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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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두 잔 커피는 밥이다

대한민국 카페 2만 개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입력2014-03-17 13: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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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한두 잔 커피는 밥이다
    밥 먹기 전 음식 사진 찍는 것과 비싼 커피 마시는 것 가운데 뭐가 더 이해하기 힘드냐는 질문에 아저씨들은 한결같이 비싼 커피 마시기라고 답한다. 직장에서도 나이 든 일부 임직원은 젊은 사원이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다니며 마시는 걸 종종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아저씨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비싼 커피 마시는 일이 요즘 젊은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행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50년 전인 1964년 신문을 검색해봤다. 당시 서울 설렁탕 가격이 60원이고, 다방 커피 가격이 30원이었다. 요즘 서울 시내 설렁탕 가격이 8000~9000원이고, 커피전문점 아메리카노가 3000~4000원인 걸 감안하면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 다를 바 없다. 먹고살기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을 당시를 생각해보면 커피라는 게 얼마나 호사스러운 사치였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때도 다방은 숱하게 많았고, 당시 젊은 남녀도 커피를 마셨다. 서울만 따져도 휴전 직후 214개, 1960년에는 1041개 다방이 있었을 정도다. 당시 2030세대는 지금 나이로 7080세대다. 이미 그 옛날부터 밥값에 버금가는 커피를 마셨던 거다.

    내 취향 그리고 상대방 취향

    멀리 갈 것도 없다. 1980~90년대 대학가에 가장 많은 것 가운데 하나가 술집과 카페였다. 당시 커피 가격도 분식집 밥값에 버금가거나 더 비쌌다. 그걸 마신 이가 지금 4050세대다. 칸막이를 높게 쳐놓은 카페에서 시국을 논하거나, 담배 연기 속에서 사랑을 논하던 이들이다. 그러니 스타벅스를 비롯한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를 달리 볼 이유가 전혀 없다. 그걸 두고 과소비라 한다면 과거 사람들에겐 뭐라고 해야 할까. 커피는 작은 사치에서 기본이 되는 품목이다.

    어떤 커피를 마시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기 취향에 맞게 마시고, 상대 취향을 인정해주면 그만이다. 좀 더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고 직접 커피콩을 볶거나 볶은 커피콩을 구매해 그라인더에 갈아 내려 마시는 이도 많다. 고가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집에 둔 이도 있고, 캡슐머신도 흔해졌다. 이런 것에 비하면 커피전문점 커피를 마시는 건 오히려 싸고 합리적이다. 커피와 함께 공간, 시간까지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엔 커피를 마시며 수다 떨거나 책을 읽거나 사색하거나 일할 수 있는 값싼 공간인 카페가 2만 개나 있다. 와이파이까지 제공하는 곳이 허다하다. 커피 한 잔 값이면 몇 시간 동안 개인 사랑방이나 사무실처럼 쓸 수 있다. 이렇게 매력적이면서, 이보다 더 싼 공간이 또 어디 있으랴.

    그리고 믿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전체 커피전문점의 시장규모보다 맥심으로 대표되는 인스턴트커피와 캔커피를 비롯한 편의점 커피의 시장규모가 훨씬 크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 인스턴트커피 시장규모는 1조1556억 원, 편의점 커피의 경우는 1조400억 원이다. 둘이 합치면 2조2000억 원에 육박한다. 반면 커피전문점 시장규모는 1조5800억 원이었다.

    아울러 커피전문점의 카드 매출을 분석한 결과, 남성 고객이 여성 고객보다 20% 정도 더 많았다. 남성 고객의 절반 정도는 30대였다. 그러니 커피전문점에 대한 괜한 오해는 이제 접어두자.

    그리고 비싼 커피를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전히 커피자판기가 우리나라에 4만여 대나 있고, 우리에겐 사무실이며 집이며 어디에나 있을 법한 ‘맥심 모카골드’도 있지 않는가.

    얼마 전 인터넷 취업 포털사이트 잡코리아에서 직장인 96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올해 직장인 평균 점심값을 보니 6488원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조사를 매년 실시했다는 것이다. 점심값은 2009년 5193원을 시작으로 2010년 5372원, 2011년 5551원, 2012년 6007원, 2013년 6219원으로 계속 오르더니 마침내 거의 6500원까지 왔다. 물가 상승 속도에 어긋남 없이 일관되게 상승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커피를 건너뛰기도 어렵다. 관세청이 2012년 발표한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293잔. 농림축산식품부가 2011년 낸 자료에선 331잔이었고, 닐슨과 동서식품의 2010년 조사 결과는 452잔이었다. 자료마다 차이는 있지만 전 국민이 커피를 하루에 한 잔 정도는 마시는 게 분명하다. 아예 안 마시는 사람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커피를 마시는 이에게 하루 한두 잔은 기본인 셈이다.

    하루 한두 잔 커피는 밥이다

    2월 16일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코엑스에서 열린 ‘커피 박람회’에 전시된 주전자와 커피콩을 잘게 부수는 그라인더.

    1인당 소비 최고는 룩셈부르크

    밥과 커피는 적어도 우리가 매일 1회 이상 먹는다. 그만큼 우리에게 커피는 아주 중요하다. 요즘은 24시간 영업하는 커피전문점도 꽤 있다. 언제 어디서든 커피를 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1인당 커피 소비량은 미국의 절반 이하다. 노르웨이 사람은 미국 사람의 2배를 마시고, 핀란드 사람은 3배를 마신다. 룩셈부르크는 세계에서 1인당 커피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로, 미국의 6.5배에 이른다. 북유럽의 긴 밤을 생각하면, 그들이 커피를 탐하고 집 안 가구 디자인에 공을 들이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커피를 판매한 곳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서양식 호텔이면서 당시 외교 중심가인 서울 정동에 자리해 커피를 팔았을 개연성이 높은 손탁호텔이 그중 하나로 꼽힌다. 1902년 정동 29번지에 문을 연 손탁호텔은 이화학당에 팔린 후 기숙사로 쓰이다 철거됐는데, 그 자리와 가까운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 지금도 카페가 하나 있다. 가끔 그곳에 들르곤 한다. 커피 맛이 좋아서라기보다 110여 년 전 그 장소에서 커피를 마셨던 청춘의 기를 받으려고.

    내겐 일하러 가는 단골 카페가 있고, 미팅할 때 애용하는 카페도 있다. 사무실로 손님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 또한 그들을 위해 커피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제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일상의 쉼표이자 때론 느낌표, 혹은 물음표가 돼준다.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밤이 선생이다”고 했는데, 커피 또한 좋은 선생이다. 둘 다 시커멓고 사색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 초콜릿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까만 밤에 커피 한 잔 마시며 초콜릿 하나를 녹여 먹는다면, 어느 누구나 시인이 되고 철학가가 될 것이다. 그렇게 달달하고 씁쓸하며 컴컴한 것이야말로 인생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이런 걸 누리지 않으면 뭘 누리고 살겠나. 커피는 결코 남에게 내보이려는 과시나 유행에 편승하는 행위가 아니다. 나를 위한 최고의 작은 사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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