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7

2014.05.12

사랑, 우리가 세상을 사는 이유

MBC ‘휴먼다큐멘터리 사랑’

  • 배선영 텐아시아 기자 sypova@tenasia.co.kr

    입력2014-05-12 1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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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우리가 세상을 사는 이유
    가정의 달 5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MBC가 2006년부터 제작해온 ‘휴먼다큐멘터리 사랑’(‘휴먼다큐 사랑’)이다. 8년이라는 긴 시간 다양한 삶이 대중 앞에 소개됐고, 그때마다 주인공들이 빚어내는 소박하고 고귀한 사랑이 코끝 찡한 감동으로 시청자를 웃기고 울렸다. 그중 ‘고마워요 내 사랑’ ‘풀빵엄마’ 등 몇 편은 책으로, 영화로 진화해 감동을 확장했다.

    올해 역시 MBC는 5월 6일을 시작으로 4주에 걸쳐 다큐멘터리 4편을 방영한다. 지난해 ‘해나의 기적’과 ‘붕어빵 가족’ 편을 연출했던 유해진 PD(사진)가 올해는 6세 뇌종양 환자 연지의 가족 이야기를 다룬 ‘날아라 연지’와 캐나다 샴쌍둥이의 기적 같은 일상을 담은 ‘말괄량이 샴쌍둥이’ 등 2편을 선보인다.

    유 PD와 ‘휴먼다큐 사랑’의 인연은 각별하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시작된 2006년 ‘너는 내 운명’을 연출한 것을 시작으로 ‘안녕, 아빠’(2007)와 ‘풀빵엄마’(2009) 등을 잇달아 만들었다. 그에게 ‘휴먼다큐 사랑’을 계속 연출한 이유를 묻자 “조직이 명해서 하는 것”이라는 예상 밖의 답이 돌아왔다.

    “충격적이게도 ‘너는 내 운명’을 제작할 때 예기치 않게 주인공이 촬영 중간 돌아가셨습니다. 암 병동에서 링거를 꽂고 있다 뿐이지, 명랑하고 쾌활해 암환자라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인 분이었습니다. 이후 죽음을 목전에 둔 가장이 가족과 이별하는 과정을 담은 ‘안녕, 아빠’를 연출했는데, 주인공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남은 아이들이 울부짖던 장면도 아직 잊을 수 없어요. PD는 편집할 때 똑같은 장면을 수없이 반복해 보게 돼 느낌 강도가 약해지는데, ‘안녕, 아빠’의 임종 장면은 몇 번을 봐도 울음을 참을 수 없었어요. 그 느낌이 강렬한 만큼 후유증도 컸습니다. 그런데 ‘풀빵엄마’를 찍고 나서도 주인공이 세상을 떠났죠. 이후 ‘휴먼다큐 사랑’을 제작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휴먼다큐 사랑’의 카메라 뒤에 서 있는 제작진이 겪는 마음고생을 짐작하게 하는 고백이다. 그런데 그는 지난해 ‘해나의 기적’ 편으로 4년 만에 다시 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복귀했고, 다시 한 번 해나와 가슴 아픈 이별을 경험해야 했다.



    카메라 뒤에 서 있는 마음고생

    사랑, 우리가 세상을 사는 이유

    MBC ‘휴먼다큐멘터리 사랑’ 연작 중 ‘꽃보다 듬직이’ 편(왼쪽)과 ‘말괄량이 샴쌍둥이’ 편의 한 장면.

    “(해나의 죽음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이었습니다. 단 1%도 예상 못 했어요. 해나 어머니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다른 다큐멘터리 제작 때문에 영화감독들과 인터뷰 중이었는데, 조연출에게 인터뷰를 맡기고 잠시 마음을 추슬러야 했어요. 촬영 현장에서 그런 건 처음이었습니다.”

    해나 이야기를 전하는 그는 다시 목이 잠겼다. 가족이 받은 아픔과 충격에 비할 수 없겠지만, 출연자와의 예상치 못한 이별에 힘들어하는 제작진의 마음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휴먼다큐 사랑’ 제작진은 6개월 넘는 시간 동안 주인공 및 주변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한다. 유 PD는 5월 2일 제작발표회에서 ‘휴먼다큐 사랑’의 주인공을 선정하는 그 나름의 기준을 밝혔다. 그건 ‘사랑하고 싶은 존재일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요. 그중 주인공을 선정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인데, 저는 6개월 이상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찾죠. 다가가서 꼭 안아주고 싶은 그런 존재요.”

    그만큼 제작진과 주인공 사이에는 특별한 감정이입이 존재한다. 이처럼 주인공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카메라를 통과하면서 이 프로그램 고유의 정서가 완성된다. 그 덕에 ‘휴먼다큐 사랑’은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2010년 ‘풀빵엄마’가 한국 최초로 에미상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수상했고, ‘해나의 기적’ 편도 미국 뉴욕텔레비전페스티벌에서 휴먼 프로그램 부문 최고상인 금상을 받았다.

    해나는 ‘선천성 기도 무형성증’을 갖고 태어난 아이로, 태어나자마자 2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기적적으로 삶을 이어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유 PD가 해나를 촬영하던 때, 미국 NBC도 우리나라를 찾아와 해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유 PD는 당시 두 나라의 다큐멘터리 제작 방식 차이를 알게 됐다고 했다.

    “제작 방식에서 외형적으로는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여요. 다만 우리는 주인공이 결정되면 바로 관찰을 시작해 그의 말과 행동, 표정을 지켜보면서 의미를 잡아내려고 노력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철저히 자료조사를 하고 공부해 큐시트를 대본처럼 미리 만들어둔 상태에서 찍더군요. 그래서 미국 다큐멘터리에는 일상에서 발견되는 의외의 장면들이 없습니다.”

    사랑, 우리가 세상을 사는 이유

    MBC 유해진 PD가 연출한 ‘휴먼다큐멘터리 사랑’ 연작 중 ‘해나의 기적’ 편은 미국 뉴욕텔레비전페스티벌 휴먼 프로그램 부문 최고상을 받았다.

    삶의 아름다움 극대화

    유 PD 설명처럼 주인공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주인공과 함께 호흡하는 제작 방식은 작품성 높은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이어지지만, 주인공이 세상을 떠날 경우 깊은 상처도 남긴다. 그렇지만 제작진이 ‘휴먼다큐 사랑’을 통해 얻은 점 또한 있지 않을까. 유 PD는 이에 대해 “사람에게는 누구나 선함과 악함이 있다. 누군가는 선한 면이 악한 면보다 크고 또 누군가는 그 반대일 텐데, 내가 만든 다큐멘터리 주인공은 모두 선한 면이 극대화된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바로 그 시기의 주인공을 포착하는 것이 내 일이기도 하다. 이처럼 삶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된 사람들과 긴 시간 함께할 수 있는 것이 ‘휴먼다큐 사랑’이 가진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유 PD가 주인공들과 이별하는 게 힘들었다고 고백하면서도 또 다른 주인공을 찾아나서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사랑이 희망이라는 진리’,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또 내년에도 전하고 싶은 그 하나의 메시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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