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7

2014.05.12

“분노의 물결 어루만져야 치유의 단계로 나아간다”

인터뷰 l 강영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갈등해결연구센터장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4-05-12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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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물결 어루만져야 치유의 단계로 나아간다”
    골든타임(golden time). 세월호 침몰 사고를 보도하면서 여러 언론이 앞다퉈 사용하는 용어다. 위급 상황에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유효시간을 뜻한다. 검경 수사와 관계자 인터뷰 등에 따르면 이번 사고 대응 과정에서 구조당국은 수차례 골든타임을 허비했다. 해양경찰(해경)과 해군, 안전행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유관기관의 갈등이 그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그사이 아까운 시간이 흘러갔고, 결국 승객 476명(추정) 중 304명(추정)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정부는 사고 발생 후 3주가 지난 5월 6일까지도 구조인원을 제대로 집계하지 못하는 등 무능한 모습을 보이며 “현장에서 여러 기관이 상황을 파악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는 해명만 반복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강영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갈등해결연구센터장(갈등해결학 박사·사진)은 “재난이 발생하면 기관 간 업무 분담에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가 사전에 이를 막을 시스템을 만들어놓지 못한 것이 대형 참사를 낳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애초부터 위기대응 시스템 없어

    ▼ 세월호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해경과 해군, 민간잠수사 등이 불협화음을 빚었고, 그로 인해 구조 작업이 지연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피해가 확대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구조 현장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침몰 신고 접수 후 대응부터 실태 파악, 사고대책본부 구성, 피해자 지원 대책 수립에 이르기까지 재난관리의 모든 과정에서 부처 간 갈등이 벌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신속하고 효과적인 사고 수습이 이뤄질 리 없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건 애초 갈등을 예방하도록 디자인된 위기대응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 갈등 예방 디자인이란 어떤 것인가.

    “여러 정부기관이 협업할 때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업무 영역을 조정해두는 것을 뜻한다. 공무원은 법과 규정에 따라 움직인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들이 우왕좌왕하지 않게 하려면 정부가 미리 틀을 만들어놔야 한다.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 지휘체계를 세우고 힘을 실어줌으로써 기관 간 협업을 조율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번 사고 수습 과정이 혼란스러웠던 건 지휘체계 부재와 그로 인한 갈등 조정 실패 때문이다.”

    강 센터장의 지적처럼 사고 발생 직후 정부의 지휘체계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안전행정부, 해경, 교육부 등이 별도로 사고대책본부를 꾸리는 바람에 컨트롤타워가 난립했다. 세월호 침몰 하루 뒤에야 비로소 정홍원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만들어졌지만, 이후에도 현장의 난맥상은 계속됐다. 그사이 골든타임이 흘러갔고, 실종자 가족의 분노는 폭발했다. 강 센터장은 “결국 이들이 ‘청와대에 항의하러 가자’며 시위대를 조직하는 일까지 벌어지지 않았느냐”며 “재난관리는 발생 전 예방과 발생 시 대응, 발생 후 조치 등 세 단계로 나뉘는데, 정부는 이번 사고에서 총체적으로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 재난 발생 전 갈등 예방 시스템 마련, 재난 발생 시 갈등 조율 컨트롤타워 운영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했다. 재난 발생 후에는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2차 피해 방지다. 재난 피해자들은 육체적·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그들이 추가적인 상처를 받지 않도록 책임지고 관리하는 게 정부 임무다. 그러나 이번 사고 대응 과정에서 정부는 잘못된 정보 제공으로 유족과 실종자 가족의 불신을 초래했고, 고위공무원이 이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려 하거나 컵라면을 먹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해 상처를 키웠다. 세월호 참사 후 빚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 갈등의 책임이 상당 부분 정부에 있는 이유다.”

    ▼ 사후 대응 측면에서 볼 때 정부가 가장 잘못한 건 어떤 점인가.

    “구조 인력이나 장비를 부풀려 발표한 점 등 구체적으로 지적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문제는 피해자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역대 정부는 정책을 추진할 때 일방적으로 결정(Decide)하고, 일단 발표(Announce)한 뒤, 반대여론이 높아지면 이를 방어(Defend)하는, 이른바 ‘DAD 방식’을 써왔다. 이런 일방주의적인 행정 패러다임이 이번 사고 수습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됐다. 이 때문에 유족과 실종자 가족은 2중, 3중의 심리적 고통을 겪게 됐다.”

    “분노의 물결 어루만져야 치유의 단계로 나아간다”

    세월호 침몰 닷새째인 4월 20일 사고 피해자 가족이 모여 있는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은 정홍원 총리가 어두운 표정으로 자리를 떠나는 모습(왼쪽)과 같은 날 피해자 가족들이 정부의 사고 대처 부실에 대한 항의 표시로 청와대로 출발하려다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

    재난 문제해결 능력 키워야

    강 센터장은 실종자 수색 현장에 ‘다이빙벨’을 투입할지 여부를 놓고 빚어진 갈등 상황을 예로 들었다. 정부는 다이빙벨이 구조작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뒤 한동안 ‘현장 투입 불가’ 방침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실종자 가족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결과적으로 구조당국도 사회적 요구에 떠밀려 뒤늦게 이를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강 센터장은 “정부가 애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그들의 마음을 이해했다면 대응 방식이 달랐을 것”이라며 “재난 수습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공황상태에 놓인 피해자에게 ‘이성을 찾으라’고 하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시엔 그들이 ‘정부도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 있다. 믿고 기다리자’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게 더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 이제라도 피해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은 유족과 실종자 가족, 그리고 이 사고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시민들이 마음껏 분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사람은 심리적 충격을 받으면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5단계를 거친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거대한 분노에 사로잡힌 상태다.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이 분노를 키워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처럼 군중이 분노할 때는 책임자가 나와서 그들의 분노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주장하는 바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분노가 충분히 발산된 뒤에야 비로소 치유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강 센터장은 이와 더불어 근본적인 재난관리체계 점검과 대응 매뉴얼 마련을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국토안보부 산하 연방재난관리청(FEMA) 안에 갈등해결 전담부서(ADR Division)를 두고 전문가를 고용해 재난 발생 시 기관 간 갈등에 대처하고 민원해결 등을 담당하게 하고 있다. 그는 “우리 모두가 또 다시 이렇게 큰 상처를 입지 않으려면 소 잃고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지금은 사회 전체 시스템을 정비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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