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0

2014.03.24

인간미 넘치고 소탈한 파파 프란치스코

취임 1년 탈권위로 바티칸에 새 바람…실질적 개혁 작업에 관심 집중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4-03-24 1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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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ease pray for me(나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 1주년을 맞은 3월 13일 공식 트위터 계정(@pontifex)에 올린 글이다. 꼭 1년 전에도 그랬다. 바티칸 대성당 굴뚝에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오른 뒤 그는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 앞에 나타나 먼저 고개를 숙였다.

    “여러분께 부탁합니다. 잠시 침묵하며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교황으로서 축복을 내리기 전 기도부터 청하는 새 교황의 겸손함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스스로를 ‘교황’ 대신 ‘로마 주교’라 부르고 각종 특권을 거부하며 교단을 넘어 사회적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탐욕에 대한 비판과 동성애자 및 여성에 대한 열린 자세도 연일 화제가 됐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12월 프란치스코 교황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며 ‘교회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던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교황 권고문 한국서도 인기



    그는 취임 이후 즉시 성직자의 아동 성추행, 바티칸은행 돈세탁, 교황 기밀문서 누출 등 추문이 끊이지 않는 교황청 개혁을 위해 민간회계 컨설팅 업체까지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했고, 가톨릭계의 유럽 편중 현상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1월 임명한 신임 추기경 19명 가운데 10명이 우리나라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비유럽권 출신이다.

    이에 대중은 환호하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바티칸을 찾은 관광객은 660만 명으로,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 때인 2012년 230만 명의 3배에 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출신지인 아르헨티나에는 그의 고향과 주교 재임지 등을 둘러보는 여행상품까지 생겼다.

    한국에서도 교황의 인기가 뜨겁다. 3월 15일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1주년을 기념해 그의 권고문 ‘복음의 기쁨’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주제로 서강대에서 열린 심포지엄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400명을 수용하는 강당이 가득 차 주최 측이 급히 옆 식당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행사를 생중계하기도 했다.

    이날 심포지엄 소재가 된 ‘복음의 기쁨’은 지난해 11월 24일 ‘신앙의 해’를 끝내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포한 권고문이다. 현대 사회의 성격과 가톨릭의 과제 등을 담았다. 지극히 종교적인 텍스트지만 ‘저는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는 폐쇄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 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더 좋아합니다’(49항) 같은 구절이 널리 알려지면서 일반인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출간 한 달 만인 3월 둘째 주 현재 2만5000부가 팔렸고, 천주교계 서점 등을 중심으로 추가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교황의 문헌이 보통 성직자와 수도자, 신학연구자 등을 대상으로 3000~4000부 판매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처럼 널리 사랑받는 배경에는 특유의 소탈함과 친근함이 있다. 그는 교황으로 선출된 날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과 인사한 뒤 추기경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저녁 만찬장으로 향했다. 신임 교황을 위해 기사가 딸린 리무진과 경호원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마다했다. 이후에도 교황의 공식 거처인 교황궁에 머무는 대신 일반 사제들이 오가는 바티칸의 게스트하우스에 숙소를 정하고, 관용차로 값비싼 방탄차 대신 소형차를 택하는 등 ‘탈권위’ 행보를 계속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지난해 이탈리아 성지순례 도중 교황이 머무는 숙소에 묵은 적이 있다. 그는 가톨릭계 언론인 ‘평화신문’에 쓴 기고문에서 이곳을 ‘교황청에서 근무하는 추기경이나 대주교, 몬시뇰이 상주하는 곳으로 빈방이 있으면 사제들도 예약해 며칠 동안 머물 수 있다’고 소개하고, 그곳에서 아침식사 때 교황을 만난 경험을 공개했다. 흰색 수단만 입은 소박한 차림이었으며, 일반인과 똑같은 메뉴로 아침을 들었다는 것이다. 김 대주교는 “아주 서민적이고 누구라도 교황님과 쉽게 이야기 나눌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아 감동했다”고 털어놓았다.

    가난한 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 아들로 태어난 교황은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스스로 소박하게 살 뿐 아니라 틈날 때마다 가난과 불평등문제 해결을 위한 교회 구실을 강조하는 이유다. 교황은 지난해 9월 이탈리아에서 실업문제가 가장 심각한 지역 중 한 곳인 사르데냐를 방문해 즉석 강론을 하면서 “주여, 우리에게 일자리를 주십시오. 우리에게 일자리를 위해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당시 그는 “내가 태어나기 전 부모님은 모든 것을 잃으셨다. 일자리도 없었다”며 “내 설교가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음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내라고 말하고 싶다. 여러분 마음 깊은 곳에서 용기가 솟아날 수 있도록 사목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겠다”고도 했다.

    교황이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정한 배경에도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있다. 그는 지난해 3월 16일 교황청에서 언론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교황 선출 당시 내 옆에 상파울루 전임 교구장 클라디오 움메스 추기경이 있었는데, 가까운 친구인 그가 나를 포옹하며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세요!’라고 했다. 그 말이 내 안으로 들어왔고, 바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생각났다”고 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평생 청빈한 삶을 살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해 ‘빈자들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난 스타가 아닌 평범한 사람

    이날 기자들에게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 얼마나 좋습니까”라고 말한 교황은 “어떠한 교회공동체든 가난한 이를 잊어도 그만이라고 믿는다면 붕괴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그는 가난을 야기하는 현대 경제체제의 문제점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복음의 기쁨’에는 ‘어떤 이는 아직도 자유시장경제만이 경제성장 보장하고, 그 성장이 세상을 더욱 정의롭고 평등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것은 시장에 대한 너무 유치하고 순진한 믿음’이라는 구절이 있다. 교황은 “이런 경제는 사람을 사회에서 쫓아낼 뿐 아니라 사용하다가 소모품처럼 버리고 죽이는 경제다. 이런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는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원래는 돈이 사람에게 봉사해야 하는데, 현재 체제는 사람이 돈에 봉사하게 만든다”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다.

    교황이 지난해 7월 즉위 후 첫 외부 방문지로 지중해의 작은 섬 람페두사를 택한 것도 세계적인 빈곤과 불평등문제에 대한 교황의 깊은 관심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최남단에 있는 람페두사는 북아프리카 튀니지와 가까운 곳으로, 매년 수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유럽 이주를 위해 목숨을 걸고 항해에 나서는 곳이다. 교황은 이곳에서 물 위에 헌화하며 바닷길을 건너다 목숨을 잃은 이들의 넋을 기렸고, 해변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이 다녀간 뒤 채 석 달이 되기 전 소말리아인 등을 가득 태운 채 항해하던 밀항선이 람페두사 앞바다에서 침몰해 수백 명이 죽거나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트위터를 통해 “비인간적 지구촌 경제위기와 인간 경시 풍조가 낳은 부끄러운 비극”이라며 “람페두사 희생자들을 위해 모두 기도하자”고 호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교리와 관련한 문제에서도 소외되거나 배척받는 이들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강조한다. 그는 취임 후 인터뷰에서 동성애자와 이혼자, 낙태 여성 등에 대한 교회의 자비를 강조하며 “우리는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도덕체계가 카드로 만든 탑처럼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동성애자들이 선한 뜻으로 신을 따른다면, 내가 어떻게 그들을 정죄할 수 있느냐”고 하기도 했다. “하느님이 자신을 믿지 않고 믿으려 하지도 않는 이들을 용서하는가”라는 질문에 “하느님의 자비는 경계가 없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에게 죄란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이며 양심을 듣고 따르면 선악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답한 것도 화제가 됐다.

    ● 1936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

    ● 1958 예수회 입회

    ● 1969 사제 서품

    ● 1992 주교 임명

    ● 2001 추기경 수임

    ● 2013. 3. 19 교황 즉위


    이런 교황의 태도에 세계적인 관심과 응원이 쏟아지는 셈이다. 그러나 교황의 인기가 높아지는 데 대해 우려하는 이도 적지 않다. 인기만큼 기대도 큰 상황에서 많은 이의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오히려 실망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3월 15일 열린 교황 선출 1주년 심포지엄의 기조강연을 맡았고, 8월로 예정된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준비위원장도 맡고 있는 강우일 한국천주교주교회 의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기가 너무 폭발적이라 좀 불안하다. 우리가 다 교황을 좋아한다 해도 우상화, 신화화는 피해야 한다. 그분의 본질이나 진실이 왜곡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최근 인터뷰에서 “나는 슈퍼맨도 아니고 스타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 일단 그가 지난 1년간 인간미와 소탈한 힘으로 가톨릭의 이미지를 크게 변화시킨 것은 분명하다. 그가 앞으로 가톨릭계에 산적한 문제를 풀어내며, 새로운 종교인의 상을 보여줄 수 있을지 많은 이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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