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1

2014.03.31

길을 나서지 않으면 청춘이 아니다

바우테르 살리스 감독의 ‘온 더 로드’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4-03-31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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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나서지 않으면 청춘이 아니다
    날뛰는 야생마 같아 통제 불가능하고, 발정 난 개마냥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며, 서열 투쟁에 나선 젊은 원숭이 같아 위협적인 젊은 세대에게 세상은 늘 이름을 붙이고 싶어 했다. 그래서 1920년대 미국의 젊은 세대는 상실의 시대, 즉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DNA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트 제너레이션’에게 계승됐다.

    당시 미국 사회는 산업화와 뉴딜정책 등에 힘입은 경제적 풍요를 바탕으로 중산층이 성장했다. 그 결과 평균적이고 획일화한 가치관이 지배하게 됐고, 한편으로는 동서 냉전을 배경으로 거센 반공주의 열풍이 일었다. 이에 반발한 젊은 세대가 비트 제너레이션이다. 이들은 소비산업사회에 대한 환멸을 술, 마약, 섹스, 재즈음악, 동양사상에 대한 탐닉으로 표출했으며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였다. 바우테르 살리스 감독의 ‘온 더 로드’는 이런 비트 제너레이션에 대한 송가다. 비트 제너레이션의 성서이자 경전, ‘선언문’이라 할 수 있는 잭 케루악의 1957년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작가 지망생 샐(샘 라일리 분)은 아버지 장례식 후 친구 소개로 딘(개릿 헤드룬드 분)을 만난다. 딘은 세상 규율이나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영감과 충동에 따라 살아가는 인물이다. 샐은 딘의 자유로운 삶에 빠져들고, 딘 역시 샐의 작가적 감성과 지적 능력을 동경한다. 영화는 두 청년의 짧지만 뜨겁던 청춘 시기, 길 위의 나날을 그린다.

    두 주인공은 끊임없이 떠난다. 미국 뉴욕과 댈러스,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는 이들의 여정 속에서 관객은 유목민과도 같았던 당대 청년의 삶을 만난다. 차를 훔치거나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털면서도 아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무일푼의 히치하이킹으로 여행을 이어가며, 누구와도 길동무나 연인이 돼 술과 춤과 음악과 사랑을 나누던 세월 말이다. 그러나 질주하는 차에 끈질기게 따라붙는 경찰차처럼 세상은 이들이 영원한 ‘피터 팬’으로 사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는 길에서 사라지고, 누구는 길에서 내려온다.

    영원한 것은 길이 아니라, 길에 대한 동경이다. 살리스 감독은 전작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에서 철의 혁명가가 아니라 천식을 앓던 20대 의학도인 체 게바라의 남미여행을 통해 인생에서 청년기야말로 순수한 휴머니즘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간이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이어 또 다른 로드 무비 ‘온 더 로드’에선 가장 원초적인 생의 의지와 자유에의 갈망으로 들끓는 시간으로 청년기를 그려낸다.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 ‘호빗 : 뜻밖의 여정’에서 안락한 삶을 살던 주인공 빌보에게 마법사 간달프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와 함께 길을 가지 않겠는가. 내 장담하네. 길을 떠나 우리와 함께 모험을 겪고 돌아오면 예전의 자네가 아닐 걸세.”

    그 끝에 체 게바라의 희망이 있든 비트 제네레이션의 ‘절망과 패배’가 있든, 소년이 어른이 되는 것은 오직 ‘길 위에서’라는 사실을, 길을 나서지 않으면 청춘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인생의 가장 뜨겁고 찬란한 시간이 길 위에 있다는 사실을 ‘온 더 로드’는 말하고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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