국대사관에서 번갈아 열렸다. 당시 북·미 회담의 핵심 포인트는 북한이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중단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등 비핵화의 핵심 사전조치 이행을 약속하고, 미국이 이에 화답해 대북 식량지원을 하는 문제였다.

    이틀에 걸쳐 자주 생방송에 참여해야 했던 필자는 회담장에 파견된 외교통상부 출입 기자와 수시로 연락하며 시시각각 회담 관련 취재를 이어갔다. 회담은 순조로워 보였다. 2월 24일 오후 회담은 끝났고 데이비스 특별대표는 이날 오후 4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회담 결과는 어땠을까.

    2·29 합의 후 실행 안 해

    베이징 외교가의 소식통 3명을 상대로 취재한 결과 이들로부터 공통된 답변을 얻어냈다. “회담이 매우 잘됐다”는 것이었다. 회담이 끝난 후 미국 대표단 측이 우리 정부에 ‘내실 있고 유익한 대화’라는 내용으로 공식 통보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 정도면 협상이 타결됐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를 묻자 “아직은 협상 타결이라고 할 수 없다. 양측 다 본국으로 돌아가 최종 결심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변이 없는 한 협상 타결 방향으로 가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북·미 회담이 타결된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를 작성한 후 한 차례 더 확인 작업을 거쳤다. 회담 취재를 위해 서울에서 베이징 회담장으로 온 외교통상부 출입 후배 기자에게 취재 내용에 대해 재확인을 부탁한 것. 후배 기자는 현장에서는 그 정도까지 취재가 되진 않았지만 가능성이 크니 ‘사실상 타결’ 정도로 제목을 붙인다면 문제가 없다고 본다는 답변을 전해왔다.

    곧바로 ‘북·미 고위급 회담 사실상 타결’ 제목으로 속보를 타전했다. 데이비스 특별대표의 기자회견을 바로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데이비스의 입에서는 필자가 취재한 내용의 발언이 나오지 않았다. “진지하고 유용한 회담이었다. 핵심 쟁점에서 ‘약간의 진전’이 있었다” 정도의 멘트였다.

    데이비스 특별대표의 발언이 알려지자 곧바로 데스크로부터 “이게 무슨 협상 타결이냐”라는 추궁이 이어졌다. 정부 간 회담의 진행 과정, 그리고 결과를 당장 발표할 수 없는 현실을 모르는 다급한 추궁이었다. 답답했다. 하지만 이날 저녁부터 협상이 상당히 잘됐을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인 2월 29일 밤 11시(한국시간) 북한과 미국 정부는 북·미 고위급 회담 결과를 동시에 발표했다. 이른바 2·29 합의였다.

    2·29 합의는 미국이 북한에 식량 지원을 해주는 대가로 북한은 비핵화 사전 조치를 이행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북한의 비핵화 사전 조치에는 우라늄농축프로그램 중단과 핵·미사일 실험 유예, IAEA 감시단의 입북 허용 등이 포함돼 있다. 베이징에서의 북·미 협상이 타결됐음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2·29 합의는 합의로만 끝나고 실행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북한과 미국의 합의문 공동 발표가 있고 한 달여 뒤인 4월 13일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곧바로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과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공들여 내놓은 첫 작품이 한순간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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