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2

2014.06.16

家口가 변하면 다 변하는 거야

경제 활동과 자산운용은 물론 은퇴 후 삶에도 혁명 예고

  •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4-06-16 09:4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家口가 변하면 다 변하는 거야

    황혼이혼 등으로 노인독신가구는 1994년 13.6%에서 2011년 19.6%로 늘었다.

    경제 생활의 기초는 ‘가구(家口·household)’다. 가구는 가족(family)과 비슷하지만 다른 개념이다. 사전적으로 가족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나 그 구성원을 말하며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네이버 국어사전 참조). 가족은 핏줄 개념에 가깝다. 반면 가구는 더 경제적이다. 사전적 정의도 ‘1. 집 안 식구 2. 집 안의 사람 수효 3. 현실적으로 주거 및 생계를 같이하는 사람의 집단’이다.

    가구 구성과 라이프스타일이 변하면 사람의 경제 활동도 바뀐다. 특히 은퇴와 관련해 가구 변화는 중요하다. ‘어디서 누구와 사느냐’는 노후 삶의 질과 직결되는 문제다. 자산운용에서도 가구 변화는 핵심 고려 사항이다. 자식과 같이 사는 가구와 노부부만 사는 가구의 생활방식이 다르듯, 가구 변화에 맞는 자산운용 계획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 사회는 조용하지만 혁명적인 가구 변화를 맞고 있다. 늘어난 수명, 고령화, 늦춰진 자녀의 독립 시기, 사회적 유대관계의 변화 등으로 삶의 기초라 할 수 있는 가구의 근간이 변하는 것이다.

    노인부부 및 독신가구 증가세

    먼저 노인가구 형태가 ‘자녀동거가구와 노인부부가구’에서 ‘노인부부가구와 노인독신가구’로 급속히 변하고 있다. 1994~ 2011년 18년 동안 자녀와 동거하는 노인가구 비율은 54.7%에서 38.6%로 약 16%p 감소했다. 반면 노인부부가구는 같은 기간 26.8%에서 48.5%로 21.7%p나 증가했다. 노인독신가구 증가세도 만만찮다. 94년 13.6%에서 2011년 19.6%로 늘어났다. 대략 노인가구 다섯 곳 중 한 곳은 독신가구인 셈이다(‘노인의 가족 형태 변화에 따른 정책과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노인부부가구와 노인독신가구의 증가는 부부만 보내는 시간의 확대와 여성노인독신가구 증가로 이어진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부부 둘만 보내는 시간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길어진 부부만의 시간에 더해 여성에겐 또 하나의 고려 사항이 있다. 10년 정도 혼자 사는 시기를 보내야 한다. 여성의 혼인 나이는 남성보다 3~4세 적다. 반면 수명은 6~7세 길다. 그런데 평균적으로 배우자 가운데 남성이 먼저 사망할 확률이 높다. 과거에는 배우자 사망 시 자녀와 동거했지만 이제는 독신가구로 남고 있다. 그 기간이 대략 10년이다.

    家口가 변하면 다 변하는 거야

    대한의사협회와 한국노바티스가 마련한 ‘5대 가족 찾기 캠페인’에서 ‘풍성한 가족상’을 수상한 박봉순 씨 가족.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자녀의 독립 시기가 점점 늦춰지고, 결혼 후 독립한 자녀와는 근거리 가족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성인이 되면 독립하는 서구 사회와 달리 우리나라는 자녀의 독립이 결혼이란 이벤트를 통해 이뤄진다. 자녀의 결혼 시점이 늦춰지면 자녀와의 동거 기간 증대로 연결된다. 이는 자칫하면 자녀 양육 기간의 증대로 이어져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몇몇 연구에 의하면, 독립하지 않은 자녀는 생활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립한 자녀와의 관계는 근거리 가족화되고 있다. 자녀와의 동거 비율은 감소하지만 거주 거리는 가깝게 유지되고 있다. 도보 30분 이내가 20%, 자동차로 30분 이내는 24.1%로 50% 정도가 도보든 자동차든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산다. 자동차로 30분~1시간의 비율은 20.5%이다. 자동차를 기준으로 1시간 이내에 사는 가구는 44.6%에 이른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독립적으로 생활하지만 거리는 가까운 근거리 가족 형태가 일반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가구 변화가 자산운용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자. 일차적으로 여성의 처지를 살펴보자. 여성은 혼자 사는 10년이라는 기간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현 제도는 대부분 남성 가구주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은 전업주부라면 배우자 사망 시 유족연금을 받는다. 유족연금은 배우자가 생존해 있을 때 받던 기본연금액의 60%만 받게 돼 실제 연금수령액은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남편 유고 시 여성의 소득을 위해 여성 명의로 된 연금상품 등에 가입해둘 필요가 있다. 시간차를 두고 연금 수령 시점을 설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남편이 가입한 연금이나 금융상품을 앞당겨 쓰고, 자기 명의의 연금 등은 나중에 지급받는 것이다. 맞벌이부부는 당연히 각자 명의로 된 통장을 만들어 ‘연금 맞벌이’를 하는 게 좋다.

    자녀의 독립 시기가 늦춰지는 것에도 대비해야 한다. 자녀가 소위 말하는 일류 직장에 취업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난다면, 독립 시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은 알 수 없는 법. 설령 일류 대학 일류 직장을 나와도 경제적 관념이 희박해 이류 인생을 살 수도 있다. 따라서 학업에만 ‘올인’하지 말고 자녀가 올바른 경제관념과 독립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자녀의 경제교육이 선택 과목이 아닌 필수 과목인 시대가 온 것이다.

    가정으로의 귀환인가 해방인가

    길어진 부부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은퇴생활의 질을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다. 최악의 경우 황혼이혼으로 정신적, 물질적 고통의 시기를 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은 은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예를 들어 남편은 퇴직을 ‘가정으로의 귀환’이라는 프레임(Frame)으로 보지만 아내는 ‘가정으로부터 해방’으로 본다. 프레임의 불일치는 생각의 불일치로 이어지고, 이는 불화 원인이 된다. 따라서 남성은 어떤 형태로든 자기만의 일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소득까지 있는 일이라면 금상첨화다.

    남성은 퇴직과 동시에 사회적 유대관계에서도 큰 변화, 즉 단절을 맞게 된다. 은퇴 신드롬이 여성보다 남성 쪽에서 더 강하게 작용한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나이가 들어도 사회적 유대에 비교적 큰 변화가 없다. 남성에게 일을 통한 사회적 유대가 더더욱 중요한 이유다.

    생각은 물적 토대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현재 가구라는 물적 토대가 지층부터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이에 맞춰 우리의 경제적 계획과 생각도 초점을 변경해야 한다. 가구 변화는 바꿀 수 있는 흐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