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3

2014.04.14

부시家 vs 클린턴家 맞대결 분위기

美 워싱턴 정가 벌써부터 2016년 백악관 주인으로 관심 이동

  • 신석호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

    입력2014-04-14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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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9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중심부에 자리 잡은 백악관 뒤뜰 쪽 공원은 완연한 봄 날씨를 즐기려고 전국에서 찾아온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유례가 드물게 춥고 긴 겨울을 보낸 미국인의 표정에는 문득 찾아온 봄날에 대한 기대가 가슴속에 가득 찬 듯했다. 2016년 선거에서 백악관을 차지하려는 미국 대통령선거(대선) 예비 주자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3월 이후 민주, 공화 양당의 대선후보 동정이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면서 미국 정가의 관심은 이미 11월 중간선거를 넘어 다음 대선으로 중심이 이동하는 형국이다.

    2014년 4월 가장 큰 관심은 부시가(家)와 클린턴가(家)의 대결이 24년 만에 재현되느냐에 모아진다. 1992년 11월 대선에서 빌 클린턴 전 아칸소 주지사는 재선에 도전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물리치고 대권을 거머쥐었다. 당시 백악관 안주인이 됐던 힐러리 클린턴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대 국무부 장관을 거쳐 지금은 가장 유력한 민주당 대선후보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반면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차남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이른바 ‘브리지 게이트’에 발목이 잡힌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를 제치고 가장 유력한 공화당 대선후보로 떠오른 상태다.

    일단 두 후보 모두 공식적인 출마 선언은 유보한 상태다. 출마 여부를 둘러싸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대해 비슷한 고민을 내비치는 것도 유사한 대목이다. 마지막까지 최대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고 명분을 쌓아 극적인 출마 선언을 한 뒤 내년부터 치르는 당내 경선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전술적 태도라 할 수 있다.

    힐러리 전 장관은 4월 8일 캘리포니아 주의 한 IT(정보기술) 업체가 후원한 회의에서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한동안은 결정을 내릴 계획이 없다”면서도 “숙고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비록 결정이 가까워졌다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대선 출마 여부에 관한 가장 구체적인 답변을 했다는 평가다. 그는 “정작 어려운 질문은 ‘대통령이 되길 원하느냐, 승리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왜 출마하려 하는가. 또 어떤 차별화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가’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후보에 돈과 사람 몰려



    부시 전 주지사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틀 전인 4월 6일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취임 25주년 기념식에 나와 연설하면서 “올해 연말 출마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좀 더 구체적인 시한을 밝혔다. 폭스 뉴스가 중계한 부시 전 대통령 기념관 연설에서 그는 “나의 출마가 국민에게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지와 가족의 허락 여부를 중요하게 고려해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불법 이민자 구제의 필요성을 강조해 이민개혁에 부정적인 여타 공화당 후보들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두 후보에게 돈과 사람이 몰리고 일각에서는 이미 당선 뒤 캐비닛 명단을 짜고 있다는 이야기가 워싱턴 정가 주변에 공공연히 나돈다. 옛 클린턴 행정부 인사들과 교분이 깊은 한 교포 소식통은 이미 올해 초 “민주당 계열 큰손들이 어떻게 하면 ‘힐러리 캠프’에 재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길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돈이 말을 한다’는 미국 정치의 생리상 먼저 투자하고 훗날 받을 자리를 미리 보장받겠다는 ‘프런트 러닝’이 활발하다는 이야기다.

    3월 29일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에서 막을 내린 공화당유대인연합회(RJC) 연례총회는 부시 전 주지사에게 쏠린 공화당 지지자의 관심을 완연히 드러낸 자리였다. 크리스티 주지사 등 공화당 유력 대선후보들이 연단에 올라 열변을 토했지만 정작 공화당에 거금을 기부하는 셸던 애덜슨은 연단에 오르지도 않은 부시 전 주지사에게 정치자금 모금 파티를 열어줬다. 지난 대선에서 공화당에 9200만 달러를 내놓은 최대 기부자 애덜슨이 부시 전 주지사를 점찍었다는 것은 그만큼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3월 29일 보도했다.

    민주당 내에서 힐러리 후보에 맞설 경쟁자로 조 바이든 부통령 정도가 꼽히는 반면, 공화당 내에서는 잠룡 다수가 후보군을 형성하며 호시탐탐 선두 탈환 기회를 엿보는 형국이다. 부시 전 주지사의 독주를 막아야 하는 일군의 후보는 본격적인 당내 경선을 앞두고 이른바 ‘신임장 코커스(credentials caucus)’에 한창이라고 WP가 4월 7일 보도했다. 신임장 코커스란 대선에 도전하려는 후보들이 출마 선언에 앞서 국내외 이슈별 정책을 공부하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전문가, 과거 정부 유력 인사들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활동을 말한다.

    WP에 따르면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은 3월 31일 워싱턴 중심부에 있는 캐피털 그릴에서 보수 성향의 경제학자 스티븐 무어와 함께 4시간 동안 만찬 회동을 했다. 무어는 “크루즈 상원의원이 보통의 공화당 경쟁자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후보들 현안 공부에 열중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은 의회예산처장 출신인 더글러스 홀츠 에크와 상담했고,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 소속 전문가들을 사무실로 자주 불러들이고 있다. 크리스티 주지사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부 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부 장관,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 등을 불러 외교정책 자문을 받았다.

    전화 통화나 점심·저녁식사, 일대일 토론 형식으로 이뤄지는 ‘학습’ 과정에서 후보들은 집권 후 자신과 함께 국정을 이끌어갈 국정 파트너를 물색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다방면의 전문가를 독대하고 정책 제언을 수첩에 받아 적으면서 마음에 든 사람을 집권 후 중용한 것과 같은 과정인 셈이다.

    WP는 선거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특히 행정 경험이 부족한 초선 상원의원에게는 출마 전 방대한 학습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주 행정을 경험한 당내 경쟁자인 부시 전 주지사나 크리스티 주지사는 물론, 상대 후보로 거론되는 힐러리 전 국무부 장관이나 조 바이든 부통령과 맞서려면 이제까지 다뤄보지 않은 국내외 중요 이슈에 대한 강력하고 일관된 관점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님’으로는 보수 진영의 싱크탱크 소속 전문가와 공화당 출신 행정부와 의회 경력자가 동원되고 있다. AEI와 CFR 외에 오바마 대통령의 지적인 저격수 구실을 자임한 짐 디민트 헤리티지재단 회장과 존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 등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국내 이슈로는 연방정부 지출 축소와 재정 건전화, 국제적으로는 오바마 행정부가 대폭 축소한 해외 군사 개입 확대와 국제 정치 영향력 회복 문제가 후보들의 주요 공부 과제가 될 것이라고 WP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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