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1

2014.03.31

티끌 모아 살맛나는 세상 만들기

다수 시민 작은 기부 ‘시티즌 오블리주’ 정착 단계 진입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4-03-31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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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끌 모아 살맛나는 세상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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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0일부터 ‘아름다운재단’이 펼치고 있는 모금 운동 ‘노란봉투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 수다. 3월 27일 오후 상황으로, 하루에 1000명 이상 참여자가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하면 머지않아 4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십시일반 모금한 액수도 20억 원을 훌쩍 넘겼다.

    ‘노란봉투 캠페인’은 노동쟁의를 하다 회사로부터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당한 이들의 생계비, 의료비 등을 지원하려는 모금 운동. 이 캠페인이 이처럼 뜨거운 호응을 얻을 줄은 아름다운재단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박효원 아름다운재단 간사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법원에서 47억 원대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걸 계기로 캠페인을 시작했다. 시민 10만 명이 4만7000원씩 모아 이들을 돕자는 취지였지만 모금액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4700만 원 모으기도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과 16일 만에 4억7000만 원이 모였고, 이후에도 기부가 이어졌다. 아름다운재단은 두 차례에 걸쳐 각각 4억7000만 원씩 모금한 뒤, 지금은 시민 4만7000명 참여를 목표로 하는 3차 모금을 진행 중이다. 마감예정일은 4월 30일. 하지만 지금 추세라면 이에 앞서 참여 인원을 다 채울 가능성이 높다.

    모두가 놀란 ‘노란봉투 캠페인’



    기부 전문가들은 ‘노란봉투 캠페인’의 성공 배경에 우리 사회 전반의 기부 문화 변화가 있다고 말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공동모금회) 대외협력본부 신예나 팀장은 “2~3년 전부터 개인의 소액 기부가 크게 늘고 있다. ‘노란봉투 캠페인’을 통해 이런 변화상이 대외에 드러난 것”이라고 밝혔다.

    신 팀장에 따르면 공동모금회도 지난해 5668억 원이라는 역대 최고 모금 성과를 올렸다. 그중 40% 정도가 개인 기부였다. 연말연시를 맞아 지난해 11월 20일부터 올해 1월 31일까지 펼친 집중 모금 캠페인에서 개인 기부의 비중도 42.1%였다. 신 팀장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부 총액에서 기업 기부액의 비중이 70%에 달했다. 최근 개인 기부 비중이 크게 높아진 건 기부자 수가 많아진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추세는 각종 캠페인에서도 분명히 확인된다. 월급 일부를 매달 공동모금회에 기부하는 ‘직장인나눔’ 캠페인 참여자 수는 2012년 20만3000여 명에서 1년 새 34만9000여 명이 늘어 지금은 55만2000여 명이 됐다. 소상공인이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기부하는 ‘착한 가게’ 캠페인 참여 업체 수도 전국적으로 7100개를 넘어섰다. 2007년 188개로 시작한 지 7년 만에 37배가 된 셈이다.

    참여자가 늘면서 한 건물에 입주한 가게 전체가 이 캠페인에 참여하는 ‘착한 건물’, 한 골목 상인 전체가 역시 이 캠페인에 동참하는 ‘착한 골목’ 등도 생겼다. 지난해 7월에는 인천 차이나타운 안에 있는 중국집 16곳이 한꺼번에 ‘착한 가게’에 가입하기도 했다. 차이나타운 내 ‘착한 가게’ 수는 이후 23곳으로 늘었다.

    이들이 매달 내는 기부액은 다 다르다. 능력과 여건에 따라 스스로 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구 남구 분도주유소 김현철 사장은 기름 1ℓ를 판매할 때마다 1원씩을 공동모금회에 보낸다. 비영리모금 컨설팅회사 ‘도움과 나눔’의 최영우 대표는 “기부를 대하는 사람들 태도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우리 사회에는 오랫동안 기부를 기업이나 자산가의 전유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개인 기부 문화가 확산하면서 이제는 기부를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기는 평범한 이가 많아졌다”고 평했다. 이런 변화가 ‘노란봉투 캠페인’ 성공의 바탕이 됐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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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미스폰서’가 2012년 진행한 ‘나는 아이들의 불평등한 식판에 반대합니다’ 모금 캠페인 안내문.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소액 다수 기부, 이른바 ‘소셜펀딩’ 확산도 ‘노란봉투 캠페인’ 성공의 발판이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에서 ‘소셜펀딩’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2011년부터. 독립영화, 전시, 출판 등 문화 분야 종사자가 제작비를 마련하려고 온라인 모금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대중에 알려졌다. 같은 해 아름다운재단이 ‘소셜펀딩’을 표방하는 온라인 사이트 ‘개미스폰서’(socialants.org)를 만들고, 시민단체 진보네트워크가 노동·인권 분야 사회운동 후원을 위한 ‘소셜펀치’(socialfunch.org)를 열면서 모금 분야가 확대됐다. 예전에는 ‘기부’라는 단어가 곧 ‘자선’과 연결됐다면, 이때부터 기부의 지평이 한층 넓어진 셈이다.

    ‘개미스폰서’는 2012년 시설에 사는 아동의 급식비를 후원하는 ‘나는 아이들의 불평등한 식판에 반대합니다’ 캠페인을 통해 3억 7000여만 원을 모금하는 등 다양한 사회 이슈에 대한 모금 운동을 해오다 이번에 ‘노란봉투 캠페인’을 주도하면서 기부 플랫폼으로서 입지를 굳혔다. ‘소셜펀치’도 해마다 모금액을 크게 늘리며 성가를 높이고 있다. 2011년엔 연간 참여 인원 300명, 모금액 686만2010원에 그쳤지만, 지난해엔 5654명이 이 사이트를 통해 각종 사회운동에 1억9014만여 원을 기부했다.

    이처럼 기부자가 사용처를 직접 정하는 기부 방식은 참여자에게 어려운 이를 돕는 데서 오는 기쁨뿐 아니라 사회 변화를 이끄는 시민으로서의 자긍심까지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기부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수단으로 평가받는다.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프로젝트’는 이런 기부 캠페인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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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미스폰서’의 ‘불평등한 식판 반대’ 캠페인 당시 이미지 사진과 미국 뉴욕의 고가철로를 생태공원으로 변화시킨 ‘하이라인 공원’ 전경, 대구 동인동 찜갈비 골목 상인들이 단체로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착한 가게’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열린 ‘착한 골목’ 지정식 모습(왼쪽부터).

    기부자가 사용처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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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건물에 입주한 가게 전체가 ‘착한 가게’ 캠페인에 참여한 것을 기념해 열린 ‘착한 건물’ 지정식 모습.

    하이라인 프로젝트는 1999년 뉴욕시가 더는 사용할 수 없는 고가철로 ‘하이라인’을 철거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모이면서 시작됐다. 시민들은 모금을 통해 고가철로 자리에 생태공원을 조성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곧 허물어질 처지에 놓였던 고가철로는 뉴욕의 새로운 문화 중심으로 부상했고, 지금은 세계 각국 여행자가 방문하는 신흥 명소가 됐다. 지난해 온라인 사진 공유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인스타그램’ 사용자가 사진 포스팅을 가장 많이 한 장소 10위가 바로 이 공원이다. 이 과정을 기록한 책 ‘하이라인 스토리’(푸른숲)에서 저자는 “사람들은 뉴욕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 했다. 하이라인 프로젝트는 그들이 뛰어들기에 적당한, 정서적으로 무겁지 않은 일이었다”고 썼다.

    ‘노란봉투 캠페인’이 성공한 배경에도 이런 시민들의 참여의식이 있다. 2월 중순 ‘노란봉투 프로젝트’ 캠페인에 4만7000원을 보냄으로써 이 모금이 확산하는 데 기여한 가수 이효리는 당시 공개한 편지에 “지난 몇 년간 해고노동자들의 힘겨운 싸움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잘 해결되길 바랄 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중략) 제 4만7000원이 누군가의 어깨를 두드리길 바랍니다”라고 썼다. ‘노란봉투 캠페인’ 참여가 ‘해고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운동에 동참하는 것과 같은 행동임을 밝힌 것이다. 이후 만화가 강풀, 놈 촘스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 등 국내외 유명 인사가 공개적으로 모금에 참여하면서 더 많은 이의 참여를 이끌었다.

    이에 따라 최근 기부금품 모집단체들은 기부 사용처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것이 사회 변화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소개하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후원금 3만 원이면 ‘굶는 아이의 8끼 식사’ ‘혼자 사는 어르신의 연탄 70장’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를 위한 예방 모기장 3개’를 지원할 수 있다고 소개하는 식이다.

    후원금액을 일괄적으로 집행하지 않고 기부자의 관심사와 희망에 따라 별도로 운용하기도 한다. 공동모금회가 부산 소방공무원들의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119 안전기금’도 그중 하나다. 부산 소방공무원 2300여 명은 2012년부터 월급에서 2000~1만 원을 떼 매달 이 기금에 기탁하고 공동모금회는 이를 이용해 화재 피해자를 돕는다.

    ‘노란봉투 캠페인’의 성공을 계기로 이러한 ‘소액 다수 기부금품 모집’은 더욱 확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기부 문화를 우리 사회 전반에 확대하려면 현행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1950년대 민간의 기부금품 모집을 제한하려고 제정한 법에서 출발한 만큼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기부금품 모집 제한 법률 개정 필요

    기부금품 모집비용을 총모금액의 최대 15%로 제한하는 법규정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영우 대표는 “건강한 기부금품 모집단체라면 모금액의 15~35%를 모집비용으로 써야 한다고 여기는 게 국제적인 상식”이라며 “천편일률적인 자선형 기부를 넘어 다양한 캠페인을 개발하고 시민 참여를 독려하려면 모집단체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모집비용을 제한하면 이런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관리당국은 기부금품 모집단체가 돈 씀씀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기부자가 단체 살림을 판단하고 후원 여부를 결정하게 하는 데 그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실제로 기부자들의 눈은 점점 밝아지고 있다. 삼일회계법인 산하 삼일미래재단이 비영리 NGO(비정부기구)들을 대상으로 시상하는 투명경영대상을 받으면 이듬해 기부금 액수가 급증하는 것이 그 증거다. 2009년 상을 받은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 미래’ 기부금은 1년 만에 28억 원에서 47억 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고, 2010년 수상 기관인 ‘세이브더칠드런’도 2011년 기부금을 전년에 비해 27% 더 걷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영국의 자선기관에서 평가한 세계기부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캄보디아나 수단보다 낮은 45위를 기록했다. 박효원 아름다운재단 간사는 “‘노란봉투 캠페인’을 통해 우리 사회에 더불어 살아가는 이를 도우려는 진정성을 가진 이가 무척 많다는 걸 확인했다”며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면 우리 사회의 기부 문화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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