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9

2014.05.26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와 환상 짝꿍

쿠사마 야요이, 그리고 스파클링 시라즈

  •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4-05-26 14: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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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점의 집적. 자줏빛 거대한 그림은 그 크기와 강렬함으로 먼저 사람을 압도한다. 그림을 가득 메운, 크기가 각기 다른 작고 붉은 점은 어찌 보면 수없이 많이 그려넣은 하얀 동그라미, 즉 거품으로도 보인다. 검붉은 와인에 피어오르는 하얀 거품…. 그래서 그 그림은 스파클링 시라즈를 떠올리게 한다.

    시라즈(Shiraz)는 호주식 이름으로, 프랑스에서는 같은 품종을 시라(Syrah)라고 부른다. 시라는 원래 프랑스 남동부에서 기원한 적포도인데 프랑스 론(Rhone) 지방에서 이 품종으로 다양한 와인을 생산한다. 특히 북부 론의 코트로티와 에르미타주(Hermitage)는 대표적인 시라 와인이다.

    시라가 호주로 건너간 것은 호주 와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임스 버스비(James Busby) 덕분이다. 호주야말로 좋은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천혜 자연을 지녔다고 믿었던 버스비는 1800년대 중반 유럽에서 수많은 포도 품종을 호주로 들여갔는데 그중 하나가 시라였다. 그는 시라를 시라스(Scyras 또는 Ciras)라고 불렀으며, 이것이 호주에서 시라를 시라즈라고 부르게 된 계기가 됐다.

    시라즈가 호주에서 처음부터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다. 세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호주의 명품 와인 펜폴즈(Penfolds)의 그레인지(Grange) 덕분이었다. 보르도 스타일의 명품 와인을 만들고자 했던 펜폴즈의 와인 제조가 맥스 슈버트(Max Schubert)가 1950년 가장 잘 익은 시라즈만을 선별해 와인을 만들고 장기간 숙성해 시장에 내놓은 것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이다. 이후 다른 와이너리에서도 앞다퉈 시라즈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스파클링 시라즈는 관심을 끌지 못하다 1990년대 들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스파클링 와인의 색상은 대부분 화이트나 로제다. 적포도인 피노 누아르(Pinot Noir)와 피노 뫼니에(Pinot Meunier)를 이용해 블랑 드 누아르(Blanc de Noirs)라는 샴페인을 만들기는 하지만 적포도에서 포도즙만 얼른 짜내고 포도 껍질과 접촉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와인 색이 백포도로 만든 것과 거의 같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스파클링 시라즈는 포도에서 즙만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시라즈 와인을 먼저 만들고 이것을 2차 발효해 스파클링 와인으로 만든다. 따라서 시라즈 와인의 특색이라 할 수 있는 보랏빛 띠는 진한 루비색 안에 부드러운 타닌과 묵직함, 여기에 잘 익은 베리류의 과일과 초콜릿, 그리고 감초 향이 그대로 살아 있다. 한 모금 머금으면 그 모든 것이 거품과 함께 입안에서 한 송이 검붉은 꽃처럼 화려하게 피어난다.

    호주에서 스파클링 시라즈는 크리스마스 때 특히 인기가 많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나라이다 보니 크리스마스 런치로 차갑게 식힌 칠면조 고기와 샐러드를 많이 먹는데 이것과 차가운 스파클링 시라즈가 환상의 궁합을 이루기 때문이다.

    스파클링 레드 와인은 전 세계적으로 생산하는 곳이 드물다. 그리고 호주만큼 스파클링 레드 와인을 수준급으로 만드는 곳은 더더욱 찾기 힘들다. 스파클링 시라즈야말로 호주에서만 생산해낼 수 있는 독특하고 강렬한 스타일의 와인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쿠사마 야요이의 그림처럼 독특하고 강렬하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와 환상 짝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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